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아시아교회가 간다] 아시아교회 연대와 복음화 향한 대장정 - 취재기자 방담

전대섭 부장rn이주연 부장rn신정식 차장rn김상재 차장
입력일 1999-04-04 수정일 1999-04-04 발행일 1999-04-04 제 214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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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 생활속에 녹아든 신앙 매우 인상적
홍콩 - 외국인 이주노동자 사목 가장 시급
타이완 - 사회참여 소홀로 일반인 교회외면
일본 - 사제고령화와 성소부족 현상 심각
아시아교회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 확인
북방선교에는 각국 교회 관심 일치
연대통한 아시아교회 모델 창출해야
아시아교회 현황 자료 제공면에서 큰 몫
지난 97년 창간 70주년을 기해 「아시아교회가 간다」특별기획 현장르포를 시작, 아시아복음화를 향한 대장정에 나섰던 가톨릭신문이 르포에 참여했던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아시아복음화 현장 취재」의 중간점검을 시도한다.

97년 4월 6일 창간 70주년 기념호에서 그 첫회 「아시아의 바티칸, 필리핀」편으로 「아시아교회가 간다」의 포문을 열었던 가톨릭신문은 지금까지 19회에 걸쳐 필리핀 대만 홍콩 태국 일본교회의 생생한 복음화 상황을 알렸다.

다섯 개 국가 교회 복음화 현장을 발로 뛴 기자들의 방담을 묶어 「아시아교회가 간다」르포의 이모저모를 되새겨 본다.

■ 방담기자

필리핀 이주연 부장

홍콩 전대섭 부장

타이완 김상재 차장

일본 신정식 차장

취재의의

▲이= 아시아교회의 잠재력과 선교가능성을 점검하고 한국교회안에 그 인식의 장을 새롭게 열어보였다는데 「아시아교회가 간다」시리즈의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아시아교회를 본격적이고 집중적으로 탐구한 유익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시아와 중국 북한교회 복음화를 위한 적극적 자세를 요청받고 있는 한국교회가 그 소명을 달성키 위해 지역교회들과의 연대작업을 펴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볼 때 매우 시의 적절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같은 의견입니다. 유사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가진 아시아권 교회를 찾아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그들의 삶과 신앙 애환과 비전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의미있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습니다.

▲김= 아시아교회 현황 파악을 위한 정보 자료제공 면에서도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대만교회의 경우 취재 사전 준비에 필요한 관계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현지에 가서야 교세현황등을 확인할 수 있었죠. 그런 까닭에 취재시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이= 취재대상 교회들의 관계자료를 국내에서 사전에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은 기획에 참여했던 전 기자들이 겪었던 고충이었다고 봅니다. 기존에 나와있는 자료들도 선교사들의 체험기 형식이 대부분이어서 객관적 자료로 활용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간 한국교회가 아시아교회에 대해 소홀했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한 예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각국 교회문화 인상적

▲전= 그러한 의미만큼 실제 취재하면서 경험했던 인상깊은 일들도 다양할텐데요. 홍콩교회의 경우 현장을 취재한 시기가 중국반환을 목전에 둔 97년 6월이었다는 점에서 취재기자의 기대랄까 설레임도 컸습니다. 물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현장에 서 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가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당시 중국 반환 시기와 맞물려 홍콩과 홍콩교회에 관한 상세한 소식을 보도해 준데 대해 많은 가톨릭신문 독자들이 격려와 감사의 뜻을 전달한 기억이 나는군요. 특히 홍콩교구 요한 통 보좌주교와의 인터뷰 기사는 현지 최고위급 교회 인사의 말을 통해 홍콩교회의 앞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여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었지요.

