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아프리카에서 필리핀까지 <3>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9-11-11 수정일 2009-11-11 발행일 2009-11-15 제 2672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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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항해…공포·뱃멀미 극에 달하고
귀향(歸鄕). 이상원 신부가 10시간이 넘는 섬 사목 방문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
3시간 동안 항해한 배가 섬 백사장에 닿자 마을 아이들이 모여들어 이 신부를 환영했다. 이 신부 가 각뿔리 공소 섬마을에 도착, 배에서 내리고 있다.
길이 13m 폭 90cm의 작은 조각배. 파도를 정면으로 받을 때마다 하늘로 솟구친다. 그리고는 이내 바다로 곤두박질친다. 배 안으로 바닷물이 계속 들이치고 있었다. 온몸으로 바닷물을 맞았다. 일기 예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배를 탄 것이 화근이었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벌써 3시간째. 육지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 10시간 전…

오전 8시. 날씨가 화창했다. 바다는 마치 푸른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잔잔했다. 수심 4~5m까지 맨눈으로 보이는 맑은 바다는 평화롭기까지 했다.

각뿔리, 리갓…. 오늘 이상원 신부가 찾아갈 섬 마을이다. 각각 배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들 공소들은 이 신부가 오기 전에는 1년에 사제 얼굴 한번 볼까 말까한 곳이었다. 이 신부가 공소에 가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선 배 기름값 등 경비가 한국 돈으로 약 1만5000원이 소요된다. 하지만 공소 봉헌금 및 미사예물은 500원 수준. 이런 섬 마을 공소가 30곳이 넘다 보니 일일이 챙기려다보면 본당 재정이 감당해 낼 수 없다. 그동안 섬 마을 신자들이 사제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 신부가 오면서 달라졌다. “전 어릴 때부터 원래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성격이었습니다.” 이 신부가 환하게 웃는다. 이 신부는 각 공소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배가 출발했다. 300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목선을 구입하지 못해 배를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좀 더 큰 배를 이용하면 이동 시간을 단축하고, 안전도 확보할 수 있지만 임대료가 만만찮아 포기했다. 배가 미끄러지듯 바다를 갈랐다.

# 7시간 전….

3시간 동안 항해한 배가 섬 백사장에 닿자마자 마을 아이들이 달려와 이 신부 품에 착 안긴다. 마을 사람들도 집에서 가장 좋은 옷, 깨끗한 옷을 입고 속속 모여들었다. 섬 중턱에 위치한 공소에서 미사가 봉헌됐다. 어른이 20여 명, 아이들이 30여 명, 임신부가 7명이다. 강아지 한 마리도 제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신부가 강론했다.

“어렵게 살아가시는 것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믿고 희망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제가 늘 여러분과 함께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안에서 참 평화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소형 배로 근해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근근이 생활하는 이들은 대부분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태어나서 평생 동안 섬을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많다. 도시 빈민들에 대한 복지조차 감당해 내지 못하는 필리핀 정부는 소수 섬마을 부족들에 대해선 거의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섬에 들렀다. 이곳도 역시 1950~60년대 한국 섬마을 풍경이다. 화장실, 전기 등 문명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킴벨리 라간, 과학자가 되겠다는 아이자 바랄, 의사가 되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리베르티 발데즈. 모두 16세 꿈 많은 소녀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꿈은 단순한 ‘희망사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신부가 부모들에게 육지로 유학을 보내라고 하자, 부모들은 담담히 웃었다.

이 신부가 “부모님들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등 성의만 보이면 제가 어떻게 해서든 가톨릭 계열 학교로 보내고, 저도 적은 금액이지만 학비를 보태겠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주민들이 바나나 등 먹을 것을 내 놓았다. 이 신부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민들과 함께 ‘놀았다’. 사제와 신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이웃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만남의 행복에 밀려, 이 신부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멀리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 지금….

카메라가 걱정됐다. 조각배 안으로 바닷물이 들이치고 있었다. 사진기도 사진기지만, 그동안 촬영한 사진이 모두 못쓰게 될 우려가 있었다. 미리 준비한 비옷으로 카메라 가방을 감쌌다. 그러고 나니 정작 몸은 바닷물을 정면으로 맞아야 했다. 발목까지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쉴새없이 물을 퍼내야 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배는 하늘로 솟았다 바다로 곤두박질치기를 계속했다. ‘어어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배가 전복될 위기가 수차례 있었다.

뱃멀미도 힘들었지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공포와의 싸움이었다. 바다는 검은색이었다. 해는 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바다는 점점 암흑으로 변해갔다. 마음속으로 계속 성모송을 바쳤다. 그때였다. 바다가 일순 잠잠해졌다. 내해(內海)로 들어온 것이다. 이 신부의 숙소가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하느님 맙소사! 감사합니다.” 배 난간을 얼마나 꽉 잡았던지 손목이 아려왔다. 잠시 후 멀리 불빛 하나가 보였다. 하늘은 꺼져가는 붉은색으로 가득했다.

이 신부가 그 붉은 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뱃머리에 앉아 있었다.

이 신부가 섬 마을 공소를 방문,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