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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사랑입니다 (4) 생명의 문화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1-05-06 수정일 2001-05-06 발행일 2001-05-06 제 224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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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문화 건설은 신앙인의 책임”
물질만능 과학지상주의 사고 만연
생명경시 풍조마저 ‘자유’로 오인
『온갖 종류의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와,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의 고문, 심리적 탄압과 같이 인간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와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 불법 감금, 유형, 노예화, 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매매, 또는 노동자들이 자유와 책임을 가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고 단순한 수익의 도구로 취급되는 노동의 악조건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행위 등, 또 이와 비슷한 다른 모든 행위는 실로 파렴치한 노릇이다. 그것은 인간 문명을 손상시키는 행위이며 불의를 당하는 사람보다 불의를 자행하는 사람을 더럽히는 행위로서 창조주께 대한 극도의 모욕이다』(현대세계의 사목헌장 27항)

이미 30년도 더 지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이러한 고발은 오늘날 조금도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반생명적인 지경으로 나아가고 있다.

교회는 일찍부터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대해 강조해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27항과 51항을 비롯해 「민족들의 발전」(1976) 8항과 45·46항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또 「세계 정의에 관하여」(1971) 35항, 「자유의 전갈」(1984) 6항과 76항, 「사회적 관심」(1987) 23항과 33·34항, 「가정공동체」(1981) 50~74항, 「평신도 그리스도인」(1988) 38항, 그리고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가 발표한 「생명의 봉사자 의료인 헌장」(1994) 등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5년 3월 25일 인간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관해 반포한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은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오늘날 세계의 현실과「'죽음의 문화」에 대항해 「생명의 문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교회의 선도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교황은 회칙에서 생명에 대한 폭력의 기원을 성서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찾으면서 이후 인류 역사 안에서 자행된 생명 파괴의 예로 살인, 전쟁, 집단학살, 가난, 영양실조, 기아, 낙태, 안락사, 대규모 출산 통제 등의 반생명적인 현실들에 주목했다.

회칙은 이러한 현상들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으로까지 확산됐음을 강조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가 되기보다는 거부당하고 소외되고 뿌리뽑히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경고했다. 아울러 최근 들어서는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한 인간복제의 시도 등 새로운 윤리적인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다.

교황은 오늘날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시대의 문화를 일컬어 「죽음의 문화」라고 불렀다.

죽음의 문화 확산

그러면 이러한 죽음의 문화, 반생명적인 현상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실제로 오늘날 세상은 이러한 반생명적인 행태들에 대해 그것을 범죄로 인식하기보다는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일종의 권리로 그릇되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죽음의 문화가 너무나 깊고 넓게 뿌리내리고 확산된 상황에서 생명경시의 그릇된 풍조조차도 자유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가져온 가장 심각한 오류로서 물질만능주의를 지적했다. 공해,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등은 심각하게 인간 생명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풍요를 빙자한 물질주의에 가려져 왔다.

정신적인 면에서 현대인들의 절대적인 가치로 간주되는 것 중 하나가 개인의 자유이다. 절대적인 선과 악의 기준이 아니라 의무, 덕, 권위, 법, 관습, 전통 등 객관적 윤리규범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내세우며 낙태의 자유, 자살이나 안락사의 권리, 성의 해방 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몇 백년에 걸친 진보를 불과 수십년, 수년만에 이뤄내는 과학의 시대에 맹목적인 과학기술주의적 사고방식 역시 생명을 위협하는 한가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 특히 의료기술의 발전은 생명의 연장, 질병의 퇴치라는 이익을 가져왔지만 핵 등 대량 살상 무기의 위협에 이어 심지어는 유일하게 하나의 인격적 존재인 인간 개체를 복제하려는 시도까지 하게 만들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해 성탄절에 발표한 담화문에서 『우리는 오늘날 생명의 모든 단계, 특별히 생명의 시작과 자연적인 죽음의 단계에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에 직면해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죽음의 문화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저항하고 생명을 옹호함으로써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았다고 회칙 「생명의 복음」은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인간 생명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파견 소명에 대해 강조하면서 『이 생명의 복음의 빛을 받는 우리는 그것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그 놀라운 참신함을 증언할 필요성을 느낍니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존재했던 반생명적인 현실이 더욱 극심하게 인간 생명을 위협함에 따라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생명 수호를 위해, 「죽음의 문화」를 거슬러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