▲이= 제가 방문한 필리핀교회는 말그대로 가톨릭교회안의 제1세계 국가 였습니다. 인구의 85%가 가톨릭 신자라는 비율이 말해주듯 필리핀에서 가톨릭 신앙이 「생활속에 녹아든 자연스러움」이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부러웠고 인상적이었습니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가톨릭문화를 빼놓으면 얘기가 되지 않을정도 였습니다. 저의 경우 방문시기가 성주간이었는데 성지주일에는 마닐라 전 시내가 각양각색으로 꾸민 코코넛 가지로 만든 성지가지로 넘치더군요. 솔직히 필리핀 초기교회사를 볼 때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신앙이 주어졌던 상황이었음에도 이같이 나라 전체에 깊숙히 배어져 있는 가톨릭 신앙의 모습은 경이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 대만교회는 아주 특이한 역사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이미 1646년 아시아내 어느 지역 어느 교회보다 일찍 시작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다 1950년경 중국본토에서 공산국에 쫓겨 넘어온 교계제도로 이식된 교회입니다. 본당주임신부의 2/3가 수도회 소속일 정도로 중국서 건너온 수도회가 득세를 하고 있었죠. 그래서 사제고령화와 성소부족 현상이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대만정부와 마찬가지로 본토 수복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으로 대만 현지 선교를 소홀히 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신= 대만교회와 비슷하게 일본교회 역시 사제고령화겮볼捻适?현상이 심각했습니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일본에 가서 하루 이틀 지내고 보니 「일본 교회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10명도 되지 않는 본당도 수두룩했고 그나마 주일미사만 봉헌될 뿐 신심단체 활동이나 액션단체 활동이 전무하더군요. 선교활동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였습니다. 어떤 수도회는 15년째 성소자가 1명도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교구 사제 성소자도 1년에 1∼2명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과연 여기서 무얼 취재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이 들었습니다. 오사카 나가사키등 지방교회들을 취재하면서 그들의 저력과 일본교회 나름대로의 깊이 등을 이해할 수 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그 미래가 밝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시아교회의 현안

▲전= 각 교회들의 현안들로 얘기가 넘어가는데요. 홍콩은 인구 640만명 가운데 외지인이 8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동서간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사회구조도 여기에서 근거한다고 볼 수 있죠. 그런 배경에서 현재 홍콩교회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사목을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가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홍콩당국에서 파악하고 있는 이주민들만 12만명이 넘습니다. 소위 불법 체류자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가톨릭신자라는 것이죠. 필리핀 이주민들만 12만여명에 달합니다. 이는 전체 가톨릭신자수의 30%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죠. 홍콩교회로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가톨릭의 오랜 전통과 활력 생기를 보이고 있는 필리핀교회 이면에는 「도시화」등을 통한 신앙과 생활의 유리 현상이 큰 문제로 부각돼 있었습니다. 필리핀 주교회의 사무총장 귀또리오 몬시뇰은 『물질주의 세속화의 팽배가 신앙을 하나의 좧관념적좩인 것으로 여기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걱정하더군요. 세속화된 가치들을 신앙적으로 접근시키고 삶안에서 교회적 시각으로 풀어줄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전= 홍콩교회는 앞서 말씀드렸듯 외국인사목에 역점을 두면서 프랑스인, 베트남 난민, 본토 이주민등 계층에 따른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을 위해서는 현지인신부가 이들을 전담 사목하고 있었고 베트남 난민들을 위해서는 명절이나 교회축일에 특별모금으로 여러 지원사업을 펴는 한편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와 함께 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일도 주요 사업으로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요한 홍콩교회 과제중 하나는 본토이주민들에 대한 대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같은 중국인이지만 언어 생활방식이 다른, 매일 수백명씩 몰려드는 본토 이주민들을 교육시키고 거처를 마련해주는 것이 큰 몫이었습니다. 홍콩 가톨릭신문 「공교보」(公敎報) 총편집인 장가흥씨가 밝힌 「150년간의 괴리를 극복하고 본토 교회와의 일치를 회복하는 것이 홍콩교회 최대과제」라는 표현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겠죠.

