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형극의 성좌 3년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극 3년의 발자취

입력일 2011-05-09 수정일 2011-05-09 발행일 1981-11-22 제 1281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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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20개국 순방으로 전세계에 교회관심 표명
저격사건후 죽음 극복하고 새 각오로 직무수행
금년 10월 22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베드로 광장에서의 미사와 더불어 자신의 교황직을 공식적으로 시작한지 만 3년을 맞았다. 이날 미사강론에서 교황은『저를 종이 되게 해주십시오』하고 그리스도께 요청 했었다.

교황은 자신의 교황직이 금년 5월 13일 암살자로 지칭되는 자의 총탄을 맞고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게 될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날 교황의 즉위식에 참석했던 25만명의 군중도 그것을 점칠 수 없었다.

그러나 군중들은 4백55년만에 이태리인이 아닌 먼곳 곧 폴란드에서 온 사람이 교황에 즉위함으로써 날카로운 변화가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은 넓은 어깨에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58세의 교황이 과연 교황직을 어떻게 수행해 갈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신의 교황직무 제 4년째를 시작하려는 마당에 지난5월에 겪은 죽음에의 충돌은 교황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예로 10월 들어 3회에 걸친 수요일 반접견에서 교황은 자신이 계속「5월 13일의 사건」으로 부르는 그 사건의 의미를 회고했다.

즉 2회에 걸친 수술과 93일간의 병원입원 그리고 47일간의 요양기간은 교황에게 많은 묵상시간을 제공했으며 또 그를 영신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었다. 교황은 그같은 경험이 자신에게 생명이 선물임을 더욱 깨닫게했으며 고통중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강조하게 되고 또 남을 용서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곧 교황이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것과 때를 같이해 어떤 다른 영향이나 교황직무의 방해요인이 그의 교황직의 양상을 바꾸어 놓을 것인가 하는것이 커다란 의문으로 제기된다.

이에 대해 많은 바티깐 문제 분석가들은 요양기간 동안의 많은 묵상이나 또 교황청 고문들과의 의논 등으로 대체됐던 교황의 잠정적인 해외여행 중단은 교황이 교회 중앙행정기구인「꾸리아」를 쇄신시키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교황의 쇄신작업속에는 그동안 세계 미디어의 질문들에 가끔 둔감해 왔던 성청 홍보조직의 개편이 포함 될 수 있다. 또 교황청의 재정상태를 완전히 공개한 것은 교황의 또다른 소중한 목표로 교황은 그같은 재정공개를 최근 교회중앙 행정부의 재정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추기경 위원회에 제공한 것이 확실한 듯하다.

또 교황은 전세계 2만7천명의 예수회원들의「영신적인 장상」으로서 현재 와병중인 페드로 아루페 총장후임자를 선출할 절차를 마련해줘야 할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교황의 비망록속에 포함 돼 있는 또다른 계획은 수명의 새 추기경들을 임명하는것이라는 추측인데 가장 근사한 추측은 11월에 추기경을 임명하고 12월에 추기경단 회의를 소집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미 많은 바티간 소식통들과「로마」의 신문 등이 미래의 추기경들로 언급한 인물은 최근 바티깐 시국정부를 운영하는 위원회의 의장서리로 임명된 폴 마르친구스 대주교를 비롯 교황청 성사경신성성의장 서리 쥬세페 까소리아 대주교 및 플란드「바르샤바」와「그니에즈노」대교구장 요셉 글템프 대주교 등 10명이다.

그러나 뭣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미소와 사람을 움직이는 카리스마를 지닌 교황이 교황직의 남은 기간을 바티깐 안에서 교황청 내부일을 하면서 보내리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교황이 요양에 들어간 초기에 많은 사람들은 5월 13일의 경험은 교황의 평상시「스타일」을 영원히 제한하거나 혹은 교황이 두려움으로 인해 삼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교황의 협력자들이 보다 중요한 안전을 목표로 여행을 제한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느꼈다.

그렇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황은 10월 4일 시복식을 집전하기 위해 성베드로 광장에 돌아왔을때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미사가 끝난 후 곧 교황은 긴 계단을 활발히 걸어 내려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군중들에게 다가갔으며 휠체어에 앉아있는 순례객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의 이마에 십자가를 긋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또 3일 후에 교황은 지프를 타고 광장의 대군중속을 나갔는데 이것은 이처럼 사교적인 교황이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려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일소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나무로된 방벽이나 손에 쥐는 금속 검파기와 같은 것을 설치하거나 휴대하는 등의 흔히 있는 의견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이것들은 안전요원들이 생각해낸 타협적인 제스처로. 이들 요원들은 순회설교회는 교황이 마치 은자(隱者)처럼 돼줄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헛수고임을 알고 있다. 한 바티깐 옵저버는『사람들이 교황에 다가서지 말도록 할수는 있어도 교황이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앞으로 교황의 해외여행이 더 증대될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3년동안 교황은 9회의 이태리밖 해외순방을 통해 20개국을 순방했다.

그런데 이미 영국과 스코틀랜드 및 웨일즈의 가톨릭교계는 교황이 내년 5월말 또는 6월초에 대영제국을 방문할 청신호가 켜졌다고 발표했었다.

또 최근 교황은 소수의 스페인 방문객들을 면접한 자리에서 자신은 금년 10월로 계획됐던. 약속된 여행을 실현하기 위해 가까운 시일내에 스페인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금년 6월로 계획됐던 스위스방문도 재계획될 가능성이있다. 그것은 교황이「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방문. 연설할 초청을 이미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두달전 폴란드 주교들은 교황이 다음해에 모국을 다시 방문하도록 영신적으로 준비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3년내에 참으로 국제적인 인물이 됐다. 교황은 폭풍우에 용감히 맞서고 스키모와 헬멧 또 아프리카 고유의 머리관을 씀으로써. 또 젊은이들과 노래를 함께 부름으로써 세계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였으며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표명했다.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의 교황 방문때는 하루에 6~7회의 주요연설을 감행케 함으로써 교황에게 가혹한 짐을 지우는 일이 없이 그 방문이 지역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다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교황이 그 여행들을 사회문제를 대신해서 옹호하는 기회로 사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교황은 어디를 가서든지 대담하게 발언했는데. 즉 필리핀에서는인권의 중요성을. UN에서는 핵무기증식의 무서움을. 그리고 미국의 양키 스타디움에서는 소비주의의 부도덕을 예리하게 강조했었다.

「타임즈」지는 5월 13일의 경험을 교황의 사명에 긴급성을 더 추가시켰다고 지적하면서 교황을『아마 이세계에서 유일한 타고난 지도자』라고 불렀다. (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