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펼치는 신년수상 릴레이] 4. 사람값ㆍ나이값ㆍ성한값을 치르자

윤석중·아동문학가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2-08 제 124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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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당하는 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장애자들은「늦동이」일뿐 우리는 성한값 못하는 빚투성이
정상적인 외모보다 마음을 곧게 가져야
며칠전、초저녁에 한 여인이 길에서 당한 일이다. 잔일을 마치고 어둑어둑해서 직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려고 큰 길을 건너는데、느닷없이 젊은 녀석 한패가 나타나 들고 있던 핸드백을 소리개가 고기를 채가듯 빼앗아 들고 내뺐는데、그냥 뺏은게 아니고 각목으로 그 여인의 머리를 내리쳐서 정신을 잃게 한 것이다.

병원으로 실려간 다음날、같은 직장 동료들이 그를 찾아가、자기네들도 날치기 나들치기를 당한 적이 있음을 이야기했을때 침대에 누운 그는 간신힌 입을 열어 속에 먹은 마음을 말했다고 한다.

『제가 안 당했더라도 그날 그시각 그 길목에서 누군가가 당했을 거야요. 다른 사람 대신 내가 당했거니 생각하니 누군가를 위해 내가 좋은 일 한걸로 여겨져 한결 마음이 편하군요…』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가에 맑고 밝은 웃음이 떠올랐으리라.

어떻게 생긴 여인인지 나는 모른다. 한달에 얼마를 받고 일하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가씨들에게 기술을 익혀주는 직업훈련원 여선생임을 들어서 알 뿐이다.

그러나 예사로 말한 그의 한마디에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어찌했을까를 따져본 것이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불량배들의 잔인한 손버릇을 통탄도 하고 저주도 했으리라. 무책임한 그들 부모와 무능한 경찰을 탓도 했으리라. 그라나 그렇게하면 내몸보다도 내마음이 더 불편해서 밤잠을 제대로 못 이뤘을 것이고、꿈자리가 사납고 잠꼬대가 심해 주위 사람까지도 편안히 자지를 못했을 것이다.

이왕 당한 노릇을 이를 간들 무엇하랴.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니、그들 어린 깡패가 언젠가는 붙잡히고 말것이요、그들이 털어놓을 속사정을 들어보면、날강도로 변한 그들의 탈선이 반드시 그들 책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병실침대에서 고통을 참으면서『누구대신 이벌을 받는다』고 생각이 든 그는、정신적으로 도리어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을 것인가.

1981년 올해는 유엔이 정해놓은「세계장애자의 해」이다. 심신 (心身) 장애자의 해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십여년전에「성한사람이 돌보자、소아마비 어린이」라는 표어를 지어 준적이 있고 지진이니、정박아니、신체장애자니、천지니、바보니하는 말따위가 정이 떨어져서、10년걸려『엄마』란 말을 깨친 아이도 있고、여러해 걸려 제나이를 왼 아이도 있다지만 그것도 나이가 해마다 변하므로 해마다 한살씩 보태주느라고 애를 먹는다고 한다. 늦게라도 뜻을 이루고 있으니 늦동이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들에게 야박한 말을 피해서「늦동이」라고 불러주고 싶은것이다.

나는 그러한 늦동이들을 위해 주자는 해에「심신장애자의 노래」한편을 지었다. (노래제목은「우리들의 새세상)이다)사람눈 밝으면 얼마나 밝으랴 사람귀 밝으면 얼마나 밝으랴 산너머 못보기는 마찬가지. 강건너 못보기는 마찬가지. 마음눈 밝으면 마음귀 밝으면 어둠은 사라지고 새세상 열리네. 달리자 마음속 자유의 문. 오르자 마음속 평화동산. 남 대신 아픔을 견디는 괴로움. 남대신 눈물을 흘리는 외로움 우리가 덜어주자 그괴로움 우리가 덜어주자 그 외로움.

사실 말이지、사람의 눈이나 귀가 밝으면 얼마나 밝겠는가. 사람보다 훨씬 밝은 눈을 가진 짐승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어찌 눈이나 귀뿐이랴. 달리기나 높이뛰기도 생긴 비례대로 따지면토끼나 벼룩을 당할 재주가 없는 것이다. 길눈을 말하자면 해마다 그맘때 옛둥지를 잊지않고 찾아드는 제비가족을 당할수가 없을 것이다.

이목구비를 들출것도 없이 사람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으며 못났으면 또 얼마나 못났을 것인가. 잘살면 얼마나 잘살겠으며 못살면 또 얼마나 못살것인가.『한 평만 가지면 넉넉하고도 남을 걸 그애를 썼구나』한것은 어머어마한 땅덩이를 차지하고나서 비명횡사한 수전노 한사람의 무덤을 써주고나서상여꾼들이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 수전노는 마음과 눈과 마음의 귀가 얼굴에 박힌 눈이나 달린 귀보다 얼마나 소중한가를 끝끝내 모르고 세상을 뜬 마음의 불구자라고 할만하다. 나는 늦동이들도 얼마든지 달릴 수 있고 오를 수 있음을 위 노래에서 가리켜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우리네 인생살이에서、우리둘레에서 우리대신 고통을 당하고 우리대신 누명을 쓰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먼저 뻗쳐야 한다.

『안됐군…』

교통지옥에서 누가 희생이 되었을 때 누가 돌림병에 걸려 생죽음을 당했을때、우리는 안됐다는 한마디로 지나쳐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네들은 우리대신 당한 횡액이요 불우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물며 아무죄도 없는데 뭇사랑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따돌림을 당하며 사람축에도 못끼는 수많은「늦동이」등를 생각할때 다리팔이 멀쩡하고 하루세끼 거뜬히 먹어치우는 우리네「성한 사람들」이야말로 그대들을 대할 낯이 없다. 「사람값、나이값、성한값」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지내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우리네가 빚투성이다.

이솝얘기에 이런 것이 있다 한쪽눈이 먼 애꾸들만 모여사는 원숭이나라에 두눈이 멀쩡한 원숭이가 한마리 나타나자「두눈 달린병신」으로 몰려 쫓겨났다는 것이다.

2천5백여 년 전 그리이스에 종으로 태어났던 꼽추 이솝이 만든 얘기가 지도를 펴보면 아시아 대륙에 맹장처럼 달려있는 한반도에도 아직껏 돌아다니니 사람사는 세상에는 예나 이제나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윤석중·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