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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메시지 해설] 10. 문화인 대표와의 만남

구중서·문학평론가·수원大敎授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07-29 제 141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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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音체도 문화의 한 누룩
인간화의 참된 길이 바로 문화
신앙土着化위한 노력 계속해야
이번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의 방한을 맞이하여 마련된 여러 가지 행사들 중에서 「문화인대표들과의 만남」은 한국 천주교회에 하나의 분명한 「지침」을 남겼다. 이 만남의 자리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일반 문화계 인사들도 상당수 참석했는데、 교황이 남기신 지침을 알아차리고 또 그 지침을 실천에 옮길 우선적인 사명은 한국천주교회와 천주교 신자 문화인들에게 있다.

지난 5월 5일 저녁 서강대학교 마리아 홀에서 이루어진 한군 문화인 대표들과 교황의 만남은 실상 처음부터 쫓기는 시간 속에서 진행되었다. 교황께서 지방방문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하신 시간이 늦었고 문화인 대표들은 그들대로 오랜 시간을 기다린 뒤였다.

그러나 피차 피로를 인내로써 극복한 분위기에서 만남의 절차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문화인 대표들에게 남겨진 것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연설이었다. 이 연설의 내용은 유인물로 청중에게 배부되기도 하였다. 제목도 없이 『친애하는 여러분』으로 시작하여 다섯 토막으로 구성된 이 연설의 내용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에 주어진 「지침」이라고 앞에서 말하였다. 별도로 이 내용은「한국 문화인 대표들에게 행한 연설」이란 제목의 문헌으로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

각 민족과 문화에 대한 원리 제시는 지난날 요한 23세 교황의「어머니와 교사」、 바오로 6세 교황의 「민족들의 발전 촉진」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서강대학교 연설은 특별히 한국 천주교회와 문화인들에게 절실하게 전달되어 왔다. 이 연설 내용의 요점들을 여기에 차례대로 다시 제기하면서 우리의 느낌과 사명의식을 새로이 하고자 한다.

『무릇 인간은 「문화」를 통하여、즉 전인적으로、 그리고 각기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성숙하는 자유를 통하여 비로소 「인간」일수 있읍니다』쉬운 표현으로 된 말씀이지만 「인간회복」이 무엇보다도 요청되는 이 시대에 있어서 인간화의 참된 길이 바로 「문화」라는 의식을 우리에게 환기한다.

오늘의 우리 교회 지도층은 흔히 행정적으로만、 더 나아가서는 영성적으로만 사목에 임하여 거의「문화의식의 결핍」을 드러내고 있다. 이점은 쇄신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지난해(83년)초 본인은 「교황청 문화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이 분야의 모든 탁월한 전문가들이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한바 있읍니다. 그것은 교회와 문화사이의 대화가 인류의 미래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이 말씀을 듣고 생각나는 간단하고도 분명한 과제는 한국 천주교회에도 정의평화위원회 차원의 「문화위원회」가 주교회의 산하에 설치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교회는 모든 민족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민족의 살아있는 문화가 복음에 젖으려면 아직 「토착화」의 중요하고도 먼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읍니다. 여러분의 조상인 한국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인간됨의 완성을 진지하게 찾아 나섰다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으며 민중의 사고방식과 정서풍토에 복음을 심으려는 모범적인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가톨릭 교회는 초자연적 사랑의 차원에서 각 민족의 땅에 뿌리박은 문화의 독특성과 재능을 존중하며、 교회가 그러한 요소들을 북돋우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일찌기 요한 23세 교황도 말씀하였다.

현 교황은 오늘의 우리에게 옛 조상들의 토착화 노력을 일깨우면서、『교회가 민족의 깊은 염원에 호응함으로써 민족을 신앙의 경지에 이르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이러한 단계에서 우리 교회의 상황을 스스로 살펴보건대 그리스도 신앙의 토착화를 위한 인식과 결의가 과연 어느 정도로 성숙되어 있는가. 전례에 있어서의 토착화를 둘째로 미루어 놓고서라도 민족문화에 대한 애착이라든가 민족적 주체성에 의거한 긍지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오히려 이번에 교황께서 『여러분이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수록 복음화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씀해 주었다.

특히 성직계에서 우리 한국천주교를 마치 「서양 종교」처럼 대중에게 부각시키고、 그런 경향에서 오히려 사대적이고 특권적인 인상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지 냉철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날、 전에 없던 규모로 불의로운 경제 제도가 민중을 무더기로 착취하는가 하면、 정치적 내지 이념적 노선이 민족전체의 마음을 짓누르는 나머지 민중으로 하여금 일률적으로 무감각해지고 철저히 불신의 태도에 빠지게끔 강요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는 인간존엄을 위협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침묵을 지킬 수는 없읍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민족 전체이든、 인간이 참 소명에 따라 참답게 존대할 수 없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앙이 우리로 하여금 저항하도록 명령합니다.

우리의 그리스도 신앙은 그러나 무익한 단죄로 그치지 않으며、 건설과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설명이 필요 없이 교황께서 다 말씀하고 있다. 다만 사랑과 건설의 방법으로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 것인지、 이것이 늘 그리스도인들의 오묘한 어려움이다.

『여러분은 이중의 사명을 띠고 있읍니다. 문화를 복음화하고、 인간을 옹호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복음 자체도 문화의 한 누룩」이니、 복음이 문화 차원에서 인간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문화를 복음화 하는 과제에 임하되 현실적인 감각을 가지고 타당한 공감을 주면서 해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이라는 상황에서 여러분이 당면하고 있는 특수한 도전을 모르는바 아닙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어려울수록 부활하신 주님 안에 살 생각으로 도전에 응하는 일 또한 시급하고 값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겨레는 탄력과 생기와 낙관과 창의성과 기백과 인정으로 가득 찬 겨레입니다. 사람이 되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맡은바 일에서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말씀、 이것은 또한 문화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복음도 문화의 한 누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역대 교황들께서 세계 차원으로 개괄한 원리론들과 다르게、 현지성을 갖추어서 현 교황의 육성을 통해 복음화·인간옹호·응전의 지침들을 받았다. 이 귀한 가르침을 우리는 앞으로 실천에 옮겨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구중서·문학평론가·수원大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