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백주 사목회의 - 의안준비위원회 중간보고] 3. 선교 - 상

강우일ㆍ신부ㆍ선교 의제 연구위원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09-26 제 132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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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뿌려질「토질」분석 선행
성령 함께한 선교정책 수립을
교회전승이 제시하는 선교 이념

선교의 본질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신안에서 아버지이신 당신께로 나아가며 당신의 철주성에 참여 하도록 부르신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이 지상에 당신의 구원 사업을 계속하시고 완성하시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모든 인류를 향하여 파견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 하는 자이다. 즉 교회는 그 내적 본질에 있어서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구원을 향해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그 구원이 지금 이 자리서부터 서서히 이루어져 나가도록 노력하고 돕는 존재 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교회는 인간을 복음으로 불러 그리스도안에 새로운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며 또 인간의 생활 전체가 하느님의 섭리에 부합되게 변화 시켜 가는 것을 근본 사명으로 한다.

선교의 자세

어떤 사람이라도 복음적 진실로 받아들이고 복음 정신에 따라 스스로의 생활을 변화 시키려면 참된 회개 즉 내적 쇄신이 먼저 필요하다 (복음선교 18)이러한 내적쇄신을 사람들 가운데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내적쇄신을 체험 해야 한다. 즉 교회는 자신이 선포하는 기쁜 소식이 내용을 참으로 믿고 실천 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인자로서의 기쁨을 체험 해야 한다. 복음을 받아들인자의 기쁨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빠스카의 신비가 재현 되어야 한다.

즉 교회는 복음을 자신안에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비우는 고통과 아픔을 직면 해야 하며 그러한 고통의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참된 기쁨의 열매를 체험 할 수 있게 된다. 선포와 증거 행위는 본연의 선교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을 향해 교회가 선포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안에 실현된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구원이다. 그러나 그 구원은 인간의 영혼만을 대상으로하는 구원이 아니고 전 인간적인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 표시로서 사람들을 병고로부터 해방시키시며 도시와 시골을 두루 돌아 다니신것은 바로 구원의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준 것이다. 그렇 다고 해서 그 구원이 이 세상의 역사적 차원에서 문명의 발달과 진보로 인간의 욕구를 충복시켜 줄 때에 완성 될 수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그 구원은 우리 역사에서 이미 시작은 되었으나 아직 미완성이고 역사를 뛰어넘는 종말론적「때」를 맞이하여 비로소 성종말론적 전망이 결여될 때 우리가 들어낸 하나의 주의와 운동으로 전락할 것이다.

선교의 방법

예수그리스도는 2천여년전 팔레스티나의 주민으로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와 풍토를 살며 그 것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 하셨다. 말씀은 영원하나 그 말씀이 강생 할때는 항상 역사를 입는다. 따라서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이 오늘 이 곳에 강생하도록 준비하기 위하여 자국문화 · 사회 · 학문 · 타종교 · 비 가톨릭 크리스찬과의 대화를 꾸준히 시도 하여야 한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복음이 부려질 토양과 토질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이 선행 되면 그 다음 단계로 교회는 뚜렷한 선교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교회가 면밀한 선교 정책을 수립하여 선교 활동을 추진하지 않는 한 현대에 있어서 교회 본연의 사명인 복음 선교를 수행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면밀한 선교 정책을 세웠다 하여도 성령이 일하시지 않는 곳에는 아무런 열매도 맺어질 수 없다. 즉 우리의 선교 활동은 항상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속에 시작되고 끝나야한다. 이 친밀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간단없는 기도 생활 뿐이다. 기도는 복음화를 이룩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기도 생활 자체가 복음화 행위이다. 기도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진실한 친교와 일치는 그것으로 이미 구원이 실현 되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한국교회의 선교

천주 신앙 수용시의 조선 사회

이 세상에는 자연 발생이란 없다. 1784년 북경에 들어간 이승훈의 세례는 한국교회 창립을 위한 하느님 은총의 최초의 유기적 전달이었다. 그러나 그 일에 앞선 기다림의 시기에 한국인 스스로가 신앙의 씨앗을 가꾸어왔고 교회를 설립 하겠다는 천주 신앙 수용의 발의가 있어 은총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이 천주 신앙 한국 수용의 기본적 특성이다. 성리학적 가치 체계가 지배적 원리이던 조선 사회에 유교적 교양을 가진 지식인 사이에서 내재적으로 자라난 전통적 가치 체계에 대한 회의가 외래적인 천주 신앙과 실천으로 열매 맺어졌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당파 정치에 새로운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반면 영 · 정조에 이르러 부흥을 향한 정치적 노력이 크게 일었다. 경제적으로 부세 제도의 개편으로 재정은 늘어나고 있었고 농업 생산이 증가되고 농업 경영의 급격한 변화가 생겼으며 수공업 활동의 자유가 진전되고 광산 개발도 진전되는 상황이었다.

