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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진단] 세기 말적 이상기류 현상과 사이비 종교…“풍수지리”

최정근 기자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1997-02-16 제 2040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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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조화된 삶’ 풍수의 참 의미
농경사회 생활양식… 한국인 정서와 밀접
첨단 정보사회 효용성 의문
민간에 성행,「복 받는다」「앞날 보인다」현혹

글 싣는 순서

① 총론편: 전문가에게 듣는다

② 대중문화 속의 뉴에이지 운동

③ 열풍처럼 번져가는 기 체험과 초능력 수행법

④ 전생과 환생 신드롬

⑤ 풍수지리

⑥ 결론편: 그리스도 신앙과의 관계 및 그리스도교의 역할

역경을 뿌리로 하여 파생된 태극론과 음양오행설을 위시하여 수백 종에 달하는 역술 서적과 풍수지리에 관한 책들이 크고 작은 책방의 한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등의 광고란에는 도사니, 보살, 대선사 따위의 직함을 내어걸고 앞 일을 몰라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요즘 들어서 더러 이들 책에 대하여 비판하는 책을 내는 학자가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그 또한 깊은 연구없이 책을 내기 위한 글에 그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윤이흠 교수는『농경사회나 유목생활을 하고 살 때에 만들어진 역경을 가지고 과학이 첨단화되고 정보화한 오늘에까지 적용시키려 들다니 말이 되는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자연이 훼손되어 가는 지금 자연이 온전할 때 정립된 자연학인 풍수지리설이 오늘의 현실에 적용될 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명확한 해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얘기다.

거미줄처럼 발달한 도로망은 용혈이나 용맥을 주장할 수 없게 만들었고 거대도시의 땅 밑은 하수도와 지하철은 물론 가스, 전선 등을 가설하기 위하여 엉망으로 파헤쳐 굴을 뚫었는데 수맥 운운하면서 가상을 말하고 수십 층의 건물이 숲을 이루었는데 몇백 년 전에 만들어진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명당을 찾아준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뚫린 지하도나 지하철, 또는 하수도에는 수만 볼트 고압선이 흐르며 그것을 타고 전동차가 달림은 물론 더러운 물이 하수구를 꽉 메워 밤낮없이 흐르는데 여기에 어찌 패철(지관이 풍수에 쓰는 지남철)이 제 기능을 다할 것이며 자연이 엉망으로 된 산천에 나경의 이론이 적용될 수 있겠는가.

▲풍수는 자연

풍수란 자연이란 뜻이다.

그래서 오늘의 풍수는 오늘의 자연에 맞는 신 풍수설을 창출해 내어야 한다. 어느 정도 자연이 잘 보존되었다는 농촌에도 이제는 지난날의 풍수지리설을 적용할 수는 없다.

어느 시골에도 길이 뚫리지 않은 곳이 없고 가뭄에 물을 쓰겠다며 시추공을 뚫어 지하수를 뽑아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본래 수천 년 전에 발상된 역경이나 음양오행설이나 풍수지리학 모두가 자연학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들이 잔꾀를 부려 피흉취길의 수단으로 타락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자연이 썩어가고 인간의 본성마저 말살되어 가는 이 마당에 뜻 있는 학자라면 문득 깨닫고 자연학을 제 자리로 돌려앉히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는 게 풍수지리를 비판하는 학자들의 주장이다.

윤 교수는『현대사회에서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을 찾아 살라고 하면 모두 죽으란 얘기』라고 강하게 비판하고『변화된 문화와 자연환경에 걸맞지 않는 풍수지리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상실케 하는 미신』이라고 단정했다.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과 맞물려 형성된 풍수지리는 고도의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알맞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풍수지리를 따지는 많은 이들이 있는 것은 흥미를 위주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언론들의 분위기 조장과 돈벌이를 위해 세인들을 현혹시키는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상행위 때문이라는 게 윤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나 풍수지리를 미신이니,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해서만은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학자도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김종서 교수는『현대에서는 양택풍수는 사라졌고 음택풍수(묫자리)만이 존재한다.』며『풍수지리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싱가폴, 중국 그리고 영어권의 여러 나라에도 존재하듯 꼭 거부해서만도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역사적으로 풍수지리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지만 이것이 과학적으로 맞느냐 안 맞는냐의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는 일반인들의 일상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결혼 날짜 등 중요한 일을 치를 때면 꼭 손이 없는 날을 택하는 것이 한국민들의 특성임을 감안한다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풍습지리 등 관련 현상들을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 교수는 풍수지리가 자본주의 시대의 빈부의 격차를 넓히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실예로 풍수지리적으로 훌륭한 지방문화재가 있던 자리에 어느 돈 많은 고관대작이 자기 집 가족묘를 쓰는 등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바로 풍수지리라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종교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의 풍수지리는 이 땅에서 사는 많은 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의식하며 살고 있다』고 전제한 후『그렇다면 가톨릭 등 기성종교에서도 종교상식 정도의 비중으로 신자들에게 가르칠 필요도 있다』고 역설했다.

▲역사 속의 풍수

그러면 우리 역사 속의 풍수는 과연 무엇일까?

