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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제의 실상 - 상담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47. 미스O의 결심/조순애

조순애ㆍ시인ㆍ선일여고교사
입력일 2011-05-17 수정일 2011-05-17 발행일 1983-04-10 제 135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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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생계 맡은 사회 초년병의 고민
어른들에게 도움 청하고 해결해
목소리가 곱고 작은 미스O는 말을 천천히 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 미스O가 현재의 상황을 그의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고백해야만 한다는 것을 납득하고 동의하는데도 긴 시간이 흘렀다.

「지금 저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 어머니와 두 동생이 불쌍하지만 이젠 어쩔 수가 없어요.」

격하지도 않고 조용히, 아주 느릿느릿 말문을 열었다.

좀 답답한 느낌으로 상담은 시작되었는데 한 시간 이상을 미스O는 시종일관 그런 어투였다.

작은 회사(?)에 근무하는 경리 미스O는 1년 동안 그 회사의 사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그 사장의 사모님이 괴롭히기 시작했고 달콤하고 뜨겁던 사장님과의 사이도 악화되어 버렸다.

이곳을 떠나라는 것이다. 첫 번 관계를 갖게 되었을 때, 우는 미스O에게, 자신은 이미 마누라와는 남과 다름없는 사이이고 언젠가는 새장가를 들 결심이라던 그 사장이, 그 마누라와 합세해서 미스 O를 냉대하는 것이다.

이제 스무 살 밖에 안 된 꽃다운 나이의「미스O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이라도 했었나요?」그럴 리가 없었다.

그 인색한 중년의 사장은 여관비를 지불하고 맥주와 저녁을 사주었을 뿐, 새 옷가지 하나 변변히 선물한 적도 없었다.

몸이 허약해서 부엌일도 힘에 겨워 식구들 뒷바라지도 신통하게 해내지 못하는 어머니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남동생을 미스 O는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책임을 져야 했다.

십년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겨우 겨우 야간 고교를 지난해에 졸업하곤 공장 취직이 된 곳이 이 회사.

이런 종류의 전화 상담을 수 없이 받아 왔건만 미스O의 경우는 좀 언짢은 느낌이랄까, 짜증 비슷한 감정이 일어남을 어쩔 수가 없다.

사모님의 입장에서 상담해 오는 경우에 그 사모님들은 거의가, 앙큼한 여비서나 직원과 능구렁이 남편 때문에 그 자신들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의 사장 남편들은 많은 금품을 날리고 가족을 냉대하는 파렴치한이었다.

그런데 미스O는 도대체가 어떤가 말이다.

쫓겨나면 당장 남동생들의 등록금이 문제이고 입에 풀칠이 불가능하다는 미스O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요즘의 청소년 같지 않았다. 무슨 신파극의 줄거리 같아 철지난 느낌이고 어안이 벙벙했다.

안타깝기도 했지만 무슨 여자가 자존심도 없나 싶어.

「좀 크게 말해 주세요.」하고 내가 먼저 목청을 높이며, 「선생님 시간이 바쁘신가 보죠」

엉뚱한 인사(?)를 하는 미스O와 같이 정리해 나갔다.

사모님과의 만날 약속 날짜가 닥쳐오니 도망이라도 가겠다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이 회사에 더 근무할 이유는 없지만 새 직장을 구하기까지 버터야 만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처음에야 놀라움이 크겠지만 어머니와 의논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른이 개입되어야 억울한 누명 같은 건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는 아마도 시장에서 장사하는 이모와 함께 의논하고 사모님과 만날 거라고 겨우 미스O는 해결안을 찾을 듯 했다.

「오늘밤 어머니와 의논 하겠어요.」

미스 O의 결심을 나는 크게 격려해 주었을 뿐이었다.

이런 불상사는 불가피한 걸까?

수많은 미스O의 목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들이 허공에서 울부짖는 착각을 한다.

조순애ㆍ시인ㆍ선일여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