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엮는 신년수상 릴레이] 5. 약속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며…/지요하

지요하ㆍ작가ㆍ대전교구 태안본당사목위원
입력일 2011-05-17 수정일 2011-05-17 발행일 1983-02-06 제 134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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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어긴 후배통해 자신 반성하게 돼
크고 작은 약속 지키며 살고 있는지…
水兄.

안녕하신지요. 새해 인사가 너무 늦었읍니다. 금년도 벌써 1月 한달이 뉘엿뉘엿 서산마루에 기우는데 나는 무얼하느라고 이 제사 당신께 새해 첫 인사를 드리는지 모르겠읍니다. 지난해 늦가을, 아니면 초겨울이던가요, 당신과 감격의 해후(邂逅)를 하였을 때, 앞으로는 자주 자주 소식을 드리겠노라 나 스스로 힘껏 다짐드렸던 그 약속을 식언(食言)이나 하듯이 허물고 또는 기피해온 것도 같아 정녕 죄스럽고 부끄럽고 웬지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어쩌면 내 정열과 능력의 한계, 감성과 언어의 빈약, 주위환경의 불일치와 게으른 천성이 부끄럽고 두려워, 차라리「숨고 싶음」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픔은 내가 요즘 들어 약속이라는것, 약속의 참 의미와 가치들에 대해 깊이 생각을 기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읍니다.

水兄.

작년 말경에 나의 연로하신 아버님께 불행한 일이 있었지요. 골수염이라는 우환에 발가락 하나를 도죽맞으신 일이었읍니다. 내 아버님께서는 절친한 벗을 삼으셨던 술(酒)과도 석별을 하시고 무려 두달가량이나 벼원엘 다니시면 여간 고생아니셨읍니다. 그런데 그때 매일같이 병원에 다니셔야 하는 아버님의 걸음을 여러 교우들이 번갈아가며 대신해 주었던 것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교우로서의 정, 그 진진한 실감같은 것을 나는 잊을 수가 없읍니다. 나는 그때 이미 옛날에들통나 버린 나의 빈궁(貧窮)을 우기로하여 오토바이를 가진 교우들을 차례로 호출해 대었던 것입니다. 내일은 누구, 모래는 누구 하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순서를 짜서 약속을 받아놓고는, 그 약속의 이행상태를 조금은 음흉하게, 말하자면 체크를 하곤 했던 것이지요. 오토바이를 가진, 또는 탈 줄 아는 교우들에 대한 부러움과 고마움을 가슴에아로 새기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교우 아닌 다른 친구한테도 더러 신세를 지곤 하였는데, 어느날 후배 한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읍니다. 난느 진작부터 그의 여러가지 부탁들을 들어주고 도와주는등 그와의 약속을 한가지도 어긴 적이 없는데 그래서 그에게도 부탁을 했던 것인데, 그는 12시까지 오기로 한 약속을 방바닥에 파묻어 버려 나로하여금 끝내 3천원의 택시비까지 지출케 만들고서는, 나중에 나로부터 나의 실망과 낭패들을 얘기 듣고서도 그럿에는 아랑곳도 않는 체로『글쎄, 미안하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는 고작한다는 소리가『몸이 좋지 않아서 오전 내내 방바닥신세를 지며, 다른 사람부르겠지, 하고 생각 하였다나?.』그렇게 태연히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섭섭함을 지나 어이가 없고 분노와 증오심마저 끓어올라 오랫동안 비장(秘藏)해 두었었던 나의 험구(險口)를 아낌없이 드러내버리고 말았읍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에게 비난을 퍼부어대는 나에게 비난을 퍼부어대는 나의 마음보가 우선 뻔뻔스럽고 일방적인 것이 아닌가, 떫은 의심을 풀었었읍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오종종한 이기시뫄 빈궁이 치졸하게 느껴지고 혐오스러워 그에게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떤 절망같은 것, 확실한 하나의 좌절감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水兄.

내가 왜 이 고귀한 지면을 빌어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이상한 감이 드시겠지요. 혹 마음이 언짢으실지도 모르겠읍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냐 하면, 나와의 그 약속을 망실해 버리고도 미안해하지 않은 그 사랑으로 하여 나는 나자신을 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보이지도 않을 이 지면을 이용하여 그를 계속 비난함으로써 내 마음의 무엇을 위무하고 해소하려는 뜻은 추호도 없었읍니다.

나는 우선 그 사람 나름대로의 사정때문에 어쩔수 없었던 그 약속의 망시를 조금도 관용하지 못하고 내 사정만을 앞세워 험구를 드러내었던 나의 소졸함을 많이 반성하였지요.

그리고 가만히 나 자신을 돌아 보았읍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 마음 자세로 사람들과 약속을 하고, 또 어떻게 그 약속들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 내 지나온 삶의 노정(路程)안에 더불어 있는 온갖 형태의 크고 작은 수많은 약속들을 하나하나 애써 떠올려도 보았지요.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고 통렵히 무서워지더군요. 나와 더불어 있는 수많은 허술한 약속들과, 약속들의 망심과 파괴…심지어는 수년전에 서울에서 외상술값 떼어먹은 일까지 떠올라 미치게 괴로와지더구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려운일은, 나로서는 하찮은 약속이라도 상대방에게는 그것이 더없이 중요한것일수도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거의 망각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었읍니다.

나의 이같은 허술한 삶이 우리 사회의 깊은 불신, 또는 체념의 진구렁과 사이좋게 연대하고있는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의 대목에서는 진땀이 나더군요.

그동안 우리 국민들을 수없이 좌절케하면서 불신의 진구렁으로 내몰아 거의 불감증환자로도 만들어 버렸던 거짓정치의 공약(空約)들…그 무수한 약속의 파괴들이 벌떼같이 떠오르며 필경은 그것들과 나의, 또는 우리들의 분명하지도 철저하지도 못한 삶의 모습이 결코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마저 왕왕거려 왠지 나를 더욱 슬프게 하더군요.

水兄.

나는 요즘들어 가끔 종교는, 특히 우리교회는 거대한 약속의 우람한 요람이라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약속해주셨고 그 약속들을 지켜주고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인 교회…그래서 차라리 약속의 모습인 교회가 아니겠는지요. 신앙이라는 것은 따지고보면 주님과의 약속을 향해 끊임없이 확인하고 실천하며 나아가는「약속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연초에 하느님께 드렸던 최초의 기도를 간략히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을까합니다.

『주님, 올해부터는 모든 약속을의 아름다움을 더욱 사랑하며 살겠읍니다.

주님과 제 이웃들과 그리고 지 자신과도 좋은 약속들을 하고, 힘껏 실천하며 살 것을 약속드리겠읍니다…』

水兄,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지요하ㆍ작가ㆍ대전교구 태안본당사목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