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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미 수교 100년 가톨릭 주역들] 6. 소재건 신부

입력일 2011-05-16 수정일 2011-05-16 발행일 1982-07-04 제 1312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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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으로 국내서 활동하는 유일한 수상자
아동복지·의료봉사 사업에 헌신
소년의집·결핵요양소·갱생원·무료종합병원 등 운영
소 알로이시오 신부, 본명은 Aloysius Schwartz 이다. 한국 이름은 소재건, 그리고 부산교구 소속이다.

소 신부가 한 미 수교 1백주년을 맞아 유공 미국인으로 선정된 것은 약간 뒤늦게 알려져 한 미 수교 유공 미국인중 가톨릭측 인사는 당초 5명에서 6명으로 늘어났다.

따라서 메리 가별 수녀가 가톨릭측 수상자 중 유일한 생존자로 잘못 알려졌었으나 소 신부는 가톨릭측 수상자 중 지금도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수상자이다.

소 신부는 1930년 9월 18일 미국「워싱턴 D·C」체닝가 22번지에서 출생, 1953년 7월 미국메리놀회 신학교를 졸업한 후 벨리게「루뱅대학」신학부를 졸업, 1957년 6월 29일 사제로 서품됐다.

루뱅 대학에서 수학 중 그 곳에서 한국인 성직자 · 평신도 등을 알게된 소 신부는 당시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와의 협의하게 부산교구 소속으로 미국「워싱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 같이 외국인으로서는 극히 드물게 한국의 교구 소속 사제로 서품된 소 신부는 그해 12월 10일 내한, 부산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에 온 소 신부는 舊 메리놀 병원이었던 대청동(現주교관)에 몰려있는 빈민 환자들, 충무동 다리밑 걸인들을 방문하면서 이들을 위해 사업을 해야 되겠다는 것을 구상했다.

내한 하자마자 가난한 이들을 찾아 보고 위로 하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에 골몰하던 소 신부는 내한 이듬해인 58년 겨울 병을 얻어 메리놀 병원에 입던 치료를 받았으나 악화되어 일시 미국 요양길에 오르기도 했다.

62년 3월 재차 내한하여 송도본당 주임을 맡은 소 신부는 본국 요양 중에 준비 작업을 해 온 민간 원조 단체인「한국자선회」를 62년 8월 20일 미국「워싱턴D · C」에 설립, 회장직에 취임하여 복지 사업 운영 자금을 공급받고 있다.

65년 송도본당 재임중 송도 가정(고아원)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아동복지 사업에 뛰어든 소 신부는 68년 8월 5일 재단 법인 마리아 수녀회를 설립, 복지 사업에 수녀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오늘의 사업이 가능토록 했다.

소 신부는 64년부터 4년간 당시 부산의 대표적인 빈민지역인 대총동 · 보수동 · 아미동 · 감천 등 4개 지역에「자수(刺繡)구호사업」을 전개했다.

자수구호사업이란 일종의 취로사업으로 1개지역에서 5백 명씩 2천 명의 극빈자들을 선발, 수를 놓게 하여 임금을 지원하고 이예 수품들을 외국 은인들에게 선물했다.

이때 임금은 상당히 높게 지불하여 이들의 생활에 크게 보탬이 되었다.

이어 소 신부는 69년 9월 1일 부산 시립 행려 환자 구호소(당시 수용인원 1백 명이 대부분 결핵환자)를 부산시로부터 인수, 결핵 요양소로 운영하고 있으며 부산 구호 병원(70년)부산 소년의 집(73) 학교법인 소년의집 (73) 부산 소년의 집 국민학교(73년) 부산 소년의 집 중학교(74년) 등을 건립,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사업은 부산 지역의 사업이며 서울 소년의 집(75년) 서울 소년의 집 국민학교(75년)와 81년 1월 1일부터는 갱생원을 서울시로부터 인수 운영하는 등 서울 지역에서의 활동 비중이 커가고 있다.

아동 복지 사업과 의료봉사 사업을 주사업으로 전개해온 소 신부는 지난 해 1월 서울 시립갱생원을 인수함으로써 성인 남자 구호 갱생 사업까지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소 신부의 아동 복지 사업은 유치원부터 시작, 초ㆍ중ㆍ고ㆍ전문대학까지 자체내 시설로 이루어져있어 아동 복지 사업으로는 국내에서는 그 규모나 시설 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과 부산에 침대 1백20개 규모의 완전 무료의 종합 병원을 운영, 이들 시설기관 수용자들의 1백% 교육과 의식주 · 의료 혜택까지 받고 있다. 서울과 부산에서 전개하고 있는 소 신부의 사업 규모는 서울과 부산 소년의 집 수용 고아 3천8백 명 서울 갱생원의 집 없는 성인 남자 1천4백 명 부산 구호 병원과 결핵환자 수용소의 환자 2백50명 등 5천여 명의 수혜자가 있으며 연간 5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경비가 소요된다. 이 운영금은 대부분「한국자선회」의 지원으로 해결하고 있으며 서울과 부산시의 보조는 20여%에 불과하다.

소 신부는 이러한 엄청나기까지한 규모의 사업을 하면서도 지금도 아침과 점심 식사는 자신이 손수 만들고 있으며 딱딱한 나무침대와 책상과 나무의자 뿐인 검소한 집무실 등은 보는이들의 고개를 절로 숙이게 만든다.

소 신부의 이러한 업적은 국내에서 널리 알려져 국민훈장 동백장(75년)5 · 16 민족상 교육부문본상 (76년) 등을 수상했으며 금년 2월 10일에는 부산시로부터 명예 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또한 78년 5월 6일에는 미국 포담대학교에서 그 동안 한국에서 행한 모든 봉사 사업이 인정되어 명예학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심어온 소 신부는 지난 6월 29일로 사제 서품은 경축을 맞이했으며 내한25주년이 되었다. 이날은 서울 소년의 집 옆에 마리아 수녀회 도티 기념 병원이 준공 개원되어 갱생원 원생들과 소년의 집 아동들 그리고 지역내 영세민들에게 완전 무료로 의료 혜택을 베풀 게 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