지난 기획/특집

한국가톨릭문인회 첫 이스라엘 성지순례기

입력일 2011-09-20 수정일 2011-09-20 발행일 2011-09-25 제 276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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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며 예수님 십자가의 길 체험
자신의 삶 성찰하고 하느님과 만남 새롭게 다져
겟세마니 성당에서 예수님의 수난 흔적 묵상
“신앙 안에서의 나를 돌아보려 떠난 성지순례, 그리스도와 함께 돌아오다”
한국가톨릭문인회(회장 김종철, 지도 조광호 신부)가 활동을 시작한 지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회원들의 내적 성장을 위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마련했다.

지난 8월 13∼21일 진행된 순례에는 가톨릭문인회 지도를 맡고 있는 조광호(엘리지오) 신부와 김산춘 신부, 시인 정호승 씨, 희극작가 전옥주 작가를 비롯한 시, 소설, 아동문학 등 각 분야의 작가와 가족 25명이 함께했다. 이스라엘 곳곳에서 성경 말씀을 체화하는 여정으로 이어진 8박 9일의 순례를 문인회 김종철(아우구스티노, 시인) 회장이 소개한다.

해마다 봄이 되면 성지순례로 시작하는 우리 문인회가 올봄에 다녀온 곳은 충남 보령에 있는 갈매못 순교성지였다. 믿음을 증거하며 죽음까지 불사했던 옛 선인들을 생각하며 그곳에서 예수님의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함께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며 신앙 안에서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하느님과의 만남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가톨릭문인회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추진한 해외성지순례인 만큼 많은 분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부르심의 날을 기다려왔다. 한 달 동안 공지하고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계획했던 인원이 되지를 않아 처음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이스라엘 성지를 꼭 다녀와야 하는 분들을 주님께서는 차례로 부르셨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순례를 떠나기에 앞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성경 필사를 하신 분도 있었고 이스라엘 성지에 관한 자료를 찾아 공부하신 분, 기도로써 주님 부르심에 응답하신 분, 그리고 순례기간 동안 동행한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체력을 보강하신 분들도 있었다. 그렇게 준비하고 떠난 순례는 문인들 신앙의 여정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을 뿐 아니라 가톨릭 문인으로서의 책임, 사명감에 대해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첫째 날부터 3일 동안은 예루살렘의 주변 성당과 베들레헴, 아인카렘을 순례하였고 그 후 4일 동안은 예리코와 사해를 거쳐 갈릴래아 주변을 순례하게 되었다. 성경, 즉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찾아가는 모든 곳들이 순례자인 우리들에겐 잊었다가 다시 찾은 고향 같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루에 한 번 그 날 순례하는 성당 중 한 곳에서 매일 미사를 드렸다. 순례기간동안의 미사예물은 모아서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쓰자고 하신 조광호 신부님의 말씀에 순례자 일행은 따뜻하고 훈훈한 마음으로 행복해 했다.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의 이번 순례가 하느님 보시기에도 매우 흡족하실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순간마다 가슴으로 스며드는 진한 감동, 그렇게 우리의 순례는 시작되었다.

아인카렘의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성당과 성모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기념성당을 순례하러 떠나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성모님을 찬송하는 마니피캇을 들었다. 엘리사벳 방문 기념성당 앞뜰에는 45개국에서 보내온 마니피캇이 걸려있었다. 물론 한국어로 된 성모찬가도 있어 다 함께 큰 소리로 읽어 보기도 했다.

올리브 동산에서 눈물 성당, 그리고 겟세마니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발걸음이 무거움을 느꼈다. 특히, 겟세마니 성당은 다른 성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 돈다. 인간을 사랑하여 죽음까지 불사한 예수님의 수난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고뇌하였던 곳이다. 애도의 한숨과 눈물로 묵상하는 그 시간, 우리들 가슴엔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이 계셨는지도 모른다.

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25명이 드리는 미사는 늘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다 함께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다. 낯설었던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그래서 또 내가 ‘우리’가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신부님이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를 선창하면 우리는 그대로 따라한다. 큰 소리로 시작해서 점점 작아지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수십 번을 반복하며 그 자비 속으로 빨려 들어가 가슴속에 있는 미움과 증오의 찌꺼기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사랑으로 채울 공간을 마련한다. 겟세마니 성당에서의 미사가 끝나고 우리들의 모습은 한층 더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하이라이트는 예수님 십자가의 길 체험이었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십자가의 길은 1540년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수도회)가 확정한 것이라 한다. 먼저 신부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다. 그 뒤를 기도와 묵상을 하며 따르고 각 처마다 순례자들이 바꿔가며 십자가를 지고 걸었다. 더운 날씨에 결코 가볍지 않은 십자가였지만 예수님의 그 수난에 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체험으로 동행한 순례자들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모습을 서로 보게 된다. 과연 우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고 있는 그 시대에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순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누어지려고 다가갔었을까. 예수님을 부인하며 도망가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예수님 체취가 남아있을 13처 석관 위에 가지고 간 묵주를 올려놓고 엎드려 경배했다. 주님 무덤 성당 안이다. 나르드 향이 묵주알 속으로 스며든다. 예수님의 상처를 우리는 이제야 어루만진다. 십자가 길을 순례한 다음날 새벽, 일행 중 몇 명은 주님 무덤 성당을 다시 찾았다. 다행히 숙소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인솔자 없이도 가능했다. 새벽의 무덤 성당은 기도소리와 향냄새가 짙었다. 뜻밖에 그곳에 거주하시는 김상원(테오필로) 신부님을 만나 전날 둘러보지 못한 곳들을 꼼꼼히 안내까지 받을 수 있어 하루의 시작이 행복함과 감사함으로 이어졌다.

우리 일행 중에는 네 쌍의 부부가 있었다.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래아로 오면서 그분들에겐 평생 잊지 못할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나의 혼인잔치 기념성당에서의 혼인갱신식이다. 살아온 날들도 소중했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더욱 더 소중하고 애틋할 것만 같다. 네 쌍의 부부는 이스라엘 카나에 와서 하느님 앞에 다시 한 번 혼인을 했다. 쑥스러워 하면서도 기쁨에 넘친 부부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함께 축하하며 함께 기뻐하는 날이었다.

순례가 끝나기 전 날 저녁에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성지를 순례하며 생각하고 묵상한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고자 때를 기다리셨던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현실 속에서 잠시 빠져나와 몸과 마음을 예수님께 의지하고 싶었던 날들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러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고 모두들 말하고 있다. 이번 순례에 부르심을 받은 분들의 이야기는 공통점이 많았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한 곳 한 곳 발걸음을 옮겨갈 때마다 회개의 은총을 구하셨던 분은 순례가 끝날 즈음되니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맑아졌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예수님의 일생을 더듬어 본 8박 9일, 예수님의 발자취는 곳곳에 남아있어 순례자들로 하여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가슴에 품기에 충분했다. 방문했던 수많은 성당들을 일일이 기억하기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향기를 맡고 잠시나마 예수님의 품에 더 가까이 안길 수 있었다. 결코, 눈으로 보는 관광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고 발로 걷는 순례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이번 순례에 함께하지 못하신 분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셨기에 앞으로도 2차, 3차 가톨릭문인회원들의 성지순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후 겟세마니동산으로 가 기도하신 바위. 기념성당 안에 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기념 성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까지 오르신 고통을 체험하고 있는 정호승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