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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대축일 특집] 성령의 이해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00-06-11 수정일 2000-06-11 발행일 2000-06-11 제 2204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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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은 부활신비의 절정
성령은 누구이신가

성령은 그리스도의 수난하시고 부활하신 인간성을 성부의 오른편에 앉게 하시어 영광스럽게 하신 원동력이시므로 또한 그리스도와 결합된 모든 믿는 이들을 영광스럽게 해주실 원동력이시다. 그래서 교회 전통은 성령을 교회의 영혼이라고 한다. 인간의 육체가 영혼에 의하여 살아있듯 교회도 성령에 의하여 살아있다는 말이다.

성령께서 교회의 혼이시라면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 역시 성령이시다. 성령은 성화의 은총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할 자격을 부여하시어 새사람이 될 힘을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성령께서는 사람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초자연적 덕성을 주시어 사람이 구원진리를 올바로 믿게 하시고 그 믿음에 의지하여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영생을 바라며 모든 피조물 위에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열정을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은 신자 개인을 성화시키실 뿐만 아니라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교회를 성화시키신다. 예수께서 교회의 모든 내용들을 만드신 분이시라면 성령은 교회가 교회로서 존립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분으로 교회 일치와 보편성의 근원일 뿐 아니라 교회가 복음선포를 하는 원천이 되시는 분이시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결합된 모든 믿는 이들을 영광스럽게 해주실 원동력이시다. 사진은 엘그레코의 오순절.
성령강림

교회의 전례력은 부활시기가 성령강림대축일로 마감된다. 이는 성령강림이 예수부활과 별도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령강림과 함께 초대교회가 기쁘고 담대히 복음선포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부활체험이었다. 그러나 예수부활 이후에도 두려움과 의심때문에 조심스러운 상태에 있던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야 기쁘고 담대하게 이방인들과 유다인들에게 이 예수부활을 증거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성령강림과 예수부활은 서로를 비추는 빛으로 성령강림은 부활신비의 절정인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첫번째 증언(사도 2, 14~36)을 통해 30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아 세례를 받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는」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들의 모임이야 말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강림일을 교회의 창립일로 기념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

성령강림은 교회의 시작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교회의 성장을 위해 계속되는 사건이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성화은총으로 오늘날에도 계속적으로 은사를 베풀어 주신다. 성령의 그 여러가지 도움을 흔히 성령칠은이라 하여 슬기, 지각, 의견, 지식, 용기, 효경, 경외심을 일컫는다. 슬기는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세속 사랑보다 귀하게 아는 지혜를 말하며, 지각은 구원진리를 인간 지력의 한계내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의견은 선악에 대한 바른 판단력을 도우며, 지식은 믿을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식별하는 은사이다. 용기의 은사는 신앙생활에 수반하는 모든 장애를 극복하며, 효경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더하게 하고, 경외심은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상할까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두려워 하게 하는 은사이다. 그러나 이 칠은은 완전을 상징하는 7이라는 숫자의 상징적 의미를 존중하여 만든 것이고 성령의 은사를 일곱가지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은사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로 특별한 사람들만 받을 수 있는 특수한 은사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거저 주시는 선물을 총칭한다. 이 은사는 신자들로 하여금 봉사하게 하여 하느님의 몸이 되는 교회를 세우는데 그 첫번째 목적이 있고 둘째는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위해서다.

아울러 셋째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결국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건설과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하나가 된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이 거처하게 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성령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며 그 은사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여야 한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