또한 상업의 성장과 함께 화폐 경제가 크게 발달하고 농업 생산력의 강화, 수공업 활동의 발전등으로 국제무역이 크게 신장되면서 물화 유통이 확대되는 배경을 안고 있었다.

18세기 조선후기 사회의 정치 경제적 변화에 따라 사회 생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같은 사회적 변화는 신분제도의 변화와 서민 사회의 성장, 그리고 인구의 도시이동 현상으로 나타났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정치사회의 안정 · 경제활동의 성장과 전통적 신분제의 동요등이 배경이 되어 전통적 학문 · 사회 윤리에 대한 재인식 · 외래 문화에 대한 관심의 진작 · 서민층의 문화창조 참여 등 새로운 문화 기운이 조선 후기 사회에 감돌게되며 변화를 촉구하게 된다.

신앙 수용기의 선교상

한반도에 천주신앙을 부식하고 마침내 교회를 창설하여 오늘에 이르게한 만남은 조선 사행원들의 북경교회 방문으로 이루어졌다. 사행원들은 북경에서 교회를 방문, 서양인 성직자들과의 필담을 통해 서양 문물과 한역 서학서를 문화적 통쇄 사회었던 한반도로 도입했다.

한역 서학서의 학문적 접촉이 천주 신앙의 도달을 이끌었다. 도입된 한역서학서의 학문적 연구가 심화되는 가운데 이벽 · 권철신 · 권일신 정약종 · 정약용 · 이승훈 등은 마침내 자율적인 서학 연구를 통해 천주 신앙을 수용 하게 된다.

초기 천주교인들의 천주신앙 수용은 보유론적 수용이었다. 천주교 신앙의 자율적 도달은 18세기 중엽 조선후기 사회의 움직임을 배경으로하여 이루어진 진취적 문화 수용의 일면이었다.

유교적 전통사회의 일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천주 신앙의 수용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의 배려로 이루어진 것이다.

북경 주재 선교회 신부들의 복음 전교에 힘을 주고 서양 문물을 통해 서양에 대한 관심을 진작하고 한역 서학서를 통해 천주학을 유도하고 천주 신앙에 도달하도록 문화적인 전교 방법을 취하게한 오묘한 천주의 은총이 보다 철저한 삶을 찾던 실학적 지식인들의 심금에 오묘하게 접착하면서 자율적인 천주 신앙을 이끌었던 것이다.

초기 한국교인들의 선교 자세는 함께 구함을 누리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첫째 직접 전교에 나섰다. 주변지식 계급에 직접적인 교리해설과 한역 교리서를 주어 천주신앙으로 인도 하였다. 둘째로 난해한 한역 교리서를 쉬운 한문으로 요약, 정리한 한문 교리서와 한글만을 깨우친 서민과 부녀층을 위한 한글교리서를 저술, 간행했다. 셋째로 문자를 깨우치지 못한 서민 대중을 위해 노래로써 교리를 익히게 하는 방법을 써 전통적 생활 감정으로 천주 신앙을 노래로 엮은 천주 가사를 지어 유포케했다.

요컨대 한국 천주교 초기 교인들은 자율적 학습으로 천주 신앙에도 달하고 교회를 창설하는 이적을 일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 자각에 의해 선교에 헌신하여 한국 교회가 최초로 성직자 주문모 신부를 맞게 되는 1785년까지 10년 간에 모진 박해의 상황에서도 4천 명의 교인을 가지는 교회로 발전시켜 놓았다. 이러한 귀중한 업적은 구속을 같이 누리고자 구한은 초기 교인들의 선교 활동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계속>

강우일ㆍ신부ㆍ선교 의제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