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태리「알비」마을 코레아 씨들 과연 한국인 후손인가? .4

입력일 2011-05-10 수정일 2011-05-10 발행일 1982-05-23 제 1306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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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촌사」엔 큐리아씨 개명인것으로
「알비 」지역 18C 역사 줄줄외는 사학도 역시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일 가능성 배제
깔라브리아州의 「시라」고지대에는 도청 소재지인 카탄자로에 우선 10명의 코레아씨가 전화번호부에 올라 있고 세리아 (Sellia)에 2명, 타베르나에 2명, 마기사노에 3명, 세르사메에 5명, 시메리·크리치에 1명 등 모두 23명의 이름이 있었다.

대부분이 자기네들 가계에 대해 어림 짐작으로 고조부 정도까지만 훑어 올라 갈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서투른 커뮤니케이션으로 코레아씨 족보를 따져 본다는 것이 무의미함을 알고 망연해 할즈음 데르데노 氏는 타자로 친 「알비마을史」를 한권 구해 갖고 희색이 만면해 뛰어왔다. 데르데노씨는 자기성도 아닌 남의 姓의 뿌리 캐기에 공연히 덩달아 신바탕을 냈다.

알바村史는 깔라브리아 지방 대학 건축연구소에서 발간한 것으로 집필진은 쉬파니 · 까르메로 · 에라 · 토마소 · 산지 · 그레고리오 등 6명의 연구원들이 지형 · 경제 · 氏族 ·관광 · 기념비 · 예술 · 인물사 · 인구 등 9개 분야로 나누어 塞村史치고는 상당히 상세하게 기술 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小사전을 뒤적이며 윤곽을 더듬어가던 기자의 눈을 번쩍 띄게 하는 귀절이 나타났다. 이 책 10페이지의 氏族이 야기에 나오는 설명 가운데 1774년대의 브르봉家 치하의 까리브리아 지방 봉건領主의 학정을 피해「시라」산간으로 도망쳐와 정착한 이 지역에 깔린多姓 다섯개를 적어 놓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큐리아(Curia)氏, 코시(Coschi), 페라테리(Ferrarelli), 파로타 (Parotta), 두란테 (Durante)氏등 5개 姓氏가 이 지역에 가장 많은 주민을 형성 했는데 이가운데 큐리아氏들이 후에 코레아(Corea)姓으로 姓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姓氏를 개명한 정확한 년대는 언급이 없으나 1783년도 이후인 것만은 분명한데도 아마도 1800년대 초기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이같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기자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마을 유일의 여관인 시라 · 피에뜨로에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이튿 날 새벽 일찌 감치 렌트카를 몰라 「카란자로」로 달렸다.

그러나 건축 연구소의 알비洞史를 집필 했던 6인의 필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 했다. 이미 오래전이라 옮기고 이주하고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카탄자로」의 험하기 짝이 없는 도시의 계곡과 언덕 길을 누빈지 두시간 만에 기자는 실로 우연하게도 코레아氏 족보 찾기에 구세주를 만났다. 이름은 토니·포데로씨. 카나다에 이민가서 여행사의 세일즈·매니저 노릇을 하고 있는, 이곳에 멀지 않은 바리(Bari)대학 출신의 史學徒였다.

기자는 재빨리 그의 소매를 끌고 근처의 바(Bari)로 끌고가 좌정하고 따끈한 카프치노를 한 잔씩 시켜 놓고는 복사를 위해 알비 마을에서 빌려온 알비 洞史를 보여주면서 주요한 부분의 번역을 부탁했다. 물론 코레아는 시라 지역의 姓氏가 3백70년전 「로마」로은 안토니오 · 코레아라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가를 조사 중이라는 설명 곁들이면서 프란체스코 · 까르레띠의 「西印度洋과 東洋見聞{}」에 관한 설명을 쭉 늘어 놓았다.

표데로씨는 무릎을 치면서 『당신 바로 적격의 사람을 만났소』라고 대뜸 회색이 만면했다.

그의 설명인즉 자기는 인근 바리대학에서 이탈리아 史를 전공했는데 자기의 대학 졸업 논문 제목이 알비 지방인 시라지역에 관한 것으로 「시라 고지대의 財産形成」이었다는 것이었다.

포데로씨는 알비지역의 18세기 경에 있었으며 당시 코레아姓의 前姓인 큐리아씨 가문의 영웅 삐에뜨로·큐리아라는 인물을 연구하기 위해 6개월간을 이곳 저곳을 다니며 연구한 적도 있었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포데로씨는 이 지역의 코레아씨가 안토니오·코레아와 연관된 후손일 가능성을 거의 배제하는 논리를 전개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