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교회 창립 선조를 찾아서] (10) 이승훈 (1)

입력일 2010-01-19 수정일 2010-01-19 발행일 2010-01-24 제 268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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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벽 통해 천주교 진리 배우고 실천
이승훈 성현은 1756년 서울 반석방에서 당시 대문장가였던 평창 이씨 이동욱 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현께서는 학문을 사랑하던 정조시대에 정권을 잡고 있던 남인시파의 선비로서, 일찍이 1779년에 열렸던 천진암 강학회를 통하여 광암 이벽 성조에게서 당시 천학이라 부르던 천주교의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북경 천주교회와 연락을 도모하던 이벽 성조의 명을 받은 이승훈 성현께서는, 동지사로 북경에 가게된 아버지 이동욱 공을 따라 1783년 늦가을 북경 천주당에 가서 세례를 받고 이듬해 이른 봄에 귀국함으로써 국내에서 선교사없이 한국인들에 의해서 갓 태어난 조선 천주교회 발전에 큰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승훈 성현이 북경 사절단에 자기 아버지를 따라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이벽 성조께서는 몹시 기뻐서, 즉시 그를 찾아갔는데, 그 시대의 문헌에 의하면 이벽 성조께서 이승훈 성현에게 한, 주목할 만한 말은 다음과 같다.

“자네가 북경에 가는 것은 참된 교리를 알라고 하늘이 우리에게 주시는 훌륭한 기횔세. 참 성인들의 교리와 만물의 창조주이신 천주를 공경하는 참다운 방식은 서양인들에게는 가장 높은 지경에 이르렀네. 그 도리가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것 없이는, 자기 마음과 자기 성격을 바로잡지 못하네. 그것이 아니면 임금들과 백성들의 서로 다른 본분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것이 아니면, 천지창조며 남북극 원리며 천체의 규칙적 운행을 우리는 알 수가 없네. 그리고 천사와 악신의 구별이며, 이 세상의 시작과 종말이며, 영혼과 육신의 결합이며, 죄를 사하기 위한 천주성자의 강생이며, 선인은 천당에서 상을 받고 악인은 지옥에서 벌을 받는 것 등,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없네.”

사실 종교서적을 아직 많이 접하거나 깊이 연구하지 않아서 천주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이승훈 성현은 이벽 성조의 말씀에 크게 감명을 받아서, 책을 몇 권 더 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벽 성조께서 가지고 있던 책들을 대강 읽어 보고 나서, 기쁨에 넘쳐, 자기로서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자네가 북경에 가게 된 것은 천주께서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기사 구원코자 하시는 표적일세. 북경에 가거든, 즉시 천주당을 찾아가서 서양인 학자들과 상의하며 모든 것을 물어보고, 그들과 교리를 깊이 파고들어, 천주교의 모든 예배행위를 자세히 알아보고, 필요한 서적들을 가져오게. 삶과 죽음의 큰 문제와 영원의 큰 문제가 자네 손에 있으니, 가서 무엇보다도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게.”

이벽 성조의 이 말씀은 학문의 갈증보다도 종교의 갈증이 그에게 더욱 절실하였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의 마음을 준비한 것이니, 그에게는 구령대사가 점점 더 유일한 중대사가 되어 갔던 것이다. 이벽 성조의 말씀은 이승훈 성현의 마음 속 깊이 파고 들어갔다. 이승훈 성현은 이벽 성조의 말씀을 대도사(大道師)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부여된 사명을 완수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승훈 성현은 드디어 1783년 11월 18일 동지사 일행에 섞여서 아버지 이동욱 공을 따라 그 해 말 경 북경에 도착하였고, 북당에 가서 1784년 이른 봄 귀국 전에 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서울로 돌아왔다. 세례명은 베드로였다. 조선 천주교회의 주춧돌이 되리라는 희망에서 받은 세례명이었다. ※ 자료출처 : 천진암성지 홈페이지(chonjin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