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모든 일상이 멈춰버린 연평도의 설맞이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1-02-09 수정일 2011-02-09 발행일 2011-02-13 제 2733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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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속 인적 끊긴 거리 … 설은 남의 나라 이야기”
편의·보건 시설은 문닫고 복구·보상 활동도 지지부진 정신적 상처 치료도 시급
연평도의 시계는 지난해 11월 23일에 멈춰서 있다. 그리고 그 속은 여전히 생채기 투성이다.

노란 폴리스라인으로 둘러싸인 폐허더미에서는 아직도 매캐한 탄약 냄새가 나는 듯하다. 엉겁결에 몸만 빠져나간 주인, 뒤에 남은 수족관 물고기들은 그 자리에서 메말라 박제가 됐다. 부서지고 불탄 집들 사이에는 쓰레기와 개똥만이 쌓여간다.

집을 찾아 두어 달 만에 돌아왔지만 보일러는 멈췄고 수도관은 얼어 터졌다. 냉방에서 잠자기도, 물을 길어다 밥을 짓기도 어려워 다시 뭍으로 나가기도 했다. 남은 이들도 굴 한 개 제대로 캐지 못한다. 집도 불타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객지에서 고생하는 이웃들을 생각하면 혼자서 배 부르자고 이기심을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뭍에선 연평도가 거의 잊혀지는 듯하다. 온갖 현안들에 파묻혀 연평도 복구 사업도 지지부진하다. 희망도 신뢰도 가질 수 없는 주민들은 보상 문제를 놓고 본의 아니게 반목하기도 했다. 그런 주민들에 대해 일부 물색없는 이들은 한몫 잡으려 한다고 비난도 했다. 모두가 아픈 생채기를 또다시 할퀴는 모습이다.

연평도 관할 교구장인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설날을 이틀 앞두고 연평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진심어린 위로와 기도가 필요한 곳이 바로 연평도이기 때문이다. 지난 성탄 때도 길을 나섰지만, 궂은 날씨로 뱃길이 막혔었다.

북한은 연평도를 향해 170여 발의 포를 쏘아댔다. 지금의 연평도 주민들은 스스로가, 또 이웃들이 떨어뜨리는 마음의 포탄을 연방 두려워하고 있다.

연평도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거실에 포탄이 떨어졌지만 살아남은 박영녀 할머니의 집을 둘러보는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에게 연평도본당 주임 김태헌 신부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적막했다. 일주일 내내 라면만 먹던 시간, 집 근처에까지 대포가 설치되던 모습, 옆집 이상은 외출도 할 수 없었던 여정은 모두 지나갔지만 특별히 더 나아진 것도 없는 현실이다. 모든 편의시설과 상업시설들은, 영업은 물론 생계활동도 중단됐다. 보건지소조차 포격으로 피해를 입어 경로당에서 임시진료를 지원한다.

설을 앞두고 돌아온 주민은 1700여 명 중 300여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설 연휴 내내 온종일 마을을 돌아다녀도 주민들은 몇 명 만나기가 쉽지 않다. 평일미사에 나오는 신자들도 대여섯 명 정도, 어떤 날은 연평도본당 주임 김태헌 신부 혼자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한다.

마을 주민 정애숙(실비아)씨는 “아무리 추워도 설날에는 이웃 어른들께 세배하고 인사드리느라 사람들이 북적이고 이집 저집에서 차 한 잔, 술 한 잔 나눴지만, 지금은 문밖에 나서도 집 잃은 개들만이 따라붙어 아예 집밖엔 나오지 않으려는 이들도 많다”고 전한다.

물 사정도 나쁘고, 뭍에서 들여올 수 있는 먹을거리도 한계가 있어 대부분의 집에서는 설날 밥상도 간소하게 차려야 했다. 무엇보다 벅적대며 설잔치를 준비할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설 분위기를 스케치하겠다는 기자의 욕심이 미안할 정도였다.

연평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성당과 마을을 둘러본 최기산 주교는 먼저 두 손을 모았다.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인구 밀집지역에만 30여 발의 포탄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는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돌보심 덕분입니다.”

이어 최 주교는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일치를, 국민들의 일치를, 남북 민족 간의 일치를 위해 하느님께 끊임없이 기도하고 성모님을 통해 간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당 앞마당에도 포탄이 두 발 떨어졌었다. 당시 사제관에 있었던 김 신부는 다행히 무사했다. 구사제관과 본당 승합차 등은 유탄으로 형편없이 부서졌지만, 바로 옆에 있던 성모상도 티끌 하나 없이 무사했다.

