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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날 특집] 활기찬 노년, 기쁘지 아니한가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0-09-28 수정일 2010-09-28 발행일 2010-10-03 제 271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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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돌봄’의 대상 아닌 능동적 사회구성원
평균 수명 높아짐에 따라 노인 인구 갈수록 늘어나
전문적인 노인 사목 필요
성취감·정체성 확인 위한 다양한 취미·봉사 활동 등 ‘활기찬 노년’ 이끌어내야
10여 년 전만 해도 ‘노인사목’은 ‘복지사목’ 정도로 여겨져 왔다. 식사대접과 덩실덩실 춤이 전부였던 이 사목은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남과 함께 현대사회 안에서 중요성이 높아가고 있다. 노인은 어떠한 존재며, 그 사목적 배려는 어떻게 변해가야 하는가.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장차 노인이 될 우리도 진지한 생각을 거듭해 본다.

■ 노인이라는 두 글자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흔히 노인을 생각하면 우리는 지팡이와 흰 머리, 구부정한 허리 등을 생각해왔다. 현재 노인을 가늠하는 기준연령은 65세.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대사회의 인간 평균수명을 감안해 노인 기준연령인 65세를 실질적인 70세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현대사회 안에서 ‘노인’으로 분류되는 65세는 노인으로 일컬어지기에 많은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의학의 발달로 노화는 갈수록 더디어지고 평균수명도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11%로 550만 명, 2050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38.5%(19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안 노인의 기준이 재조명됨에 따라 그에 따른 사목 또한 여러 변화를 겪어왔다. 오래 전 본당 노인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간단한 율동과 노래, 식사대접 등의 노인사목에서 벗어나 노인이 되기 위한 전 단계부터 준비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활동’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교구별로 각각 운영돼 전국적으로 통합된 노인위원회 하나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고, 본당에서도 노인과 노인사목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있지 않는 등 다양한 어려움을 안고 있지만 고령화사회에서 노인사목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심포지엄이나 세미나 등을 통해 이미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부(담당 이성원 신부)는 노인을 영시니어(55~65세)와 미들시니어(65세~80세), 올드시니어(80세 이상) 단계로 구분하고 그에 맞춘 여러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 발맞춰 ‘활기찬 노년’을 신앙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목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교구 노인사목부는 두레(동아리) 활동을 중심으로 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 서울시니어아카데미 등을 통해 활기찬 노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제1회 가톨릭 시니어 아카데미 축제의 모습.

■ 왜 노년은 활기차야 하는가

현재 노인사목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두레(동아리) 활동을 중심으로 매우 다양하다. 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 서울시니어아카데미 등을 운영해 영시니어와 미들시니어의 욕구를 채워준다. 프로그램에는 기존 본당에서 실시되던 프로그램보다 더욱 활기차게 변화를 줬다.

실제로 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에서는 건강스포츠 두레, 문학의 향기(글짓기) 두레, 사진촬영 두레, 연극 두레, 웰빙 웰다잉 두레, 기타 두레, 컴퓨터 두레, NIE(Newspaper in Education) 두레 등을 운영하고 있다.

노년기가 활기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부 담당 이성원 신부는 우선 노인들의 활용도가 자유로운 시간을 꼽았다. 사회에서 전력투구했던 장년기와 달리 노인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생을 특별한 소일거리나 취미거리 없이 산다는 것은 노인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또 노인들의 삶의 노하우, 지난날 직업으로 삼았던 전문적 업무에 대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하다. 노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기 위해 얼마 전 서울시니어아카데미에서는 ‘골목학교 할머니 선생님’을 통해 전직 교사 경험이 있는 영시니어들을 교육, 지역사회 아동들을 돌볼 수 있도록 했다. 취업여성의 자녀 양육시간을 덜어주고 그들이 전문화된 업무를 맡아 아동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또 ‘우먼-시니어 엔터테인먼트’는 음악적 소질이나 연극적 취향을 가진 시니어들이 훈련을 통해 그 결과물을 사회로 환원할 수 있도록 한다. 노인들은 스스로 연극단, 합창단, 합주단 등을 만들어 연습하고 자원봉사를 하며, 봉사 전 자원봉사에 대한 이해와 리더십, 매너 등에 대해 필수교양 프로그램으로 교육받는다.

필수교양 프로그램 교육이 끝나고 나서야 그들은 적극적인 기술훈련 프로그램에 돌입한다. 그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봉사에 대한 성취감과 자아정체성에 대한 확인.

마지막으로 ‘활기찬 노년’이 이끌어내는 기적은 사회 안 ‘노인인식 개선’이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가 아닌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며, 노인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낼 때 타 구성원들 또한 노인을 진정한 의미에서 공경할 수 있다는 논리다.

‘활기찬 노년’은 노인 자신도 무조건적인 대접을 바라기보다 스스로 움직이며 다른 세대와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다. 특히 이러한 ‘활기찬 노년’이 죽음에 대해 유구한 전통을 가진 가톨릭 안에서 이뤄진다면 보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웰다잉’까지도 한 걸음 더 빨리 걸어갈 수 있을 듯하다.

이성원 신부는 “노인은 대접해드린다는 하나의 차원으로 바라보기보다 문화적, 신체적, 영성적, 심리적인 부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가야 한다”며 “교회 내 구성원들이 가진 노인에 대한 인식 전환과 사목에 대한 관심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명동 꼬스트홀에서 열린 제2기 가톨릭 영 시니어 아카데미 졸업작품 발표회를 찾은 사람들이 문학의 향기 두레가 전시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 인터뷰 / 서울대교구 노인사목부 이성원 신부

“어르신들 위한 다양한 사목적 배려 시급”

이성원 신부는 “고령화되는 한국사회에 발맞춰 활기찬 노년을 신앙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목적 배려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성원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부 담당)는 30여 년 전 노인대학의 출발점에 있던 어르신들은 이미 90대가 됐다고 했다. 당시 율동과 식사대접이 전부였던 노인대학의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활기찬 노년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노인사목부’다.

설립 이전 펼쳐진 ‘고령화 사회와 가톨릭교회의 노인사목 방향’ 포럼에서는 평균 수명 연장에 따른 노인에 대한 정의 지적,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 요청 등이 이뤄졌다.

이 신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노인들을 ‘모신다’(Care)는 개념에서 벗어나 그들 스스로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활동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노인시기를 준비해야 하는 영 시니어(55~65세)의 단계도 중요하다고 했다.

“노인 가능성이 있는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노인이 되고 난 다음에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지요. 노인시기를 준비하며 자신의 취미를 찾고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준비를 해야 ‘활기찬 노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친구’라는 관점에서 노인들끼리 친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사회 내 소외계층으로 분리되기 쉬운 그들에게 ‘친교’란 앞으로의 여생을 즐겁게 해주는 윤활유와 같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앞으로 우리 모두 30여 년은 노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남아있는 많은 시간을 활기차게 살려면 소일거리와 취미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노인사목부의 프로그램들입니다.”

그는 많은 시간을 가진 노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노하우를 사회에 풀어내고, 그것이 사회에 환원돼 노인 스스로 정체성을 찾고 사회적으로도 인식이 개선되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할 때 노인에 대해 ‘요구하는 공경’이 아닌 ‘저절로 생겨나는 공경’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복지’지요. 사회적 합의에 의한 복지가 아닌, 진짜 노인들이 행복한 삶을 찾는 복지(福祉) 말입니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