▲김= 대만교회 큰 문제점은 대만의 저명 신학자 장춘썬신부가 지적하듯 「현실과 동떨어진 영성」이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70년대 활발했던 교회가 80년대 들어 세속화 흐름과 맞물리는 가운데 교도권은 신자들을 제대로 준비 시키지 못했고 결국 현실과 유리된 신앙 모습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죠. 이러한 대만교회모습은 다른 교회에 하나의 타산지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속에 육화되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성소부족」 「사제고령화」 이로 인한 본당선교사제 절대 부족이라는 대만교회의 약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평신도 활동 강화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직 60∼70년대 소위 밀가루신자 시절의 습성이 남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티캉 대주교는 본당의 재정 등 모든 업무를 점차 평신도들이 운영하게 하고 성직자는 3∼4개 본당을 맡아 성무만 집행하게 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이= 평신도활동의 활발함은 단연 필리핀교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교회내 헌신과 역할은 필리핀교회의 희망이라고 할만큼 크게 돋보이고 있습니다. 91년 열렸던 필리핀 제2차 지역공의회의 중요 이슈가 BEC(Basic Ecumanical Communities 기초공동체)와 평신도활동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자수는 많고 사목자는 태부족한 필리핀교회의 어려움을 극복키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됐죠. 이미 사목자들이 부족한 관계로 평신도부제 등 평신도지도자들의 활동이 제도적으로도 잘 정비돼 있던 상황이었지만 필리핀 제2차 지역공의회는 평신도들의 역할이 새로운 조명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당수녀」의 개념이 없는 필리핀에서는 한국의 수녀님들이 본당에서 맡는 소임들을 평신도들이 거의 처리해가고 있었습니다. 여성평신도들의 활약도 눈부셨구요.

▲신=일본교회를 통해서는 교↙육사업과 사회복지분야에서의 노력들을 눈여겨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유아교육에서부터 대학까지 훌륭한 교육시설을 많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오사카에서는 빈민구제활동 등 복지활동들을 개척자 정신으로 이끌고 있었고 최근에는 동경과 요꼬하마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 사목에 많은 관심을 쏟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러한 교육 복지 사업들이 일본교회를 이끌어 가는 저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직접적인 선교열의는 없어도 이같은 사업들을 통해 간접선교의 효과를 거두고 나아가 그리스도 정신을 사회에 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만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복음실천의 삶입니다. 대만교회는 80년대들어 대만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정체시기를 걷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신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복음을 실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결과입니다. 대만에서 만난 지도층 신자들은 『전례나 교리보다는 생활 속에서 복음적 삶을 살수 있는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아시아교회는 물론 세계교회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북한교회 문제, 즉 북방선교는 취재를 했던 나라들에 있어서도 공통된 관심사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필리핀은 20%를 웃도는 중국계 필리핀인들을 향후 북방선교의 선교역군으로 양성하는데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필리핀교회는 이미 마닐라시내에 중국계 신학생들만을 위한 신학교를 별도로 설립해 놓는 등 탄탄한 준비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김= 중국본토 선교 문제를 얘기할 때 대만교회는 언젠가 자신들이 그 핵심적 역할을 해야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지역보다 본토선교에 대한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 교회지도자들이 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중국의 교량교회로서 그 선봉에 서야한다는 것은 필수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대만교회는 현재 반환이후의 홍콩교회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신= 일본의 경우 그 교회 자체로는 힘이 미약할 수 있지만 일본이 지닌 국가적인 인지도나 일본교회의 오랜 전통 그리고 신학적 깊이 등에 한국을 비롯 주변 여러나라 교회들의 힘이 합쳐진다면 몽골 중국 북한 등 북방선교에 엄청난 힘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면에서는 각 교회와의 연대와 나눔 교류는 아시아교회가 대희년을 살기 위한 화두일 것 같습니다.

