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백주 준비 어디까지왔나] 10. 기념행사 (중)

이윤자 차장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03-18 제 1397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심혈기울여 마련한 계획안 결정적인 수정없이 통과돼
바티깐과의 연락업무 지속
오스트리아 신앙대회에 참관인 파견
교황방한 일정·시기 등 미정상태서 계획세우는 어려움 겪기도…
82년 10월을 전후해 골격을갖춘「2백주년 기념행사의 배」는 출항을 위해 닻을 올렸다. 6개위원회로 실무부서로 기념행사라는「배」를 탄 선원-실무위원들은 2백주년의 일선에서 뛰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절감、최고의 결실을 위해 최대의 공약수를 집약해내기로 굳게 다짐했다.

「큰일」을 치러본 경험이라곤 지난 81년 교구설정 1백50주년기념행사가「전부」이다시피한 실무자들의 입장은 뜨거운 사명감 속에서도 착잡함이 앞서는 듯 했다. 2백주년 기념행사는 1백50주년행사와는 그 규모와 성격이 크게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망망대해로 나선 큰 배가 방향감각을 잃고 갈길 몰라 헤매는 것처럼 기념행사라는 이름의 큰배도 목적지로 항해하기위한 정확한 좌표를 찾아내지 못하는 혼돈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준비초반을 보내야했다.

초조함속에서도 여유가 있었던 82년도 후반은 금새 지나가 버렸고 83년이 시작됐다. 여유와 조바심이 엇갈리면서 보낸 준비기간 동안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교황성하를 모신다는 특성상、정확한「방한시기」「방한일정」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속에서 행사의 마스터 플랜을 그려낼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모든것이 미지수인 상태에서 출발해야 하는 기념행사위원회의 준비상황은 그만큼 힘들고 까다로웠으며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는 그자체가 무수한 변수로 작용、준비내역은 끊임없이 뒤바뀌곤 했다.

83년 5월 기념행사위 실무위원들은 자발적으로 참된 봉사자의 자세를 다짐하는 연수회에 참여、역사적인 대제전을 향해 마음과 뜻을 모아나갈 각오를 새롭게 했다.

그동안 6개분과위와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열린 모임의 횟수만도 줄잡아 80여 차례. 대부분 직장을 가지고 있는 실무위원들이라는 점에서 볼때 기념행사위는 행사의 준비과정 그 자체에서부터 값으로 헤아릴수 없는 차원높은 의미의 결실을 얻어내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이런 와중에서 기념행사위가 10월로 임의로 내정했던 교황방한 시기는 바티깐당국과 교황의 스케줄 사정상 5월로 앞당겨지는듯했으며 체한일정 또한 3박4일、4박5일 등으로 압축되는 것으로 감이 잡혀졌다. 깜깜한것만 같았던 눈앞이 조금씩 트이기 시작하면서 행사전반의 뼈대를 형성하기에 부심해온 기획분과위의 추진상황도 빠르게 회전、활기를 띄어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고 사실상 중요한 몫을 차지할 수 밖에 없는 교황방한中의일정또한「가정」이라는 전제아래였지만 조금씩 그 모양을 갖추어갈 수가 있었다.

83년 한해는 어쩌면 교황성하 방한일정과 내역에 매달렸던 해라고 기억할 만큼 기념행사위의총력은「교황방한」쪽으로 크게 집중됐다고 말할 수 있다.

땀을 흘렸던 만큼 결과도 두드러져 한국교회측이 심혈을 기여 마련해낸 대부분의 플랜들울은 교황청 실무진과의 협의·검토과정에서 결정적인「수정」을 거치지 않을 정도의 수준작이 될 수가 있었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준급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우리 스스로의 평가일 뿐. 기념행사위의 모든 플랜들이 수준급인만큼 진행도 전개될지 아무도 그 보따리를 풀어보기 전에는 자신있게 예측할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솔직한 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그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 움직임이 커다란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주교회의의장 김수환 추기경은 82년과 83년에 걸쳐 수차례 교황청을 방문、바티깐의「의중」과 교황성하의「진의」를 깊이 있게 파악、전해줌으로써 교황방한 준비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측의 바티깐 실무자인 장익신부의 내한、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진 연락업무 등은「교황방한」이라는 거대한 숙제의 해답을 수월하게 끌어내는 숨은 요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9월 기념행사위 사묵국장 박신언신부와 홍보분과위원장 오지영신부가 오스트리아「비엔나」에서 열린 신앙대회(교황성하 참석)에 파견돼 행사주관을 비롯 각종 준비작업 및 실무자로서의입장을 전반적인 사항들을 꼼꼼히 점검하는 계기를 가졌다.

몇 년 동안 확실할 것 같은 가능성만으로 준비되어온「교황방한」은 지난해 11월25일 한국주교단이 『교황성하께서 5월3일부터 7일까지 한국을 방문하신다』고 공식발표를 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방한일정이 확정됨에 따라 방한기간중의 세부일정들도 활기있게 진전되어갔다. 교황청과의 끊임없는 접촉을 통해 서울·대구·광주·부산 등으로 압축된「대규모 행사」외에「눈 깜짝할 사이」라고 볼 수 있는 4박5일동안 이 땅에서 이루어질 소규모행사·만남은 모두 20여개·왕복시간을 제하고나면 겨우 만3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일정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무리한 일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교황성하를「직접」「더 가까이」모시고자하는 신자들의 뜨겁고 소박한 열의를 감안한다면「무리한 요구」라고 매도해 버릴 수도 없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렇듯 조심스럽게 사심없이「모양」을 갖추어온「교황방한」은 최근 일부종교에서 방한시기와 관련、이의를 제기하고 나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전 세계 7억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동시에 바티깐 시국의 최고 통치자이기도 한 교황의 방한이 어떻게 한 종교지도자의 내한으로만 간주될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끊임없고 진솔한 대화로 최선의 해결점을 모색해 나가야 하겠지만 이 같은 난제들은 우리교회가「우리」의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넓은 곳을 향해 시야를 넓혀나가야 할 것 같은 반성의 마음을 갖게 한다. 그것은 또 우리교회가 2백주년이란 역사의 디딤돌위에서 겸허한 자세로 헤쳐나가야 할 숙명적인 과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조그만 난제속에서도 교황방한과 더불어 행해질 기념행사들은 하나둘씩 목표물을 향해 달려나갈 출발지점에 소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문화적 향취를 가득 담은 채 갖가지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어날 기념행사 문화행사들은 이미 전국 각 교구가 참가한 가운데 베풀어진 전국 성가 경연대회를 하나의 신호로 이땅 곳곳에서 땀과 정성으로 준비해온 결정들을 무대위에 올릴 날을 가슴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이윤자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