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조선교구설정 150주 기념 신앙대회 결산 - 하

고국상 차장
입력일 2011-05-09 수정일 2011-05-09 발행일 1981-11-29 제 1282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온겨레 가슴에 주의 사랑 보여줘
2백주년 행사때는 미리 준비하는 슬기로움 배워야
신앙대회는 백50주기념 각 사업ㆍ행사의 피날레 장식
각 지역 공동체가 함께 모인 것은 엄청난 성공
조선교구설정 1백50주년 기념 신앙대회는 『성공적이었다』는 한마디로 압축되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해서 성공적이었다는 것일까? 전국의 주교사제 수도자와 신도들이 일시에 한자리에 모여 참회하고 신앙을 고백, 주안에 한형제임을 체험할 수 있었던 신앙의 대제전은 신앙인만이 깊이 느낄 수 있는 은혜이기 때문일것이다.

이번 신앙대회는 우선 외형적인 규모면에서 성공적이었다. 대회구성 여건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인원 동원면에서 대회본부가 최대한으로 잡은 참석 예상인원을 두배나 초과 달성하는 극적인 연출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믿는 이들의 행렬과 신앙고백과 참회、성가의 합창、미사봉헌은 각자의 신앙을 더욱 뜨겁게 체험할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다.

그리고 짜임새 있는 행사계획과 진행 또한 돋보였다.

6월 지구 신앙대회 이후 8월에 들어서서야 제 3기획 자문위원회로 뒤늦게 울범한 전례연구 기획위원팀은 짧은 준비기간에 비해 무리없는 진행으로 조선 교구설정 1백 50주년 기념의 백미(白眉)를 장식한 셈이다.

사실 조선교구설정 1백 50주년기념 신앙대회 라고해서 내용면에 있어 각 교구신앙대회、지구 신앙대회와 별다른 차이는 없다. 다만 외형적인 규모면에서 주교 사제 수도자 신도들의 숫자가 많았다는 것과 진행시간、그리고 가미된 프로그램에서 약간의 차이가 날뿐이다.

그러나 한 국가내에서 각 지역의 신앙공동체가 한자리에 모여 공동으로 신앙을 고백、한 형제임을 체험할수 있는 것은 같은 내용의 전례라 하더라도 그 의미는 엄청난 차이를 찾을 수 있는것이다.

조선교구설정 1백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신앙대회에 앞서 9월부터 성가경연대회ㆍ바자ㆍ사회과학ㆍ 심포지움ㆍ교구사자료전시회ㆍ교구사심포지움ㆍ미술전시회교리경시대회ㆍ학생웅변대회 등과 계속 사업으로 서울 대교구 총람간행ㆍ교구사자료편찬 행사기록ㆍ영화제작을 추진하면서 신앙대회를 생사의 피날레로 장식했다.

피날레를 장식한 신앙대회 행사전반을 개괄하여 보면、대회전 예절과 본대회、그리고 대회 마무리 예절 등 3개부분으로 배별된다.

대회전 전례가 본전례 못지않게 유익한 시간이었음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겠으나 묵주의 기도가 시작되기전까지 40분동안의 기도분위기 조성과 지방신자 환영 등 예절이 산만한 느낌이었다. 분위기 조성을 위한 좀더 활발한 몸동작과 물체사용 등이 고려됨직하다.

미사전례에 앞선 묵주의기도(20분) 는 산만했던 대회분위기를 정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으며 30분이 소요된 주교단과 사제단의 입장은 지루함 없는 장관이었다.

그러나 열차편을 많이 이용한 호남지방 신자들과 투전 상경하여 민박을 한 지방 신자들의 경우는 문제가 없었으나 당일 새벽 대절 버스편으로 대회에 참가한 4시간~6시간대 거리에 있는 지역의 신자들이 상당히 고충을 겪은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당일 가장 빠른출발 가능시간을 새벽 4시30분으로 잡을 때 8시30분 입장완료는 이들 시간대의 신자들에 대한 배려가 연구 되어야할 것 같다.

약 3시간이 소요된 본대회인 미사봉헌은 본당 주일미사 소요시간의 3배에 달하는것으로 대제전 임을 실감나게 했다.

성우 신원균씨와 가수 상희씨가 봉독한 독서는 모두에게 상당히 인상적으로 받아 들여진 것 같다. 예절 부분부분에 신경을 쓴만큼 효과적으로 나타난 일부분이라 보여진다. 「빠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안동 교구장 두봉 주교의 복음봉독 역시 적절한 배려였던 것 같다.

구태여 미사전례 전반에걸친 문제점을 찾아본다면 몇가지 지적할 사항은있다. 30만장을 배포한 헌금봉투의회수가 12만장에 불과했으며、25만개의성체 중 1/3의 양이 분배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대회참석 신자수에 비해 성체분배와 봉헌과정에서 상당한 차질이 있었음에 유념、이에대한 효과적인 진행이 모색 돼야 하겠다.

봉헌 (신자들의 기도 포함 30분) 과 영성체(35분)시간이 1시간이상 소요된 점을 감안、봉헌은 본당 단위로 미리 준비하고 성체분배는 수도자까지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것 같다.

그리고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기가 지구신앙 대회때부터 불려지기 시작했음에도 제대로 보급되지 못해 상당히 귀에 거슬렷다.

특히 지방신자들의 경우는 충분한 사정은 있었으나 조선 교구설정 1백50주년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이성가가 우렁차게 개창되지 못한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지난해부터 보급된 故 이문근 신부의 마지막 작품인「민족 음화의 노래」 는 신앙대회 성가곡으로 언제나 걸맞은 곡으로 보이는데 불려지지 않앗다.특히 금년이「이웃전교의 해」임을 감안하면 선곡되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다.

본대회를 마치고 퇴장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계획된 제3부의 퇴장예식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입장의 경우는 목적지가 일정한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퇴장의 경우는 목적지가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대회기간이 장시간이라는 것과도 함수관계가 있음직한 질서정연한 퇴장예식은 상당한 예행연습 없이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계획대로의 진행은 차기 행사때도 개선되기가 어려운 부분으로 생각된다.

조선 교구설정 1백50주년 기념 신앙대회는 진행과정에 있어 보완해야 될 약간의 미비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 교구설정 1백주년 기념행사 이후 50년만에 처음으로 전국의 주교 사제 수도 자평신도가 한자리에 모여함께 벌인 신앙의 대제전으로 결과는『성공적이었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이번 신앙대회가 성공리에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대회준비를 위해 희생을 바친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함께 7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교구단위의 신앙대회가 그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인것 같다.

전번적으로 볼때 대본에 의한 완벽한 준비를 거친 진행과 연출은 대회를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대본 작성자와 연출자의 숨은 노고에 큰박수를 보내야겠다

그러나 대회진행 각본의 대략적인 개요만이라도 미리 준비되어 각본당 별로 사제와 신자들이 사전에 준비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우리는 이번 여의도 신앙대회를 마치면서 84년 2백주년에 또다시 여의도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신앙대회를 비롯한 교구설정 1백 5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다양한 행사가 준비단계에서 부터 평신도들을 분야별로 적극활용、풍성한 결실을 맺었음을 생각할 때 2백주년 기념행사역시 기획단계에서부터 평신도 인사의 참여하에 이루어져야 하겠다. 84년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지금까지 임박해서야 서둘러온 페습을 답습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슬기로움을 이번 행사를 통해 배워야하겠다.

고국상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