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68·(끝) 부활하신 그리스도

고종희(한양여대 교수·http://blog.naver.com/bella4040),
입력일 2011-04-13 수정일 2011-04-13 발행일 2011-04-17 제 2742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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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 뛰어넘어 ‘부활’ 시각적 구체화
14세기 전까지 ‘부활 순간’ 직접적 표현 금기
미켈란젤로, 신앙 기반으로 부활 창의적 묘사
예수님과 경비병 등 나체 묘사해 역동성 살려
미켈란젤로, ‘부활’, 드로잉, 윈저, 왕립 도서관.
부활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교의 핵심 신앙이다. 미술가들은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4세기 후반부터 부활장면을 그림이나 부조로 조각해왔다. 하지만 4대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이 무덤에서 나오는 순간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구절이 없기 때문에 미술가들은 ‘부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활’ 작품에는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경비병들이 졸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천사가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는 등 성경 내용의 범위 내에서 간접적 암시를 통해 부활을 묘사했으며, 이런 현상은 1000년 이상 지속됐다.

변화는 14세기 시에나의 피에트로 로렌체티에 의해서 일어났다. 그는 아시시의 그 유명한 성프란치스코성당 지하 성당에 ‘부활’을 그렸는데, 예수님이 관 속에서 막 나오는 순간을 드디어 표현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리스도의 한쪽 발은 아직 관 속에 있고, 다른 쪽 발은 관 밖으로 내딛고 있어서 현장감도 최대한 살렸음은 물론 무덤 밖에서 쿨쿨 자고 있는 경비병의 모습도 빼놓지 않았다. 이전 미술가들이 1000년 이상 준수했던 복음서 내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 모습을 시각적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부활’을 주제로 드로잉을 남겼다. 드로잉에서 예수님은 200년 전 로렌체티가 그렸던 것처럼 한 발은 아직 관 안에 있고, 다른 발은 이미 관 밖으로 나와 땅을 딛고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미켈란젤로는 당시까지의 부활 그림에서 늘 등장했던 예수님이 부활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아닌, 맨손을 번쩍 들어서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고 등장인물 전부를 옷을 입지 않은 나체의 모습으로 그렸다. 예수님 주변에서 각양각색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무덤을 지키는 경비병들 역시 나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시신을 감쌌던 마직포 자락을 휘날릴 뿐이다.

미켈란젤로는 주제가 무엇이든 인체 표현을 가장 중시했다. 이 드로잉은 미켈란젤로가 그림으로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그 누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렇게 벌거벗은 나체로 그리지 않았고, 경비병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을 대형 그림으로 그렸다면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엄청났을 것이다. 인습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티칸의 시스티나경당에 그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속 거의 모든 인물들이 이처럼 누드로 그려진 것을 보면 그가 이 드로잉을 그림으로 완성했더라도 분명 인물들을 나체로 그렸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술가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시대를 초월함은 물론 관습과 교리조차도 뛰어넘는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켈란젤로는 신앙심이 대단히 돈독한 신자였다.

트렌토공의회에서 가톨릭교회는 미술품을 교리 전달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공인한 바 있다. 단, 교리와 상황에 맞아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다. 실제로 교회에는 제대,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고상, 십자가의 길, 감실을 비롯하여 미술가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교회는 엄격하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 훌륭한 예술가들을 성당 안으로 초대하되, 일단 작업을 의뢰하면 상의와 소통은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라며 주문 사항이 구체적일수록 걸작의 탄생은 멀어질 것이다. 최고는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역사는 말해주는 듯하다.

■ 이번 주를 끝으로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2년여 동안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주신 가톨릭신문과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http://blog.naver.com/bella4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