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공산치하의 베트남 교회 - 신앙 따위는 불살라 버려라] 구엔 신부의 폭로기 9

입력일 2011-04-14 수정일 2011-04-14 발행일 1978-03-26 제 1098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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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표류하다 수많은 사람들 죽기도
아주공산세력 팽배 무서워 먼곳 이주원해
육로막히자 위험한 해상탈출 감행
공산「베트남」탈출에 관해 한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 힘듭니다.

왜냐하면 탈출이라는 것은 동일할는지 모르지만 여러 방법으로 탈출할 수 있고 이것은 그때의 형편에 따라 또 사람들의 생각여하에 따라 탈출방법이 달라지며 탈출하는 지역에 따라 또한 탈출방법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비밀리에 탈출하므로 일정한 탈출방법이란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트남이 통일이 되고 또 동족상잔의 전쟁도 종식되었으며 크메르와 같이 학살도하지 않는데 탈출은 왜하느냐고 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한국국민은 공산주의무신론자들의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행동이 어떠한 것인가를 1950年 한국전쟁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탈출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으로 믿읍니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기 이전 대부분의 자유베트남 국민들은 단순하고 근시안 적이었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 외국에 대한 협오 등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하여 무조건 반정부 행동을 감행하고 극도의 개인자유만을 누리려고 하다가 『국가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였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공산주의치하에서 탈출하려고 아우성 쳤읍니다.

어느 곳을 가나『공산주의의 선전은 한마디도 믿을 말이 없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국민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나가 공사주의자들의 일거일동에 대해 불신만이 팽배해졌으므로 누구나 공산주의치하에서 탈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육교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막혀버리자 서로 다투어 해상 탈출을 시도하기에 이르렀읍니다.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베트남을 탈출하여 자유국가 선박들에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 현재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시아 공산주의는 너무나 흑독 하기 때문에 아시아 공산주의 국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려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 공산세력의 팽배로 혹시나 또 한번 공산치하에 놓이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니까 말입니다.

공산주의 정보조직이 그토록 발달되어있고 빈틈없는 그들의 감시하에서 어떻게 우리들이 탈출할 수 있느냐고 여러분들은 의아심을 가질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탈출직전에 체포되기도 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수일가 표류하다가 식량이 떨어지고 연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여러 나라의 선박들이 그 곁을 지나가지만 구조의 손길은 내밀지 않아 태풍을 만나 배가 침물 되어 죽거나 혹은 죽음의 일보직전에서 공산치하로 다시 돌아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심한 고문을 받고 종신징역형을 받거나 강제노동에 끌려가기도 합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에게도 뇌물을 주게 되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됩니다.

만약 2000내지 3000달러에 해당되는 금(金)을 공산당간부에게 바치게 되면 깊은 산간지역이나 독수(毒水) 지역에서의 강제노역은 피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지상의 행복을 누릴려면 그들도 돈이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탈출할 수 있지만 대략 다음의 3가지 방법을 써서「베트남」을 탈출하고 있읍니다.

과거 공산조직체에 속한 인물들이나 혹은 공산치하에서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생활을 하다 탈출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탈출을 하는 경우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국민물속 깊이 그들의 세포조직을 침투시키고 있으므로 과거의 반공관념이 뚜렷하였던 사람은 일차적으로 믿을 수 있으므로 이들이 중심이 됩니다.

물론 정부에서는 이들을 계속 감시감독하고 있으나 이들에게 돈을 주고 눈감아 달라고 부탁하면 쉽사리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있읍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