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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한국교회 근세사] 27. 호남의 본당들 7. 제주 서홍리

사진제공=정성길·한국민속홍보센타, 해설=윤광선·영남교회사연구소
입력일 2011-05-17 수정일 2011-05-17 발행일 1983-05-08 제 135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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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한논」에서 본당 옮겨와
신축 교난땐 불함대 구조로 목포로 피신

한반도로부터 남으로 수행 (水行) 66마일의 추자도 (추子島) 에서 또 31마일의 바다 위의 외딴큰 섬 제주는 한국의 최남단인데 드망즈 (安) 주교는 최초로 이 섬을 답사한 감목(監牧〓主敎)이 되셨다. 제주읍 성당(邑內三徒里大路洞 天主堂)에서 4일 간을 체류하고 다음 순방지로 가기 위해 주교 일행은 1911년 10월 24일 아침 6시 제주읍본당을 출발했는데 주교 일행은 라꾸르 (具瑪琵) 제주본당 신부와 따게 (嚴宅基) 홍로본당 신부를 더하여 수원 신자들과 마부(馬夫) 및 짐꾼 등 여러 사람이었다.

현재는 제주시와 남제주 서귀읍을 직결하는「한라산 횡단 도로」(약41㎞)가 개통되어 있지만 70년전 옛날의 도로와 교통 사정은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던 때였으므로 일행은 한라산 중허리를 넘어서 남제주인 정의군 (旌義郡) 홍로동(서홍리)에 이날 늦게 도착하였다.

「홍로」라고도 불리는 서홍리본당은 원래「한논」(大沓〓西歸面 好近里) 에 있던 본당을 1902년 따게(嚴) 신부가 부임하여 서홍리로 옮긴 것이다.

1899년 12월 8일 뻬네(裵加汞) 신부와 김원영 (金元永〓아우구스띠노) 신부가 입도(入島) 하여 제주읍에 자리 잡고 전교를 시작했으나 뻬네(裵) 신부는 기후 풍토가 체질에 맞지 않아 이듬해에 전북 수류(水流)본당으로 전임되고 1900년 6월 라꾸르(具) 신부가 뻬네(배)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해서 제주읍에 성당을 마련하고 전교하던 중 1902년5월 제르만ㆍ뭇세 (GㆍMousset 文濟萬) 신부가 새오 입도하게 되어 김 신부와 뭇세(文) 신부는 정의군(旌義郡)「한논」에 성당을 마련하여 전교함으로써 북제주인 제주읍과 남제주인 한 논에 본당이 설립되었던 것이다.

뭇세(文) 신부와 같이 전교하던 김(金元永) 신부는 얼마 후 무안(務安〓木浦)으로 전임 되고 제주도에 부임하자 즉사「신축교난」을 겪게 된 뭇세(文) 신부는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신자 40여 명과 함께 출동한 프랑스 함대의 구조를 받아 목포 성당에서 몇 개월 지내다가 1901년 10월말 경에 제주도로 다시 귀임했으나 이듬해(1902년) 경남 마산(馬山)본당으로 전임됨으로써 4월 23일 따게(嚴) 신부가 제2대 한논본당 신부로 부임하여 1915년 목포본당으로 전임되기까지 13년간 서홍리 본당에서 전교하는 동안 제주도산 식물(植物)을 연구하여 특히 벚나무의 원종(原種)을 발견하였고, 밀감 나무를 많이 재배하여 제주도의 산업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제주의 2개 본당 순방을 끝마친 드망즈(安) 주교는 10월 30일(음력 9월 9일) 새벽 5시30분「홍로」본당을 출발, 보행으로 다시 제주읍으로 돌아오셨는데 밤중에 제주 성당에 도착했다.

11월 8일 제주 성내(城內)를 떠나 산저포(山底浦)에서 부산으로 항해하는「신라환」 (新羅丸)으로 제주를 출발, 다음날(11월 9일)저녁 6시 부산항에 상륙했다.

안 주교와 그일행은 마리오ㆍ쥬리앵(M.Juilen 權裕梁) 신부가 사목하고 있던 초량(草梁) 본당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11월 10일 아침 6시 초량역을 출발하는 경부선 열차편으로 오전 10시30분 대구역에 도착, 계산동의 임시 주교관으로 환당하심으로써 만2개월에 걸친 제1차 호남 지방 사목 순시를 마치셨다.

사진제공=정성길·한국민속홍보센타, 해설=윤광선·영남교회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