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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그는 누구인가?] 29. 역사안에서의 교황 18. 요한 바오로 2세

최석우 신부·한국교회사연구소장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04-15 제 140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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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주의ㆍ고정틀 싫어해
교황이라도 개성의 보존만은 희망
「대중과의 접촉」을 첫자리에 놓아
바오로 6세 교황처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약간의 체조를 하고 나서 소성당에서 미사를 지낸다. 미사후 신문들을 훑어본다. 아침식사 때 벌써 그는 그날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보고받는다. 9시부터 11시까지는「크라코프」에서처럼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성당에 은신하여 기도와 명상에 잠긴다. 이 고요한 시간을 이용하여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연설과 강론을 준비한다. 아무리 방문객이 많아도 알현은 11시에야 시작되고 그것은 때로 저녁 때까지 계속된다.

일반알현은 보통 오후 두시에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흔히 제시간에 끝나지 못한다. 그러니 가끔 교황청 계획표에 혼란이 일어날수 밖에 없다. 요한 바오로 2세가 흔히 예정된 알현시간을 넘기는 것은 경비원이나 그의 측근자들의 근무시간에 대한 무관심에서가 아니라 인간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그의 본질적인 사명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가끔 시간개념을 잊는다. 보이티야가 교황으로 취임한 이래「바티깐」의 시계탑의 시계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이티야는「바티깐」의 크로노미터를 표준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는 아무리 교황일지라도 그의 고유한 스타일의 생활을 지속시켜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감금되기를 원치 않고 미리 짜여진 틈이나 관료주의에 속박당하는 것을 원치않는다. 「크라코프」에서 온 폴란드 수녀들도 이제는 교황의 이러한 느긋한 생활자세에 익숙해져버렸다. 수녀들은 예정보다 많은 손님이 식사에 초대될 것에도 대비할줄 안다. 교황은 알현 군중속에서 아는 사람을 보면 즉석에서 그를 식사에 초대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번은 폴란드의 한 교수가 초대되었고 또 한번은 루블린의 전총장이 저녁식사에 초대된 일이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크라코프에서 식사에 초대되었을 때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루블린 대학의 전총장이 교황에게『당신에 대해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은 당신의 인기를 더해주고 또 당신을 오리지날하게 만들어주고 있읍니다』라고 말하자 교황은『여전히 오리지날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남아야 하고 나의 개성을 보존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하루밤 사이에 교황으로 변한 사람이 교황 이전의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교황이 된다는 것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취소되기 어려운 것이고, 거의 결정적인 것이다.

교황이 되자 보이티야는 그의 아주 사사로운 일까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마치 죽은 사람의 유산처럼 이제 그의 모든 것이 제3자의 손에 의해 처리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때까지의「自我」를 가능한한 수호하기로 결심하였다.

비근한 예로 활기와 정력이 넘치는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저택의 복도를 활보하는가 하면 돌계단을 몇 개씩 뛰어넘음으로써 측근 몬시뇰들을 당황하게 했다. 이렇게 그는「크라코프」에서처럼 계속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바티깐에 무엇인가 변화가 일고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특히 바오로 6세 때처럼 모든 것이 일초도 어기지 않고 정확하게 움직이던 때는 지나갔다는 새로움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남을 위한 시간과 자신을 위한 시간을 잘 조화할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8년 10월부터 불과 3개월 동안에 무려 3백번의 연설과 강론을 했다. 이 연설이나 강론의 대부분은 국무성과 해당부서에서 기초된 것으로 교황은 다만 그것을 검토하고 시정하고 보완하는데 불과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그의 연설에서 그가 스스로 작성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전임자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1세가 시도한것처럼 요한 바오로 2세도 매주 수요일 베드로 광장에서의 정기 알현을 그의 개인적 교리교수의 광장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순계자들 앞에서의 그의 연설은 곧 하나의 사목을 뜻한다. 그래서 그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신자들에게 아주 쉬운 말로 그의 신앙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매일 오전 사색과 명상을 위해 취하는 두시간의 정신적 휴식시간으로 말미암아 자연 바티깐의 전체계획이 지연되게 된다. 뿐더러 11시에 시작되는 알현은 전통을 깨고 오후까지 지속되고 때로는 초저녁까지 계속된다.

이와 같은 알현의 인플레를 그의 또다른 프로그램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듣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보기위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아마 현 교황의 당면한 과제의 하나일 것이다. 다행히 그는 건강하고 튼튼하고 자연을 좋아하고 스포츠를 할 줄 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육체적 힘에도 한계는 있다. 실제로 그는 한때 과로한 나머지 모든 계획과 약속을 취소하고 1월초 2일간을 까스뗄 간돌포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교황이 겨울철에 여름별장을 찾은 것은 4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교황에게는 운동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는 언젠가 친구에게『나는 움직이지 않으면 죽어』란 말을 한적이 있다. 그는 카누우와 스키를 좋아한다. 그는 주교의 임명소식을 듣고 비진스키 추기경으로부터 주교직의 수락 여부를 질문받았을 때『네, 수락합니다.』

그러나『그렇다고 제가 이제부터 카누우 놀이를 할수 없다는 말은 아니겠지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그는 즉시 호수로 돌아가 카누우 놀이를 계속했다.

교황이 되자 그는『교황에게 스키가 허락된 것인가』하고 남몰래 시름에 잠겼을것이 분명하다. 그는 멕시코로 떠날 때 비행기에서 눈에 덮힌 몽블랑 산맥을 내려다보면서 기자들에게『저기서 지금 스키를 하면 멋질텐데』하며 한숨을 지었다고 한다. 며칠전에 교황이 변장을 하고 스키를 타다가 모자가 벗겨지는 바람에 정체가 탄로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 사람이 바로 교황이었는가? 아직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어쨌든 있을 법한 일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무엇보다도 대중들과의 접촉을 좋아한다. 군중이 기다리는 곳이라면 어디나 그는 즐겨 그들가운데 나타난다. 거기에는 테러리스트나 미친사람들의 표적이 될 위험이 없지 않다. 교황의 한 친구는 교황에게『여기는 폴란드가 아니니 몸을 조심하셔야 합니다』고 여러 번 충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은『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손에 매여 있지요. 하느님께서 내가 그의 위임을 맡아 보기를 원하시는 한 그분은 나를 지켜주실 거예요』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최석우 신부·한국교회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