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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시대, 교회는 지금] (10) 무지개 열매 (2) ‘평화의 모후’Pr.&‘모이세 사도회’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10-10-06 수정일 2010-10-06 발행일 2010-10-10 제 271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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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성가정, 남편·아내가 함께 만들어가요”
아내는 ‘평화의 모후’Pr.
남편은 ‘모이세 사도회’
신앙 공유로 성가정 이뤄
110만 명의 이주민이 살아가고 있는 다문화 시대, 교회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이주민 사업’을 펼쳐왔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상담·의료지원 사업에서부터 시작, 2000년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다문화가정을 위한 교육·복지 사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전교구 이주사목부에선 이러한 교회의 활동들이 이주 ‘사목’이 아닌 이주 ‘사업’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교회 최초 다문화가정 신심단체를 조직해 주목할만하다.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신심단체 다문화가정 여성 레지오 마리애 ‘평화의 모후’쁘레시디움과 남편 자조 모임 ‘모이세 사도회’를 만나봤다.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지난 2009년 4월 11일, 다문화가정 여성 5명으로 구성된 레지오 마리애 ‘평화의 모후’쁘레시디움이 창단됐다. 신앙에 목말라하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위한 신앙 터전을 일궈야겠다는 대전교구 이주사목부(담당 맹상학 신부)의 노력에 의해서다. 자발적으로 쁘레시디움에 참여한 다문화 여성 펠라(필리핀·45), 그레이스(필리핀·33), 쩐티투하(베트남·27), 멜라니(필리핀·25), 마리셀(필리핀·32)씨는 약 3개월간의 입문과정을 거쳐 지난 8월 8일 정식단원으로서의 선서식을 갖고 매주 일요일 오후 12시 30분 레지오 모임을 해오고 있다.

첫 회합 당시 한국 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서툴러 헤매던 평화의 모후 단원들은 이제 한국어 기도문을 능숙하게 외는 것은 물론 자유기도도 무리없이 해낸다. ‘평화의 모후’첫 회합부터 지금까지 이들의 모임을 도와온 임시단장 고명석(돈보스코·천안 오룡동본당 ‘평화의 모후’ 꼬미씨움 단장)씨는 “처음엔 기도문을 외는 것도 서툴던 이들이 이제 묵주기도와 미사 참례 등의 기도도 자발적으로 해 오고 있다”면서 “특히 주변 지인들을 레지오에 입단시키기 위해 애쓰는 등 전교에 노력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마음에 은총이 열매 맺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전했다.

이들 단원들이 매주 레지오 모임에 꼬박꼬박 참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는 그레이스씨는 주일 레지오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토요일 밤 늦게까지 밀린 집안일을 마친다고 한다. 쩐티투하씨도 “비신자인 남편의 이해를 구해가며 매주 주일 레지오에 나오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멜라니씨도 “네 살배기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레지오 기도 모임에 데리고 오곤 하는데, 아이를 돌보며 회합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레지오 모임에 한주도 거르지 않고 성실히 참여하는 것은 이들 모두가 최초의 다문화가정 여성 레지오 단원이라는 사명감 때문이다.

마리셀씨는 “우리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조직된 다문화가정 여성 레지오라고 신부님께 전해 들었다”면서 “우리가 이 모임을 성공적으로 꾸려간다면, 다른 다문화가정 여성들에게도 모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단장을 맡고 있는 펠라씨는 “한 사람이라도 더 레지오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 지금 우리 단원들의 목표”라면서 “성모님께 뽑힌 군단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레지오 모임을 꾸려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무엇보다 이 레지오 모임이 맺고 있는 열매는 이들 단원 각자 안에 신앙의 불길이 타오르게 됐다는 점이다. “하느님께 대한 갈망에 늘 목이 말랐다”는 쩐티투하씨는 “레지오 모임을 시작한 이후 마음의 짐을 벗어버린 느낌”이라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여성들로 구성된 ‘평화의 모후’Pr. 단원들이 맹상학 신부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능숙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기도를 바치고 있는 ‘평화의 모후’Pr. 단원들.
■ 다문화가정 남편이 간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어렵게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이런 아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다문화가정 남편들도 ‘모이세 사도회’를 조직해 아내의 뒤를 따르고 있다.

지난 2009년 12월 세례를 받은 다문화가정 남편 5명으로 출발한 모이세 사도회 1기는 지난 9월 5일 예비신자 입교식에 2명의 다문화가정 남편을 입교시키는 등 모이세 사도회 2기 회원 모집에 적극 나서고 있다. 모이세 사도회 1기 남편 심용보(바오로), 한상년(라파엘), 장병관(시몬), 박상구(요한보스코), 김형석(프란치스코)씨는 지난 12월 세례를 받은 이후 지난 9개월 간 다문화 성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모범을 보이며 주변의 다문화가정 남편들에게 입교를 권해왔다. 천안 지역 다문화가정 남편들의 친목모임인 한필회와 사랑회에도 남편들의 신앙생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 회원들의 관심을 모았다. 필리핀에서 온 아내와 함께 신앙을 공유한다면 더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지 않겠냐는 설득에 지난 9월 5일 입교식에는 한필회·사랑회 회원들이 성당을 찾기도 했다.

모이세 사도회를 도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결혼 10년차 다문화가정 가장 정창식(모이세)씨는 “다문화가정의 가장인 남편들이 모이세 사도회를 통해 신앙을 나누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보자는 뜻으로 한필회와 사랑회에 입교를 권하고 있다”면서 “우리 모이세 사도회가 다문화가정 남편들에게 신앙을 전파하는 누룩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용보씨는 “원래 불교 신자였는데 성당에 나가는 아내와 함께하고 싶어 세례를 받게 됐다”면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모이세 사도회 1기로서 책임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 모이세 사도회는 매 1·3주 주일 오후 2시 영어 미사 후 모여 묵주기도, 말씀 나눔, 생활 나눔 등을 통해 신앙을 키운다. 지난 7월엔 천안 성거산 성지로 성지순례를 가기도 했으며, 1박2일 피정 등도 계획하고 있다. 특히 매월 첫 번째 일요일 영어미사에선 모이세 사도회가 미사 전례 복사를 담당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레이스씨는 “개신교에 다니던 남편이 저를 통해 천주교에 입교해 성당에 나오고 이제는 모이세 사도회에도 가입했다”면서 “이주민이 참석하는 영어미사에 복사를 서고 있는 제대 위의 남편을 보면 정말 자랑스럽고 흐뭇하다”며 웃었다.

맹상학 신부는 “신앙에 기반하지 않은 자조 모임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가 힘들다”면서 “이제는 이주민들의 신앙적 갈등을 채워주고, 말씀을 전하는 이주 ‘사목’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맹 신부는 “남편과 아내가 신앙을 공유하며 함께 기도할 때 성가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라면서 “남편, 아내, 자녀 등으로 세분화된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세례를 받은 다문화가정 남편 5명으로 출발한 모이세 사도회는 매 1·3주 주일 영어미사 후 묵주기도, 말씀·생활 나눔 등을 통해 신앙을 키우며, 미사 전례 복사도 담당하고 있다.

임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