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일선 교리교사의 수기] 44. 교안/정점길

정점길ㆍ서울 도봉동본당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11-07 제 1329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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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職의 많은 업무중에도 가장 힘에 겹고 거추장스런 업무 중의 하나가 敎案을 쓰는 일이다. 심지어는『나에게 敎案만 쓰지 말라면 평생을 敎職에 종사하겠다』고 농담반ㆍ진담반으로 말하기도 할 정도로 우리들 敎師들에게는 敎案이 부담스럽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안을 쓰고 있고, 또 윗 관청에서 지도를 나오면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교안이다. 그러기에 꼭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오히려 교안이 더 쓰기가 싫은지 모르겠다.

그런 교안을 우리 본당에서는 세안(細案)으로 작성하고 있고, 또 이를 매주 목요일 교사회 때 각자 발표를 한다. 처음에는 정말 부담스러웠고 어떤 때는 교안 발표가 싫어서 교사회에 빠지고 싶은 생각가지도 들었었다. 그러나 발표된 교안에 각 교사들의 의견을 더 첨가하고, 내용을 보충하여 미처 내가 생각지 못했던 좋은 사례들을 많이 전할 수 있어, 이제는 교안 발표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하게 까지 되었다.

교안 발표를 하지 않을 때는, 한 주일동안 깜빡 잊고 있다가 주일 아침 허둥지둥 성당으로 달려가 미사 시간에 교재를 들여다보며 엉터리 연구를 하기도했고 더 급할 때는 아무 준비도 없이 학생들 앞에 서서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서운것은 어린이들이었다. 어떻게 교안 여군가 없었음을 아는지 더 소란 하고, 더 분위기가 산만하여 그 날따라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교사를 가장 잘 평가하는 사람이 바로 학생이라고 했다. 정말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는지 모른다.

나이가 어리다고 경험이 없다고 무시했다가는 때때로 큰 낭패를 보게될 수도 있는것이 바로 학생들의 눈이다.

그보다 더 큰 소득은 목요일의 교안 발표를 위해 거의 월요일부터 교리 생각으로 가득차 항상 하느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것일게다. 이 또한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일주일 내내 주일학교 생각만 하고 있는것 같아 짜증스럽기도 했는데, 그 짜증이 이제는 낙으로 변했으니 세상 만사는 생각 나름이라고 했던가

오늘도 어린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그리며 항상 포근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체취를 느기면서 하이얀 교안 종이를 메워가는 손길은 피곤을 잊은지 오래다. 누가 귀찮다고 했던가? 누가 번거롭다고 했던가? 가장 보람된 일인것을,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을. <계속>

정점길ㆍ서울 도봉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