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103위 성인 가호 속에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05-13 제 1405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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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이동」을 방불케
“질서있는 국민” 임을 과시
한국 복음화 제3세기를 연 역사의 현장 여의도, 5월 6일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신앙대회 및 시성식이 거행된 여의도 광장은 1백만 인파가 교황과 일치해 창출해 낸 화해와 나눔과 증거의 대서사시였다.

인파! 인파! 인파!

한국 천주교회 2백년 역사상 최초, 최대의 인파가 신앙을 증거 하기 위해 운집한 곳이며 한국 순교복자 103위가 시성되고 한국 순교성인 103위가 탄생된 곳.

환호의 열광, 감격과 감동의 파노라마 속에 한국교회가 새롭게 태어난 땅, 여의도는 축복의 땅이며 영광의 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서울=특별취재반]

4시간에 걸쳐 입장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신앙대회 및 시성식이 거행된 여의도광장 입장은 새벽 4시부터 7시50분까지 3시간50분에 걸쳐 시내 본당 및 교구별로 질서정연한 가운데 진행됐다.

여의도 광장으로 들어오는 서울대교 원효대교 여의교 영동포교 등 4개의 다리를 통해 서울과 지방신자들이 도보로 또는 차량으로 입장하는 모습은 마치 민족의 대이동을 방불케 했다.

서울대교 입구는 오전 6시쯤 지방에서 올라온 전세차량들로 붐비기 시작해 7시경에는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약 1.5㎞의 차량행렬이 이어졌다.

7시30분경 서울대교가 봉쇄되려 하자 이 다리로 대회장에 입장하려던 서울신자 5백여 명은 단거리 선수처럼 질주해 다리를 건넜으며 7시50분경 4개 다리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9시간동안 질서정연

이날 신앙대회 및 시성식에 참가한 1백만 명의 참석자들은 입장부터 미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장장 9시간동안 질서 있게 행동해 교황으로부터「질서 있는 국민」이란 평을 듣기도 했다.

이처럼 1백만의 대군중이 질서 정연히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행사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와 친절한 안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참가자들 스스로 기도와 묵상의 분위기를 흐뜨리지 않았기 때문.

화장실 사용 절제

14개의 블럭으로 구분된 행사장 주변에는 한번에 1천5백 명이 이용할 수 있도록 10여 개의 간이 화장실이 마련돼 있었다.

행사주최측은 이날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미리 나눠준 안내 책자를 통해 『가능한 한 행사전날 음식을 절제, 화장실 사용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참석자 대부분이 아예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임했다.

대회장 주변에는 또 여러 곳에 구호소와 미아보호소 등이 설치돼 있었으나 환자나 미아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국에 TV중계

섭씨20도 안팎의 화창한 오월의 하늘아래 펼쳐진 이날 신앙대회 및 시성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국에 TV로 중계돼 이날 행사에 참석치 못한 신자들과 일반국민에게 성인탄생의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도록 했다.

행사가 계속되는 동안 KBS측은 헬기를 동원, 대회장 주변상공을 돌며 공중 촬영하는 모습도 보였다.

마지막 「복자찬가」

이날 신앙대회 및 시성식은 1ㆍ2부로 나뉘어 제1부에서는 교황 도착 전까지 미사 전 행사가 8시부터 진행됐는데 3천명으로 구성된 서울대교구 남녀 연합성가대가 「복자찬가」를 합창할 때 대회장은 다소 숙연해지는 듯했다.

이날 「복자찬가」는 미사시작 전에만 부르고 미사 중에는 한번도 부르지 않았는데 103위 복자가 모두 시성된 현재로서는 복자가 없어 하루속히 창립선조들이 시복될 것을 기원하기도 했다.

미사 시작 전 마지막행사로 「복자찬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날 교황과 시성식 미사를 공동 집전할 사제단과 주교단의 제단입장이 사제단을 선두로 오전 8시50분부터 시작됐는데 이 입장행렬만 15분 가량이 소요됐다.

