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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임종에 대한 질문과 해답] 17. 사적인 질문들

퀴블러로쓰 저, 이인복 역·문학박사·문화평론가
입력일 2011-04-19 수정일 2011-04-19 발행일 1980-02-10 제 1191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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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고통서 해방된 평화
환자 임종때는 아무말 않고 손으로 작별인사 나눠
사후 삶 믿고 환자와 함께 죽음 수락단계에도 도달
[문]=선생님의 견해는 종교나 어떤 독특한 철학에 유도되지는 않습니까?

[답]=저는 종교적인 동기에서 이런 일을 시작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제가 임종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을 때 저는 신앙인으로서 간주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나 여러해동안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살피는 가운데 저는 과거 어느때보다도 신앙이 두터워졌읍니다. 그것은 하나의 생활철학이 되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임종환자들로부터 배운 철학입니다.

[문]=선생님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선생님께 어떤의미를 가집니까?

[답]=그것은 때가 되면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있음을 뜻합니다. 즉 저는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인 양 여기고 삽니다. 물론 오늘과 같은 날이 수천날 더 지속되기를 바라지만요.

[문]=선생님께서 임종하는 바로 그 순간을 지켜본 환자는 몇이나 되며, 그때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무엇을 해줍니까?

[답]=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을 지켜본환자는 많지 않습니다. 저의 일은 대체로 죽음이 진행되기전에 이루어집니다. 저는 저의 환자들이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보살핌을 받는 것을 봅니다. 제가 죽는 순간을 지켜보는 특권을 가졌을 때 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것으로 생각됩니다. 환자들곁에 앉아서 그들의 손을 잡아 줍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거기에 있으면 자주 자주 그들의 손을 환자의 손보다 더 힘껏 잡아줍니다.

[문]=죽음에 관한 선생님의 연구에 의하면 선생님께선 죽음이후에 어떻게 된다고 개인적으로 믿고 계십니까?

[답]=제가 임종환자들을 보살피기 전에는 저는 사후의 생을 믿지않읍니다. 지금 저는 추호의 의혹도 없이 사후의 생을 믿고 있읍니다.

[문]=환자들이 선생님을 필요로 할 때 그들도 만나면서 동시에 선생님의 가족들과도 함께 시간을 가지도록 어떻게 생활을 영위하십니까?

[답]=말고있는 환자의 수가 너무 많지 않아야만 그럴수 있읍니다. 제게 죽음에 임박한 환자가 동시에 10명 이상되면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제가 그들을 돌볼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환자가 당신을 필요로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동일학문의 팀을 구비하고 있을 필요가 있읍니다. 저는 가금 가정에 돌아가야만 합니다. 저는 가족을 위해서 요리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종종 학교에 가봐야 하고, 딸을 걸스카우트에 데리고 가거나 아들을 학교에 어떤 행사에 참여시키기도 해야 합니다 저의 가정은 저를 필요로 하고 가족의 필요는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환자와 함께 할수 없을 때 대신할수 있는 간호원들 목사들 사회사업가들 그리고 의사들이 있읍니다. 저는 주야로 환자들을 접하려고 노력합니다. 제 환자들은 저희집 전화번호를 알고있을며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감내하라는 저의 요구는 때로 지나칠경우도 있지만 가족들은 이것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아마도 제일에 대한 공헌이라고 생각할겁니다.

[문]=그많은 환자들을 계속해서 잃어가는데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답]=저는 죽어가는 환자들과 더불어 훌륭하고 놀라우며 때로는 독특히기도한 경험을 많이 했읍니다. 저는 환자와 함께 죽음에 이르는 각단계를 지나 수락의 단계에 이르기도 합니다. 환자가 죽었을 때 저는 종종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 환자가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화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그 환자가 살아있는 동안에 제가 해줄수 있는 최선의것을 다했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저는 이러한 관계로부터 제자신을 떼어내어서 다른 환자에게 정열을 쏟아야 합니다. 기술은, 어떻게 하면 빠져들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깊이 빠져든연후에 다시 기어를 돌릴수 있느냐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환자들이 죽을 때 저는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침울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문]=선생님께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읍니까? 선생님 자신에게 죽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답]=평화입니다.

[문]=수락의 단계에 이르러 그것이 선생님 자신과 가족의 개인적인 태도의 일부분처럼 되기까지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렸읍니까?

[답]=여러 해가 걸렸던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스위스에서 자랐는데, 그곳은 죽음을 덜 부정하는 사회이므로 저는 어느정도 앞서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죽어가는 환자를 보살피는 일은 죽음의 공포를 점차 제거해줍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지막수락의 단계에 이르던 환자를 닮아가에 됩니다. 이것이 바로 언제 있었던지는 정확히 알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환자를 수년간 돌본 뒤인것 만은 확실합니다.

[문]=죽어가는 환자와 함께 있을 때, 울고 싶으면 그들과 함께 우십니까?

아니면 달리 대처하시는 방법이 있읍니까?

[답]=저는 죽어가는 환자들과 더불어 많은 눈물을 흘렸고 거기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이 직업인의 태도라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문]=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어떻게 선생님께 영향을 미쳤읍니까?

[답]=그것은 저의 인생을 보다 의미있고 보다 값지게 해주었읍니다.

[문]=죽음의 병에 걸린 환자와의 관계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방어하셨읍니까?

[답]=저는 그들과 함께 같은 감정에 빠져들었다고 감히 말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희 감정을 억제하려고 저의 정열을 절반이나 소모하는데서 오는 고통을 막아주었읍니다.

[문]=선생님의 모든 배경에 비추어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것이라고 말씀하실수 있읍니까?

[답]=그렇습니다.

[문]=선생님께선 친근해진 환자들을 잃을 때 어떻게 감정적으로 대처하십니까?

[답]=기차역이나 공항에서 언제 돌아올지 또는 돌아올지 안올지 기약도 없이 떠나가는 사람에게 작별인사 하는 법을 배우듯이 이것이 마지막 작별인사라는 것을 알면서 작별인사를 합니다.(계속)

퀴블러로쓰 저, 이인복 역·문학박사·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