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펼치는 신춘수상 릴레이] 5. 신탁에 의한 주님 체험을

홍준오·시인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2-22 제 124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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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끊임없는 영교로 일화된 대부 
신역서 회의해온 나에게 무서운 채찍질로 다가온 대부의 생애
온전한 묵종으로 주와 만나고 싶어
대부님. 온종일 까닭없이 서성대기만하던 하루가 저물고 벌써 냉한의 밤이 이렇게 깊습니다.

이밤에 대자는 다시 한번「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면서 이 서툰 편지를 대부님께 띄웁니다.

주님 날개의 서늘한 그늘아래 이밤도 그렇듯이 신락(神樂)에 취해 계실 공경하옵는 대부님.

실로 15년만의 통신이 요해후라서 조금은 어색하고 서먹한 기분으로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의 진폭을 대부님은 천상에서 더욱 정확히 간파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지척이 천리」라는 속언 그대로 내쳐 격조한 나날을 무신으로 일관해 온 아들하고도 긴 세월이었읍니다.

그탓은 오로지 저에게 있읍니다. 그때 흑석동에서 보다 성의있는 탐문을 이틀만 더 계속하였더라면 두분 유족을 보다 가까이 혈육처럼 대할수가 있었을 것을…생각하면 그때 그무례를 영 씻을 길이 없읍니다.

일점 혈육이던 자제분이 대학을 거쳐 지금은 미국에서 자녀랑 두고 국위선양에 일의를 담당하는 요직에 계신다니 비록 사제성소의 특은은 아니더라도 대부님의 생전소망이 반이나마 이룩됨이 아니옵니까.

여제께서도 노리에 건강하시고 주안에 평강을 누리신다니 살아생전 고행(古行)으로 이끌어오신 성가문의 홍복이요 은총이라 믿어집니다.

당신께서 기억하실 우리 모두의 마음안에 지금도 오롯이 살아 환회작약(歡喜雀躍)하시는 경애하옵는 대부님! 당신은 진실로 현대교회의 살아게신 성인이셨읍니다. 사도직이 있기 훨씬 이전에 복음을 씨뿌리는 선두주자로 방방곡곡 기산하(幾山河)를 주비며 다니셨읍니다.

부귀 공명 다 버리고 성교회에 귀정(歸正)하신 당신이셨기에 남달리 간구함이 컸으리이다. 그러기에 교회입문 14년! 그 긴긴 생애를 신의 제대 앞에 새벽마다 경건히 무릎을 끓던 당신、언제나 신락 중에 환의용약하시던 대부님의 그 티없이 맑고 가식없으셨던 표정을 지금도 저는 역력히 뵈옵니다.

대부님은 진정 성인이셨읍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늘 주님안에서 평화를 지니시고 그분과의 끊임없는 영교(靈交)를 통해 일취월장 성화의 길로 나아가셨읍니다.

그러한 당신이겼기에 세인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죽음의 강도 두려움없이 뛰어넘으셨으며. 『먹거나 마시거나 그 밖의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영광 위하여』(Ⅰ꼬 10ㆍ31)하실 수가 있으셨다고 대자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읍니다.

한평생 유례없는 영성생활로 마침내 주님과 일화(一化)되어 선의 가장 높은 자리로 옮아 앉아계시는 우리 대부님.

그런데 타고난 죄인인 저의 몰골은 지금 어떠합니까. 항시 신의 사랑에 압도되어 사셨던 대부님을 명명중에 뵈올때마다 이 무색하고 가엾은 자신이 부끄럽고 한스러워 견딜 수 없읍니다. 주님의 고상(古像) 앞에 자주 무릎 끓어도 보나 혼의 뿌리는 마구 폭풍앞에 나부끼는 갈대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오늘 제안에 「정죄(淨罪) 의 비누」한방울 가진바 없으니 대부님! 지금에 와서 제가 무슨 수로 주님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으리까.

한냉한 벌판에서 구원의 손도 없이 탈진(脫盡)의 고비를 넘기고 있는 제 영혼의 취약함을 대부님은 늘 연민의 눈으로 지켜보시겠지요.

운명(殞命)의 그 절박한 순간까지 인간을 초극한 신앙의지로 처절무비의 고행을 감수하시던 대부님의 생애가 오늘따라 제 가슴에 무서운 채찍으로 번져옵니다.

암연한 절망의 순간에서도 기도로써 신락을 쟁취하시던 공경하옵는 대부님.

저간에 제가 치른 영적 위기를 낱낱이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감히 무엄하게도 예레미아 선지자의 흉내를 내며 공인(公人)의 자리를 떠나 애써 종적을 감추려던 그런 무모를.

아시다시피 애당호 제겐 신앙의 열정도 투혼도 없는 그런 섬약한 위인이 아니던가요. 때문에 저는 입문의 그날부터 한사코 수도와 투혼 지극한 대부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셔드렸고 깨달음의 길을 함께 모색하기 수삼년을 거듭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님 떠나신후의 저의 영혼은 계절을 타는 바람처럼 설레어 자주 흔들리고 자주 회의하면서 신역(神域)의 언저리를 배회해 왔읍니다. 이 얼마나 나약하고 민망스런 고백입니까. 어느때 다시 재가 왕국에의 자각을 얻어 현존하신 주님을 뵙게될지 그저 막막하고 안타깝고 초조할뿐 입니다.

그러나 우리 공경하옵는 대부님.

지난번 브라질에서의 김선생의 출현은 제게 깊은 감동과 격려와 위안을 주셨읍니다.

이민생활 17년! 그 긴긴 세월을 문명에서 원시로 급전직하한 아픔을 참고、이루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도 끝내 주님을 놓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며、이로 인한 페부를 에이듯한 삶의 고행담에서 저는 또 한분의 수도와 투혼에 능한 대부님을 만나는 느낌이었읍니다.

절대절명의 나락에서도 묵종(默從)으로 다져온 신앙의 깊이、그 깊은 속에서 울려오는 혼의 소리를 저도 한번쯤은 이 해빙(解氷)의 땅에 뿌려보고 싶습니다.

온전한 헌신과 신탁도 없이 주님의 식탁에서 멀어져가는 제게 당신 가없는 통공으로 신앙의 무딘 삶을 희망안에 조명해 주시는 은혜로운 대부님!

만유(萬有)가 그분 뜻 그 한뜻으로 되는것을 깨닫게 하시고 많이도 잃어버린 저의 실지(失地)를 제가 제손으로 도로 찾게 되도록 도와주시며、제게도 하루빨리 신탁에 의한 하느님의 체험을、그리고 그분이 친히 배설하신 푸진 은총안에서 참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대부님、부디 대부님의 이름으로 빌어 주시옵소서.

오、천상에서 이밤도 사람의 잔에 입맞추실 대부님!

홍준오·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