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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스띠노 시절 ] 9. 공의회와 미사전례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11-07 제 1329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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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전례 변화로 성당건축양식 변경
미사예절 사제인도에서 예수중심의 잔치로
공의회후 제대위서 벽쪽으로 옮겨 감실 위치
제2차「바티깐」공의회전에 입교하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번 공의회에서 우리 눈으로 보기에 가장 두드러지게 개혁된 것이 있다면 전례의 개혁이요,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모든 전례의 핵심이 되는미사 전례의 개혁이었다는것을 알 것이다.

미사禮典이 개혁되니 제대가 개혁될 수밖에 없었고 제대가 개혁되니 성당 건축 양식이 바뀌어 질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든다면 공의회 전에 지은 성당의 모델은 이 때까지 말해온 신학교 성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성당에는 드나들기가 어려울 뿐아니라 신학교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지은 성당이기 때문에 차라리 계산동 주교좌 대성전을 모델로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며 공의회 후에 지은 성당의 모델은 내당동 성당을 들수 있겠다.

그 나머지 성당들은 거의가 공의회 전에 지음 성당인데 공의회 후의 예전에 부응하기 위하여 제대의 위치만 바꾼 것이 대부분이다. 간혹 공의회 후에 지은 성당도 더러있으나 여러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제 규격 대로 짓지 못한 실정이다. 공의회전에 지은 성당의 특징은 지난 번에 신학교 성당을 설명할 때 말한 것 처럼 제대를 성당 벽쪽으로 모시고 제대 위에 감실을 모시고 감실 위에 십자가를 모신 형태요, 공의회 후에 지은 성당은 제대를 성당중앙에 모시고 십자가는 제대위 공중에 매달리게끔 모시고 감실은 성당 옆쪽에 따로 모신 형태다. 미사를 드릴때도 공의회전의 양식은 사제가 감실위에 모셔둔 십자가를 향하여 미사를 올렸고 미사중에 가끔 신자들을 돌아보고『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면, 신자들은『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답을 하고 사제는 다시 제대위에 모신 십자가로 향해 미사를 계속했다. 미사의 이 형태는 십자가를 앞세운 사제(牧者)가 미사참례하는 신자(羊)들을 끌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형태다 혹시 뒤에 쳐져서 못따라오는 사람이 없나하고 가끔 뒤돌아서서 보살펴주는 형태다.

그런데 공의회후의 미사예절은 예수님의 상징인 제대를 중심으로 사제와 신자들이 다같이 빙 둘러앉아 고개만 돌리면 제관인 사제는 물론이요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도 누구나 다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 형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두 정답게 모여 잔치하는 형태이다. 그러면 전자와 후자의 형태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자는 목자인 사제가 그리스도의 깃발인 십자가를 앞세우고 자기 양들인 신자들을 이끌어가는 형태요, 후자는 사제와 신자들이 한데 어울려 예수님의 성체(떡 = 면병)와 성혈(술 = 포도주)을 앞에 놓고 먹고 마시며 잔치하는 형태이다.

미사 전례가 공의회 전과 후가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이것은 신학자들이나 예전학자들의 분야이므로 내가 여기서 용훼한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같기도 하고, 내가 써야할 글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 같아 외도라는 느낌도 들지만, 이 기회에 신자들이 알아둠이 좋을 듯하여 설명해 보겠다.

미사는 제사. 그렇기에「미사성제(聖祭)」,「聖祭」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이지 않는가. 그런데 제사에는 다섯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제물을 준비해야하고(제물의 준비) 둘째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잡아야 하고(제물의 희생절차) 세째, 희생된 제물을 하느님께 바쳐야하고(봉헌절차) 네째, 하느님께 바친 제물을 우리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회식절차」이로써 인간편에서 해야 할 일은 다 끝난다. 이제 남은것은 다섯번째로 하느님의 응답이다 인간이 올린 제사를 하느님이 가납하셨다면『너희 제사를 가납했노라』는 표로 우리에게 은총을 내리실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시면 제사는 완결된다.(계속)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