성당 피해 상황을 조사하러 온 포탄 전문가는 “각도상 성모상은 유탄을 결코 피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며 “성모상이 멀쩡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연방 혀를 내둘렀다.

본당 신자인 박영녀(안나) 할머니도 포격 당시 거실에서 묵주기도를 봉헌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안방엘 들어갔는데 그 순간 거실에 포탄이 떨어졌다. 안방으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그대로 포탄에 깔렸을 상황이었다.

모든 주민들이 연평도를 떠날 때 성당을 지키기 위해 홀로 남았던 김태헌 신부는 그동안 얼어붙은 사제관에서 사목업무를 보고 있었다. 전기스토브 한 개에만 의지해서다. 물은 조금씩 길어다 끓여서 이른바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잠은 온돌 패널이 깔려있는 성당 유아방에서 청한다. 성당과 사제관도 전체 건물이 들썩였던 터라 전면 보수가 불가피하지만, 현재는 유리창만 갈아 끼운 상태로 임시 사용 중이다.

신자들도 처음엔 “왜 우리에게” “왜 우리 섬에”라고 계속 반문했다. 김 신부는 그런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우리가 더 큰 보속과 희생을 드려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보속행위의 하나로 그동안 김 신부와 주민들은 난방을 하지 않고 미사를 봉헌해왔다. 이례적인 한파가 수십일 간 이어진 내내 김 신부는 주수병 안에 얼어있는 물을 손가락으로 깨서 써야만 했다. 하얀 입김을 불어가며 미사를 봉헌했지만 누구도 불만스러워 하지 않았다.

김 신부는 연평도 주민들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김 신부는 주민들이 마음의 포탄을, 신앙의 포탄을 맞지 않길 매일같이 기도한다.

최 주교도 “그저 사정을 들어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으로 체계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지원돼야 한다”며 “이러한 때 신앙인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이웃으로서 희망을 전하는 노력을 이어가자”고 당부했다.

아울러 최 주교는 “그 무엇보다 정부는 연평도 주민 모두에게 각각 정당한 보상을 하고, 사회안전망을 더욱 탄탄히 갖춰 누구나 살고 싶은 섬으로 다시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4월이면 연평도 꽃게잡이가 시작돼야 한다. 하지만 포격으로 어장 어구들은 다 쓸려가 흔적도 없고, 바다 속 그물들의 상태가 어떤지 살펴볼 수도 없었다. 이젠 목숨 수당까지 요구하는 통에 함께 조업할 선원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그래도 연평도 주민들은 예전의 모습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을 면장인 신성만(요셉)씨도 “서로가 힘을 합해 흉물스럽게 된 동네를 재건하는데 힘을 모으고 안전한 마을 환경을 갖추는데 힘써야할 때”라며 “국민들도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만 연평도를 돌아볼 것이 아니라 한 국민으로서, 이웃으로서 한결같은 관심과 협력을 이어나가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웃 간의 거리가 섬과 뭍의 거리보다 멀어져선 안 될 것이다. 그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힘은 바로 우리들 안에 있다.

주인은 급하게 몸을 피하고, 남은 물고기는 수족관 안에서 말라죽어버렸다.

■ 연평도본당 설날 미사 봉헌

“화해하고 소통하길 바랍니다”

3일 설날 아침, 연평도성당에서는 서로 영육간의 건강을 기원하며 명절의 기쁨을 나누는 장과 조상들을 위한 합동위령미사가 마련됐다.

특히 이날 미사 후에는 본당 신자들이 최 주교에게 세배하고, 최 주교도 본당 전 신자들에게 설 선물을 선사하며 영육간의 건강을 비는 자리도 이어졌다. 또 떡국과 찹쌀떡 등으로 꾸며진 식사시간도 마련됐다. 미사에 참례한 신자 전원이 함께한 이날 식사 자리는 교구 평협과 노틀담 수녀회 등에서 연평도본당 신자들을 위해 특별히 먹을거리를 꾸려 보낸 덕분에 차려졌다.

아울러 미사를 주례한 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강론을 통해 “음력설은 가족이 모두 한데 모여 기원하는 의미가 더 크다”며 “서로 사랑하고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는 가운데 우리가 하나될 수 있다”고 독려했다. 또한 최 주교는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우리 민족이 하나되고 더욱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며 “양쪽 모두 무력을 포기하고 화해해 온 국민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길 바라며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최기산 주교가 본당 신자들과 선물을 나누며 새해인사를 전하고 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