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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시대, 교회는 지금] (8) 국가별 공동체 네트워크 - 수원 엠마우스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10-06-30 수정일 2010-06-30 발행일 2010-07-04 제 270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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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 - 가톨릭신문사 공동기획
공동체 교류·연대로 여는 다문화 시대
‘일치·통합·자활’ 목표로 국가나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모두가 하나되는 진정한 ‘다문화의 길’ 가기 위해 노력
수원 엠마우스 국가별 신앙공동체 대표들과 최병조 신부(왼쪽에서 두 번째)가 국가별 공동체에 관한 소식을 전하며,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
■ 스리랑카에서 온 라드나시리씨

라드나시리씨는 4년 전 한국에 왔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이민자 수가 적은 스리랑카에서 왔기 때문에 주변에서 스리랑카인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매주 6일 13시간씩 이어지는 노동. 라드나시리씨는 한국말을 배울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그런 그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태국 노동자의 소개로 ‘수원 엠마우스’를 알게 됐다. 그곳에서 스리랑카인 2명을 만났다. 라드나시리씨와 같이 용인에 살고 있던 수랑가씨였다. 남양 쪽에 살고 있는 산다마리씨도 합류했다. 이렇게 그들은 ‘작은 공동체’를 이뤘고, 한국에서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됐다.

■ 나아지리아에서 온 임마누엘씨

가톨릭국가 나이지리아에서 온 임마누엘 씨는 2002년 한국에 왔다. 피부도 언어도 문화도 모든 것이 낯선 이국땅에서 임마누엘 씨는 제일 먼저 ‘성당’을 찾았다. 안산 반월공단에서 일하던 임마누엘 씨는 공장 동료의 소개로 인근 성당에 나가게 됐고, 그 곳에서 ‘수원 엠마우스’를 알게 됐다. 안산에서 수원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그는 매주 센터에 나와 미사를 봉헌하고 아프리카에서 온 동료들과 친교를 나누는 등 신앙활동을 이어갔다. 2010년, 한국생활 9년차인 그는 아프리카 선교 공동체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 잠시 왔다가는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이렇게 공동체를 중심으로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삶의 첫 번째이기 때문입니다.”

110만 명이 넘는 이주민들. 일하러 온 이들도,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리기 위해 온 이들도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주민 공동체다. 그 공동체는 국가별 신앙공동체가 될 수도 있고 결혼이민 여성들이 도움을 주고받는 다문화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신앙’이나 ‘결혼’이라는 공통분모 없이, 단순히 같은 나라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공동체가 구성된다. 태국, 중국, 몽골, 스리랑카 등 크고 작은 수많은 공동체가 곳곳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꾸려가고 있다.

1995년 인터내셔널 공동체로 활동을 시작한 수원 엠마우스는 ‘일치’와 ‘통합’ 그리고 ‘자활’을 목표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들을 아우르고 있다. 이 중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들 공동체들이 국가나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말 그대로 ‘다문화’의 길로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수원 엠마우스를 담당하고 있는 최병조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는 “이제는 각 공동체 형성의 단계를 지나, 공동체 간 연대를 통해 진정한 다문화의 길로 가야 한다”면서 “수원 엠마우스에서는 각 국가별 공동체 대표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 구성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필리핀, 아프리카, 남미, 미주 및 유럽 국가 등 5개 국가로 나눠 활동하고 있는 수원 엠마우스 국가별 신앙 공동체는 각 대표를 중심으로 공동체간 연대를 다지며 신앙의 힘을 한데로 모으고 있다. 1995년 수원 고등동본당 영어미사에서부터 시작된 필리핀 공동체와 아프리카 공동체에 비해 뒤늦게 형성된 베트남, 남미 공동체는 필리핀 공동체를 통해 ‘공동체 생활’의 기초를 다지기도 했다. 공동체간 협력을 통해 더 큰 공동체로의 ‘통합’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민자 여성으로 구성된 7국가 다문화네트워크도 공동체 통합의 중요 포인트다. 우즈베키스탄, 남미, 필리핀, 베트남, 중국, 태국, 일본 등 기타 국가를 포함하는 7국가 다문화공동체는 ‘자활’을 목표로 공동체 활동을 펼쳐왔고, 이 ‘연대’의 힘으로 ‘이중언어교실’, ‘수제초콜릿 사업’, ‘다문화 레스토랑’ 등 일자리 창출을 통한 취업의 꿈을 꾸게 됐다.

‘신앙’을 토대로 하건 ‘결혼’을 매개로 하건 그들은 공동체 속에 모이고 있고 그 안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꾸려가고 있다. 공동체는 이주민들에게 한국어는 어디에서 배워야 할지에서부터 시작해, 모국에 전화를 거는 법,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곳, 어려움을 겪을 때 찾아가야 할 이주민상담센터 등 한국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정보창고다. 뿐만 아니라, 함께 동고동락할 친구를 통해 고향의 정을 느끼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재충전의 장소다.

최병조 신부는 “공동체가 이주민들의 삶의 구심점이기 때문에, 이곳이 선교의 중요 포인트가 되는 것이며, 이들 공동체의 통합을 통해 보편교회의 위상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편교회의 위상은 일치와 통합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가 돼야 합니다. 국가별, 종교별로 산재해있는 공동체가 서로 교류함으로써 더 큰 통합의 세상을 연다면 진정한 다문화 시대가 열리리라 생각합니다.”

6월 27일 일요일, 국가별 공동체 미사가 끝난 오후 1시 30분, 각 국가별 신앙 공동체 대표가 모였다.

“필리핀 공동체에는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농구코트가 필요해요.”

“남미 공동체는 아이들 교리도 시킬 수 있고, 다양한 신앙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베트남 공동체도 마찬가지예요. 언제든 찾아와 기도할 수 있는 국제본당이 생긴다면 정말 좋겠어요.”

각 공동체 대표들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그 자리에서, 힘없던 이주민들이 목소리를 모아 일어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땅에 진정한 다문화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그들만의 세상’이, 연대와 통합의 공동체 속에 열리고 있었다.

임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