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나의 유스띠노 시절 ] 5. 성모동산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08-29 제 1319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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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담 따라 열 지은 탱자나무
조형미 있게 짜여진 여러갈래
성모당에서 이번에는 남산성당쪽으로 가보자.

지금은 성모당에서 돌아오면 우선 담과 쪽문이 사람의 길을 가로막고 있지만 옛날에는 이것들이 없었다. 다만 성모당 언덕밑으로 벽돌담이 있었고 그 담안으로 탱자나무가 담을 따라 열을 지어 쭉 버티고 서 있었는데 혹시 담을 뛰어넘어 침입해올 놈이 있을까해서 이중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담은 이 형태로 동남으로 휘어 돌아가는데 여기서 먼 저번에 말한대로 주교관 안넥사 옆으로해서 南進해오던 오솔길과 만나게 된다. 이미 말한바 대로 지금은 성당이었고 사제관 수위실 유치원 본당소속 수녀원 복사집이있고 그리고 효성여고 운동장등 등이 있다

심히 복잡하고 어지럽게 크고 작은 건물들이 복닥거리며 비비적거리고 서있지만 그 때는 이것들이 없었다. 하나도 없었다.

다만 잔솔나무가 동산을 보기좋게 에워싸고 참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드문 드문 반주라도 넣듯이 보기 좋게 섞여 있었다. 그 밑에는 잔디와 억새풀이 무릎 위에 찰정도로 자라 있었고 그 사이로 산책로가 규모 있게 뚫려 있었다.

옛날 이 동산의 짜임새를 잘 알고 있던 한 토목 기사에게 들은 이야기지만『이 동산의 길은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만든것이 아니라 훌륭한 토목 기술자의 정성어린 고심의 걸작품』이라 했다. 그 이유는 이 동산의 정문에서 본관 건물이 바로 보이지 않게 길이 비스듬히 굽어 있어 좀 걸어 올라와서야 본관이 보이도록했고 보관으로 올라가되 바로 올라가지않고 (층층대 오르는 길을 바로 올라가도록 돼있지만) 주교관 가까이가서는(먼저번에 자세히 설명했음) S형으로 휘어진것은 차도를 위해 勾配관계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조형미를 안중에 둔 설계였으며 동산 안의 여러 갈래 길도 멋지게 서로 연관되어 짜임새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다 아까 가던 길을 다시 따라 가자. 담을 따라 東으로 가다보면 담은 北으로 꺾이는데 이 어름에 먼저도 말한 바 있는 중국인의 채마전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성직자 묘지가 나온다. 묘지 정문쪽으로 가지 말고 묘지 동쪽 담과 지금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이 담벽 틈사이를(너무 좁아 통행할 수 없다) 빠지면 묘지 언덕 길 후미진곳에「못」이 라기에는 좀 민망하고「웅덩이」라기에는 좀 얕잡아 본 것같은 느낌이 드는 물 옆에는 수양버들 한 그루가 여기 고인 물안에 제모습을 수줍은 듯 남몰래 비춰보고 있었다.

여기서 西쪽을 쳐다보면 주교관이 플라타너스 숲 속에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좀 더 가면 벽돌담은 그냥 계속되고 탱자나무 울타리만 한쪽 팔을 쪽 뻗는데 이 탱자나무 울타리에 막혀 길은 90도로 꺾여 주교관으로 향하게 된다.

조금 더 올라가면 탱자나무 울타리도 끝나고 북쪽에서 오는 것과 마주치는데 북쪽으로 가면 예비과생用 화장실과 제일 운동장이 나오고 바로 올라가면 주교관으로 오르게 된다.

이 길은 사람의 내왕이 거의 없지만 길의 형태만은 완연하다. 잡초가 길바닥서 조차 마음 놓고 잘고 있었다. 도연명이 이 길을 걸었다면「三徑이 荒巖…」하며 詩 한수쯤 엮어보았음직한 길이었다. 이 길남쪽은 채마전이요 길 옆에 조그마한 창고가 있었는데 여기는 신학생들 침대 이불밑에 깔 메트리스를 장만하기 위한 보리 짚을 쌓아두었다. (그 때 메트리스는 광목안에 보리짚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길 북쪽은 예비과 학생들의 제 이 운동장인데 한 가운데 남북으로 一字로 꽤높고 넓게 그리고 밋밋하게 쌓아 올린 벽돌담이 있었으며 소신 학생들은 이 담을 이용, 공치기를 했던 것이다.

이 운동장 서쪽 끝에 먼저 말한 서상돈 선생님의 기념수 老松이 제 쪼대로 구부러져 키는 과히 크지 않지만 굵은 몸통에 가지 만은 여러개 뻗어 위가 반반한 것이 마치 꼬부랑 할머니가 떡광주리를 두팔로 이고선 모양을 하고 있다.

운동장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오던길을 바로 올라가면 지금 올라가는 길과 학교 정문에서 올라 오는길, 주교관 마당에서 나오는 길이 마주치게 된다. 말하자면 육거리가 되는 셈이다. 이상에서 주교관 정원에 관한 것은 대략 말했으니 이제는 교구청에서 신학교쪽으로 읽는 독자들 가운데는『너절한 놈 이쯤에서 끝마치고 이제 본제로 들어가지』하시면서 짜증을 내실분이 계실지 모르나 뒷 이야기가 더 잘 납득 되기 위함이니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하시다. (계속)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