아시아교회의 연대와 나눔

▲전=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닮은 아시아권 교회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기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적교류를 비롯해서 다양한 부문에서 상호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아시아권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사나 기회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그렇습니다. 일본 한국 등은 비슷한 풍습을 가지고 있고 홍콩 대만 중국은 한민족이므로 적극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아시아교회가 직면한 여러문제들, 특히 너무 로마적인 문제들을 포함한 당면과제들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생각합니다. 다시말해 이번 취재과정에서 느낀 것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서는 아시아적인 토양, 좁게는 각 지역적인 지역 고유의 삶속에 육화된 교회의 모습이 절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신= 그런 면에서 최근 한국과 일본의 성직자 수도자 교류도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본당 차원에서도 사목위원이나 청소년들의 정기적 교환방문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특히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습니까? 이같은 작은 교류들을 통해서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풀지 못하는 아픔들을 치유하고 화해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져야 하겠죠.

▲이= 「토착화」라는 면에서도 아시아권 교회의 사례와 경험들은 적극 모색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양교회와는 다른, 다양한 문화를 보유하면서도 공통된 심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아시아교회간의 연대는 아시아교회 나름대로의 개성을 가지면서 아시아적 교회모델의 창출을 이루는데 단초가 될 것입니다. 한편 일부에서는 한국교회가 외국사회에 대한 특수한 폐쇄성 외국인 동남아 인들에 대한 편견 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더군요. 이같은 문제는 아시아 세계교회와 연대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견들이었습니다. 필리핀만해도 유구한 신앙역사 풍부한 사목적 노하우 세계적 교회 교육기관 보유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가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 교류와 나눔이 한정되어있는 듯 해서 아쉽습니다.

못다한 이야기

▲전= 취재일정 등이 넉넉치 못했고 자료부족으로 인한 사전준비들이 충분치 못해 최소한 일정으로 최대한 많은 정보를 획득하려 했던 것이 취재기자 공통의 고충이었다고 봅니다. 더 많은 현지인들을 만나서 그들의 진면목을 좀 더 깊이있게 관찰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홍콩 카리따스를 방문, 설립자이자 총책임자인 러다신부와 북한식량담당 실무 책임자인 캐시 젤베거양을 만나 홍콩 까리따스의 북한 지원현황을 보다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신= 제가 취재하고 온 시점이 97년 10월 초순, 그러니까 IMF가 터지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오사카의 대표적 빈민지역 「가마가사키」를 갔었는데 거기서 일일노동자 노숙자들의 황폐한 모습을 보면서 경제대국 이면의 어두운 면을 실감했었습니다. 그들을 보살피는 교회의 구호활동들을 지켜보고 「이것이 교회의 참모습이구나」 했는데 얼마후 우리나라에서 그같은 상황이 재현돼 아이러니 했습니다. 노숙자들을 대상으로한 교회의 구호활동 모습과 노하우를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기회였죠.

▲김= 이번 취재과정 중에서 또하나 느낀 것은 보편 교회 속에서 우리는 너무 우리 집에만 연연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가 사명감을 갖고 손을 내밀어야 할 이웃과 형제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신문의 이번 취재는 신자들에게 하나인 신앙안에서 세계교회와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이= 외국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노동자들이 한국에 유입되면서 그간 그들의 모습으로 필리핀교회를 알고 이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아시아교회가 간다」 기획을 통해 한국 필리핀교회간 거리를 보다 가깝게 느끼게 됐다고 평을 해주는 독자들 얘기에서 개인적인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한국 필리핀교회는 서로를 경제적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지 않습니까. 「가난하지만 신앙은 선진국」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내던 마닐라대교구장 하이메 신 추기경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전=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가톨릭신문이 이처럼 기자들을 해외에 파견해서 현지 취재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는 인정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의 도전이었고 국내 독자들에게는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자부합니다.

전대섭 부장rn이주연 부장rn신정식 차장rn김상재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