성직자 1천 명 참석

이날 교황과 미사를 공동 집전한 사제들은 추기경 및 주교 60여 명, 성직자 1천여 명으로 알려졌다.

제단에 오른 사제들은 제1ㆍ2단에, 그리고 주교들은 제3단에 위치한 제대를 중심으로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한폭의 그림같아”

오전 9시가 조금 지나 교황이 김 추기경과 동승한 교황승용차가 여의도 광장 중앙통로에 들어서자 1백만 군중은「VIVA PAPA」(교황만세!)를 외치며 열광했다.

손에손에 태극기와 교황기피켓과 책자 등을 흔들며 1백만 명이 환호를 보내는 여의도광장은 가지각색의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군중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제단 앞에 도착한 교황은 원래 계획대로 광장을 한바퀴 카퍼레이드 하려는 의향이었으나 취소되자 다소 섭섭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제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보다 신자들과 가까이하려는 교황은 제단 제일 아래층에서 계속 자리를 옮겨 군중의 환호에 답하면서 윗계단으로 올라가기를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자 사회자가 김 추기경에게 『빨리 모시고 올라오시라』하는 요청을 듣고 계단을 올라갔다.

이어 중앙제단에 오른 교황은 무궁화와 장미로 장식된 김대건 신부 유해 앞에 꿇어 잠시 경건한 기도를 바친 후 또 다시 좌우에 늘어선 사제들에게로 가 그들을 포옹하고 격려했다.

이어 제대가 위치한 제일 윗부분에 오른 교황은 좌우에 대기중이던 각국 고위성직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하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

곤룡포식 제의입어

이날 미사에서 교황은 금색 공단바탕에 백색운문을 띤 제의를 입었는데 이 제의는 매듭으로 알려진 김희진씨가 교황의 역사적인 한국방문을 기념해 특별히 고안 제작한 것. 이 제의는 전통적인 곤룡포의 선을 따른 것이며 재봉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녀들이 했다.

이 제의에는 순교를 뜻하는 붉은 장식과 아울러 훌륭한 매듭으로 여민 영대가 따르는데 모두 한국의 전통공예의 성격을 띤 것이다.

교황, 노익장과시

신앙대회와 시성식이 거행된 여의도광장 상공에는 다섯개의 소형 애드벌룬을 양쪽에 매단 대형 태극기와 대형 교황기 그리고 여러 개의 애드벌룬이 하늘높이 치솟아 시성의 기쁨을 더해줬다.

특히 교황은 그토록 바쁜 일정 속에서도 조금도 지치지 않고 이날 4시간동안의 전례를 거뜬히 거행, 노익장을 유감없이 과시했으며 한국민과 벗으로서 4박5일을 지내기 위해 1년간을 준비한 한국어 솜씨는 이날 미사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날 교황의 미사 중 강론이 계속되는 동안 광장에서는 농아자들에게 수화로 강론말씀을 전하는 모습도 보였다.

경찰견까지 동원

특히 이날 여의도광장에는 교황이 이날 아침 명동성당 참배길에 발생한 한 정신이상자의 장난감 권총사건으로 경비가 더욱 삼엄했다.

이중에서도 교황경호를 위해 경찰특공대 소속 경찰견 세퍼드 4마리가 동원돼 눈길을 끌었다.

이 경찰견들은 화약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훈련된 개들로 이날 행사가 끝날 때까지 행사장 주변을 순찰했다.

즉 흥연설서 농담도

이날 4시간에 걸친 시성식 미사 후 제의를 갈아입고 단상에 나온 교황은 20분간 걸친 즉석 이태리어연설을 통해 교황특유의 유모어를 발휘, 한국민과 한국교회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교황은 즉흥연설 마지막부분에서 『끝으로 나는 여러분에게 많은 말을 했는데 이제 나에게 한마디 하겠다』며 『교황님 말 좀 그만하십시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새벽부터 고생 많이 했으니 빨리 집에 갈 수 있게 하시죠』라고 조크, 마지막으로 교황은 한국어로『또 만납시다 찬미예수!』라고 크게 말해 1백만 참석자들의 환호와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