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무료급식소 ‘요셉의집’ 자원봉사자들

정정호 기자
입력일 2011-01-05 수정일 2011-01-05 발행일 2011-01-09 제 272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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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 한그릇에 이웃사랑 듬뿍”
초등학생 아이부터 여든 살 할아버지까지
아무런 대가없이 꾸준한 봉사·나눔 실천
‘하느님 일’이란 생각에 ‘기쁨·행복’ 느껴
14년째 요셉의집에서 봉사하고 있는 이순례 할머니가 국을 끓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평상시보다 많은 이들이 불우이웃 돕기에 동참한다. 각종 성금도 많이 모이고, 사회복지시설에도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이 줄을 잇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따스함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오랜 세월 한결같이 지켜온 이들이 있다. 주인공은 예수성심시녀회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요셉의집’ 자원봉사자들.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겨울 한파도 녹일 만큼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그들의 봉사현장을 찾았다.

대구 시내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요셉의집(원장 구순임 수녀·예수성심시녀회). 식사를 하기 위해 골목에 길게 늘어선 줄을 생각하며 그곳을 찾았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조금 더 다가가서 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건물 입구에 대기실과 벤치가 따로 마련돼 있었던 것. 이는 지난해 6월 여러 은인들의 도움으로 증축 공사를 실시, 48석이던 좌석을 두 배로 늘리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언뜻 보기에도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서 모두들 배식 준비에 한창이다.

“수저랑 식기는 여기서 나눠주시고요, 반찬은 저쪽에….”

“국은 이쪽이에요~”

배식 준비가 끝나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96석의 자리는 금세 가득찼다.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더욱 분주하다. 그 중 눈에 들어오는 봉사자가 있었다. 배식대에 서서 수저를 나눠주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고다영(세실리아)양. 엄마를 따라 봉사하러 왔다는 다영양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재미있고 보람이 있어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다영이의 엄마 에딧다씨는 “외동딸이기에 집에서 받기만 하며 지내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보고 도와줄줄도 아는 체험을 시키고 싶었다”며 “다행히 싫어하지 않고 잘 따라나오는 모습이 고맙다”고 말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식판에 수저를 놓으며 봉사하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고다영양.

오는 3월이면 요셉의집에서 봉사한지 15년이 된다는 송정희(스테파노·수성본당)씨는 “봉사는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기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듯이 봉사한다”면서 “여기 있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배식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저곳에서 바쁜 모습의 봉사자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필요한 것이 있는지 살피는 봉사자, 쉴새없이 쏟아지는 식기와 수저들을 설거지하는 봉사자, 식탁을 닦고 정리하는 봉사자, 따뜻한 물을 일일이 따르고 날라다 주는 봉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만큼 활기찬 모습이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하루 평균 700~750여 명. 이들이 모두 다녀갈 때까지 봉사자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땀 흘려 열심히 일한다. 배식은 오전 10시 30분쯤부터 시작해 오후 1시까지이지만, 봉사자들의 일과는 식사 준비에서부터 뒷정리까지 하고 나면 오후 3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난다. 모두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일하지만 하나같이 기쁨과 보람을 얻는다며 입을 모은다.

이명근(모이세·80·대안본당) 할아버지는 “하느님께 은혜를 받고 사는 만큼 나도 베푸는 것이지 대단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지만 급식소가 문을 열지 않는 수요일과 주일을 빼고는 늘 이곳에 와서 봉사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열혈’ 봉사자다.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으로 들어가봤다. 얼굴에 유난히 환한 미소가 번지는 할머니 한 분이 국을 끓이고 있었다. 14년째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이순례(보노사·74) 할머니. 이 할머니는 “몸은 힘들지만 즐겁고 행복하고, 또 이렇게 일하니 건강도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예순 살 때부터 (봉사를)해왔는데, 미치지 않고는 못해~하하하. 여기에 미치니까 이렇게 나와서 하지~”라고 말하며 크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행복해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갓 지은 밥을 연신 퍼나르는 김문수(요아킴·소화본당)씨는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하느님의 일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일한다”며 “경제도 어렵고 다들 힘든 시기에 이렇게 나눌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전했다.

배식이 모두 끝난 시간.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도 봉사자들은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식탁 정리와 설거지를 비롯한 뒷정리까지 마무리하고 나서야 봉사자들은 요셉의집을 나섰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이들의 수고 덕분에 사람들은 따뜻한 점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유난히 추운 요즘 날씨에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비단 주방의 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이 나눠준 것은 단순한 밥 한그릇이 아닌 사랑 그 자체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과 정성을 담아 배식 봉사를 하고 있는 요셉의집 봉사자들.

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