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태리「알비」마을 코레아 씨들 광녀 한국인 후손인가? 2

입력일 2011-05-10 수정일 2011-05-10 발행일 1982-05-02 제 130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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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리아씨 개명ㆍ아토니오 코레아 불려진 연대 달라
한국 교회사의 주요 연구과제 돼야
안토니오는 수사 신부로「로마」서 활동했을 가능성도
현재 알비 마을에서 몇사람이 소지하고있는「알비마을 史」에 의하면 알비 마을이 위치해 있는「시라」(SILA)고원 지대는 1천7백년대에 당시 북부 시라지역에 위치한 「몬탈토」의 봉건영주의 학정을 피해 브르간디 족이 이 험준한「시라」고지대로 와서 정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많은 姓氏들은 코시(Coschi) 페라레리 (Ferrarlli)ㆍ파로타 (Parrota) ㆍ두란테 (Duranta) ㆍ큐리아(Curia)氏 등 5개 였는데 이 가운데 큐리아氏 들은 후에(정확한 연대미상) 姓氏을 코레아 (Corea)로 바꾸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들이 정확히 언제 일제히 姓氏를 바꾸었으며 왜 성씨를 바꾸었는가에 대해선 기술이 없는데 당시 큐리아 가문에 피에뜨로ㆍ코레아라는 호걸이 있어 영주의 폭압을 피해 이 지역에 활거하면서 재산도 약탈하고 관가에 반기를 들기도한 기록이 나와 있는데 당시 코데아家 들의 이미지 때문에 성씨를 바꾸지 않았을까 추측들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성씨를 쉽게 바꾸는 일부 사람들이 있어서 큐리아 姓이 코레아 姓으로 바뀐 사실은 크게 이상할 것도 불가능할 것도 없다』고바리(BARI)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다는 토니ㆍ포네로씨는 말했다.

이들 큐리아씨들이 개명을 한 것은 최대로 양보해 1780년 이후인데 카를레띠가 데려온 안토니오ㆍ코레아가 코레아로 불려지게 된 것은 1606년 또는 1670년경이어서 약 1백70년의 시기적인 간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냐가 바라브리아 지방의 코레아와의 유관성을 캐어내는 열쇠가 되고 있다.

기자가 깔라브리아 지방의 타베르나ㆍ알비ㆍ미기사노ㆍ카탄자로ㆍ세르잘네를 둘러 보며 코레아氏 들을 만나보는 동안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은 만약 한국인의 후예라면 당시 스페인 치하의 「兩시릴리王國」에 속했던 깔라브리아 지방의 교통망이나 통신망이 극히 원시적인 상태에서 당시『로마에서 敎務에 종사하고 있다고 기술된 안토니오ㆍ코레아가 왜 어떻게 이 머나먼 오지까지 흘러오게 되었을까』하는 점이었다.

안토니오ㆍ코레아가 실제 이 곳까지 흘러와 결혼하여 자식 낳고 농사꾼으로 여생을 보내지 않고 수사 신부가 되어「로마」에서 經身하고 絶孫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 우연의 일치로 1백70년 후 큐리아 姓이 개명한 姓과 동일하다고 해서 반드시 이태리의 코레아氏들이 안토니오ㆍ코레아의 후예라고 단정하기에는 사실(史實)의 추적이 너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그레고리안 신학 대학에서 교회사를 연구하고 있는 한국인 金喜中 신부는 안토니오ㆍ코레아의 족적이 반드시 남부 이태리의「깔라브리아」지방까지 흘러 갔으리라고 단정하는 것은 시기 상조라고 강조하면서 이태리의 코레아 姓의 本實 발굴작업을 위해 그는 이태리의 姓氏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1878년도에 간행된 이태리 성씨의 기원을 위한 어떠한 기준과 1925년도에 간행된 희귀 姓을 포함하는 「이태리 이름 사전」등을 포함한 7 ~ 8개 성씨 연구에 관한 책자에서도 코레아 성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면서 그는「깔라브리아」지방의 교회 세례 대장 혼배 대장의 문서 기록소들을 뒤져 코레아씨의 뿌리를 캐어보겠다면서 안토니오ㆍ코레아의 행적과 후손 여부 문제를 우리나라 천주교회사에서 주요한 연구과제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카탄자로群에 소속된 알비 마을은 인구 약 1천1백19명으로 7백10m의 고지대의 산등성이에 덩그러니 얹혀있는데 올리브ㆍ채소ㆍ목재ㆍ감자 등을 주산으로 재배하고 주민들 대부분은 목수ㆍ신기로 장수에 건축 토목공사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많은 주민들이 남부 이태리의 공업 지대로 일터를 찾아 이주하고 일부는 미국이나 카나다에 이주 했는데 코레아씨들은 약 2백여 명이 大姓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 곳엔 국민학교가 70명~80명 단위로 5개, 유치원과 교회 하나, 올리브기름 공장 1개, 식당 겸 호텔 1개 커피숍을 겸하는 바 (Bar)2개 등이 있을 뿐 적막하리 만큼 고요한 곳으로 이웃인 타베르나ㆍ마기사 노동 지로 가는 사람들이 자동차로 지날 뿐 외부에서 찾아오는 외래객도 뜸한 곳이다. 인근엔 1천미터가 너는 산들이 높이 솟아 마치 한국의 강원도 산골 동리를 방불케 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