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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심는다 - 일선 전교사의 체험기] 77. 등에 업힌 아기예수/김 이사벨라 수녀 14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
입력일 2011-04-14 수정일 2011-04-14 발행일 1978-10-01 제 112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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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서조차 버림받은 불구자 미연이
나약해진 영혼, 주님안에서 용기얻어
육체의 불구가 정신마저 침해할까 두려
내가 맡은 아이들 중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아이들은 불구 아이였다.

이들은 자칫하면 성격이 비뚤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날 때부터 불구인 아이, 약간의 소아마비에다 너무 운동을 하지 않아 다리가 마비된 아이도 있다.

난 그들에게 운동을 시켰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어떤 아이는 절룩거리나마 걷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난 이들의 마음속에 신앙심을 심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육신의 불구, 또 정신마저 아니 영혼마저 불구로서 살아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운동을 시키지만 난 물리치료 상식도 없기에 물리치료만을 전문으로 하고 또 그들에게 적당한 기술을 가르쳐 주는 재활원에 데려가 진찰을 받았으나 대미는 뇌성마비라서, 미연은 신경이 완전히 굳어버려 가망이 없다고 했다. 미연의 타격은 컸다.

미연은 소아마비에다 또 어릴 적 카리에스로 볼록 가슴이 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갖가지의 장해를 많이 입은 아이였다. 그러나 머리는 유달리 영리해서 아이답지 않게 장래를 걱정하고 비판하며 하루 종일 말없이 누워 있기만 하니 등에 번져가는 상처 때문에 난 다시 긴장을 금치 못했다.

식사도 잘 안하고 눈만 커다랗고 창백한 미연은 자주 아팠다. 그럴 때면 미연일 업고 병원에도가고 소변이 마려운가, 소화가 안 되는가 눈치껏 알아서 돌보아 주어야 했다.

너무도 내성적인 그녀는 소변이 마려워도 말도 않고 끝까지 참으려다 그냥 싸버리곤 너무도 미안해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내가 제일 걱정한 것은 그녀의 대나무처럼 곧은 성격과 육신의 건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너무나 가냘픈 영혼의 건강 이었다 미연은 먼 삼천포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아빠 등에 업혀 서울구경을 왔었는데 어느 역전 대합실에 미연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아빠를 결코 원망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미연이가 아파서 부산 구호병원에 데려가는 중 이런 말도 했다.

『그날 기차를 타보고 오늘 처음 타는 거예요. 그날은 아빠가 나를 버리려고 가는 길인데도 난 멋도 모르고 즐거워했어요…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나의 병 때문에 부산까지 데리고 가는데도 자꾸만 슬퍼지니 이상해요』그래. 내버림을 당했고 배신을 당한 그녀의 아픈 가슴은 세상 어디를 가도 결코 아물지 못할 것이다. 오직 신앙으로서 그 아픔을 다소나마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난 될 수 있는 한 미연이에게 한가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뜨개질을 너무 잘해서 장갑도 짜게 했다. 건강이 좋아진 어느 날 난 어른들과 상의해서 미연이를 국민학교에 넣기로 했다. 실력과 나이를 참작해서 3학년에 넣었다. 그러나 업고 다니는 것이 문제였다.

처음엔 내가 업고 다녔으나 시간도 안 맞고 미연이가 너무도 부담스러워 하기에 같은 3학년 아이 중 착한 일을 할 희망자를 뽑기로 했다. 혜영이라는 착하고 명랑한 아이 1명이 자청해서 그 일을 하기로 했다.

혜영이는 그 일을 기쁘게 해내었고 자존심 때문에 정상 아이들과 말 한마디 안하던 미연이가 그들과 같이 웃으며 열심히 공부를 했으며 지난달엔 75명중 2등을 차지했다.

학반에서 가르치는 교리 성적도 우수하여 지난 76년 성탄절 때 소년집 학생4백33명의 영세자들과 함께 데레사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했다. 물론 혜영이도 같이…

미연이는 정말 소화의 표양대로 고통을 참고 그녀의 섬세한 성격에 맞는 작은 선행도 곧 잘한다. 혜영이는 예수님의 피땀을 닦아주는 베로니까를 본받아 비가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지금의 5학년까지 미연이를 업고 학교에 다닌다.

그날 영세식에는 우리의 초청으로 서울 각 본당의 많은 신자분들이 오셔서 그들 일일이 대부 대모를 서주셨다. 미연이는 나의 등에 업혀 영세식을 가졌는데 이를 지켜보는 대부모 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

미연이도 나의 등에서 울고 있었다. 기쁨과 감격의 울음인 것이다.

난 문득 어릴 때 읽은, 예수님을 업고 강을 건너 주었다는 그리스도 폴이 생각났다.

난 예수님을 업은 것이다.

나의 등에 업혀 영세식을 갖고 영성체를 모신 미연이를 업었으니 정말 예수님을 업은 영광을 맛보았던 것이다.

어떤 대부님은『나의 식으려는 신앙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힘을 발견한 것 같다』고 하셨다.

영세식이 끝나고 영세아동을 위한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노래를 하고 합주를 하고 즐겁게 여태까지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몇 백명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 그날따라 천사처럼 맑고 빛나보였다.

난 그날 미연이에게 말했다.

『아무도 너를 몰라주고 너를 축복해 주지 않더라도 오직 그분만은 알고계실거야. 네가 신앙을 알기 전 얼마나 슬퍼했는지를… 그리고 지금 얼마나 기뻐 용약 하는지를…』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