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다시 태어나도 사제의 길을 - 오기선 신부 사제생활 50년의 회고] 73. 북경「북당」의 어제와 오늘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06-17 제 1410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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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年 빠리外傳서 건립해 
지금은 共産化로 로마와는 無關
2백년 전 북경에는 동서남북 네성당이 있었다. 그곳에선 성당을 천주당(天主堂)으로 불렀는데 설립연대는 각각 다르다. 남쪽의 성당을 남당(南堂)이라 했고 1601년에 예수회소속 마테오리치 신부가 명나라에 처음 입국하여 선무문(宣武門) 안에 세웠는데 1644년에 소현세자(昭顯世子)와 교분이 두터웠던 아담 샬 신부가 1만양을 들여 개축한 성당이다.

동당(東堂)은 동안문(東安門)밖에 있는 것으로 1628년에 북경에 다시 돌아온 아담 샬 신부가 그가 살던 옛집을 수리하여 만든 것이다.

서당(西堂)은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렇게 불렀는데 당시 라시리스트(Lazarists)회 베들리니(P.Pedlini)신부가 1723년에 낙성식을 가졌다.

북당(北堂)은 프랑스「빠리」외방 전교회 폰떼네(R.Ponteney) 신부가 황제의 학질을 금계람으로 완치시켜준 공으로 광활한 터전을 얻어 1703년에 시공, 4년 만에 준공한 성당이다.

우리 한국교회의 첫 사도 이승훈 베드로가 루이 드 그라몽 신부에게 1784년 2월 24일 영세했는데 보통 알렉산델 드 구베아 주교로부터 영세 받은 줄 알고 있다. 1926년부터 우리 한국교회사 강의시간에도 그렇게 가르치고 배웠다. 그런데 사실은 당시 조선천주교회 교구장인 그분은 1782년 7월 22일 북경주교로 임명받아 1784년 7월 5일 마카오에 상륙했고 1785년 1월 18일에 북경에 입주했으니 시간상으로 보아 이승훈이 그분에게서 영세를 받을 수가 없었다.

이승훈 베드로가 돌아온 후 한국천주교회와 직접, 간접적인 사무연락은 남당성당과 행하고 있었다. 윤유일 바오로 聖人 유진길 아우구스띠노, 聖人 조신철까둘로 등이 영세한 곳이 바로 이 남당성당이다.

그런데 오늘날 북경의 북당성당은 어떻게 되었을까?

현재 미국 뉴저지에서 교포사목을 하고 있는 박창득 아우구스띠노 신부께서 미국여권으로 상해로 가 긴가함성당(註·聖人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 17일 서품 받은 성당)과 왕담성당(註·동년 8월 27일 김대건 신부가 첫 미사를 드린 성당)을 참배하고 사진을 찍어 필자에게 보내주었다.

그때「北京」북당성당은 사진을 못 찍어 왔는데 필자는 1983년 2월과 1984년 1월에 홍콩으로 마카오로 사료수집에 나서서 2백년전 북당성당의 사진과 자료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때마침 1984년 3월 20일경 청주교구 부주교 함제도 제라르도 신부가 북한선교의 길을 모색, 북한선교 추진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홍콩을 통해「北京」길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필자는 45명의 성지순례단을 이끌고 「예루살렘」「로마」「파티마」「루르드」기적의 패 성당 등 10여개국을 돌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자 충북 연풍성지개발에 몸 바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로베르또릴리 정 신부께 전화를 걸었다.

함 신부님이「北京」엘 가시면 꼭 북당성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오시도록 간절히 부탁드려 달라고 전화를 한 것이다.

1백3위 시성식이 영광 속에 이뤄지고 창립성조들의 시복식도 조속히 이뤄지도록 주의 은총을 간구하며 3월16일 순례의 봇짐을 쌌던 필자가 4월 18일 귀국하자 수안보에서 정 신부님이 오셨다.

『함 신부님이 북당성당을 찍어왔읍니다. 곧 사진을 주실겁니다』라고 하면서『이것은 「北京」갔다 오신 선불이랍니다』하고 둥근 메달을 내미는게 아닌가! 그것은 2백년 전 북당성당의 기념메달이었다. 전면에는 「북경주교좌당」이라는 한문이 새겨져 있었고 후면에는「원죄 없으신 성모마리이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北京」의 얘기를 들어보니 착잡한 심경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우리 로마 가톨릭 대주교가 계시지 않고 애국(애국)가톨릭교 대주교가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로마가톨릭 대주교는 추방되고 공산당이 임명한 대주교가 허수아비 모양 성당을 지키고 있다니! 집은 옛집이로되 주인은 옛 주인이 아니로다.

그리스도를 따르던 열두사도, 열두사도의 후계자들이 죽(竹)의 장막을 헤치고 옛집을 찾아갈 때가 그 언제일까? 옛집에서 새 손님을 맞이할 때가 그 언제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