풍수설 역시 지리적 사고의 성숙, 발전된 특이한 논리체계 중의 하나였다는 게 풍수지리 학자들의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풍수적 사고방식이든 중국에서 확립된 체계적인 이론 풍수이든 풍수설은 다른 지역이 지리적 사고와는 매우 다른 본질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주거 선정이나 취락 입지의 방법 뿐 아니라 죽은 자의 영면의 장소를 찾는 일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 독창적인 문화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의 저자 최창조씨는『근래 모든 정치적 속박을 끊고 국토와 민족 재결합의 염원이 전면으로 부상했을 때 제일 먼저 각광을 받은 곳이 백두산과 천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지의 물이 우리 국토의 지기와 우리 민족의 인기의 젖줄인 것으로 인식하듯 이것이 한국 풍수의 연원이자 귀결처』라고 강조했다.

농업적 생산 양식 위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풍수지리. 농업이 땅과 기상 조건에 좌우되고 그 대표적 조건이 바람과 물이라는 점에서 풍수지리는 농경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생활양식이었다.

최창조씨는 또『지금 사람들이 따르는 풍수는 그야말로 이기적 속신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판하고『풍수의 요체는 천지인 상관적 기론에 있으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풍수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것이 전혀 무시된 가운데 오직 자신과 일가의 번영만을 추구하는「땅 고르기식」의 풍수라면 그것은 이미 풍수가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또한 풍수는 집 터 등의 주거환경을 논하는 양택풍수와 무덤의 형세와 위치를 논하는 음택풍수로 나뉘어지며 한국에서는 유교적 전통과 맞물려 조상들의 묘 자리를 고르는 음택풍수가 발전했다.

▲자연과의 조화

이 같은 풍수지리는 일반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수용되는 것은 두 가지 요소 때문이다. 첫째는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만물은 하늘과 땅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즉 천기 지기를 받는다는 것. 이로 인해 주거환경이 풍수지리에 맞아야 사업도, 출세도 잘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둘째로 조상의 유골에서 생성되어 흐르는 기와 후손이 지니는 기는 같은 것이기 때문에 서로 상통하거나 상응함으로써 그 기를 받는 후손은 복을 받을 수도 있고 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동기감응론을 많은 이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조상 묘를 잘 쓰기 위해 거액의 돈을 들이기도 하고, 후손들이 잘못되면 조상 탓, 묫자리 탓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풍수지리 학자들은 풍수는 사람이 자연과 얼마나 조화롭게 살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라며 이는 죽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자연 속에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 때 부자연, 즉 화가 미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리나라의 풍수지리는 농경생활에서 형성된 습관 이외에도 하나의 종교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들 역시 조상 묘를 쓸 때면 지관을 부르거나, 땅이 풍수지리적으로 알맞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더군다나 사업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반인보다 더욱 풍수지리에 민감해 옛날에 묘지였던 자리에 집을 사거나, 풍수지리가들이 말하는 혈이 끊긴 집을 사는 것을 꺼려한다.

이에 대해 김종서(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신부님들이 기도를 통해 병든 사람들을 낫게 했다는 얘기를 믿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믿고 또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듯이 풍수지리도 이러한 관점에서 인식해야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풍수지리의 옳고 그름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항상 반복, 발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 내부에서도 풍수지리가 가톨릭과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풍수지리 전문가들이 말하는『풍수지리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스럽게 살게 하는 것』이란 말의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하기에…

◆[전문가 재언] 자연지리 연구가 최진규씨 - “체계적 연구 필요”

『풍수지리는 땅의 중심을 찾는 것입니다. 즉 어디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중심의 중심을 찾는 일이 바로 풍수지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해 7월 3일부터 종교신문에「십승지를 찾아서」란 제목으로 한국의 풍수지리 10승지에 대해 연재했던 자연지리 연구가 최진규씨의 말이다.

그는『풍수지리가들이 말하는 것 중 황당한 것이 너무 많다』고 전하면서『지난해 대전대학교에서 풍수지리를 대학원에서 가르친다고 발표한 것과 같이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로 찾은 향토 명의」「우리 비경 답사기」등 전 국토를 발로 누비며 한국 약초를 연구하고 있는 최진규씨는 풍수지리 전문가는 아니다. 근데 20년을 산과 들을 돌아다니다가 자연스럽게 풍수지리의 의미를 알게 된 야인이다.

우리 민족에게 정도령의 정감록에 나오는「십승지」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말하는 에덴동산과도 흡사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메시아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정감록이 우리의 문화사 안에 자생된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교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나 그리스도교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전하면서『여기서 말하는 십승지는 모두 농경시대에 걸맞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최진규씨는『조상의 묘를 잘못 써서 후손이 화를 입는다고 말하는 풍수설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다』고 전제하고『풍수설이 과학적 근거를 갖든 안 갖든 우리의 생활 깊숙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종교인들도 시인을 해야 될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최진규씨는 현재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서 한국 토종약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스포츠 서울에 한국의 약초(매주 월 화)에 대해 연재 중에 있는 약초연구가다.

그는『말세에 정도령이 나타나 민중이 주인이 되는 복지 세상을 건설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감록을 비롯 풍수지리, 역술과 같은 우리 전통문화와 가까운 것을 기성종교가 무조건 반대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가톨릭교회가 진정으로 토착화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것들도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최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