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생명은 사랑입니다 (2) 인간복제 (1)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1-04-08 수정일 2001-04-08 발행일 2001-04-08 제 2244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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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다가온 암울한 미래”
유산·기형·급사 등 부작용 불보듯
심각한 윤리적 문제·위험성 야기
1932년

과학만능주의와 그 폐단을 예고한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Wonderful New World)」가 대량 생산된 인간의 이야기를 언급한 이래 복제인간은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흥미로운 모티브가 되어왔다. 특히 SF 영화들은 상당한 전문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간복제를 주제로 인류의 미래를 그려왔다. 헉슬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성관계는 종족 보존의 수단이 아니다. 「런던중앙 인공부화구」에서 인공수정된 수정란은 질에 따라 신분이 5등급으로 분류되며 각 등급은 선천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정해진다.

1976년

출간된 아이라 레빈의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라는 추리소설은 나치 정권 하에서 악명을 떨치던 한 과학자가 히틀러와 유전자가 똑같은 94명의 아이를 복제해 히틀러와 같은 성장과정을 거치게 하는 경악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이 소설 속에서 묘사된 인간 복제 방법은 「돌리」의 복제 방법과 거의 유사해 놀라움을 안겨준다.

1982년

리들리 스코트가 감독한 「블레이드 러너」는 복제인간들의 불행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2019년 제3차 세계대전 후 우주 개척에 나선 인류는 복제인간을 만들어 그 임무를 맡긴다. 전투용, 노동용, 암살용, 위안용으로 구분되어 4년간의 수명을 지닌 노예로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진 복제인간들은 반란을 일으켜 창조자인 인간과의 전쟁에 들어간다.

이처럼 생명체의 복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의 상상을 통해 구체화되어왔다.

하지만 이제 인류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했던 복제인간의 탄생을 빠르면 1~2년 안에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라엘리안이라는 한 신흥종교집단이 운영하는 미국의 생명공학 기업인 「클로네이드」사가 10개월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요청에 따라 죽은 아이를 복제하겠다고 발표했고 3월초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이같은 계획에 대해 발표한 바 있으나 세간에서는 이를 일축했다. 그러던 것이 이탈리아의 세베리노 안티노리 교수와 미국 켄터키 대학의 파노스 자보스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이 1~2년내에 인간 복제를 실현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인간 복제는 더 이상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클로네이드사의 복제 계획에 전세계에서 수백명의 신청자가 쇄도했고 그 중에는 한국인 8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8명 중 1명은 신청 도중 사망했기에 실제 신청자는 7명이다.

「한국 라엘리안 무브먼트」를 통해 신청한 이들 한국인 신청자들은 불임으로 인해 자식을 낳지 못하는 주부, 독신으로 살면서 아이를 얻으려는 사람, 장애인 등 다양하다.

대가 끊어질 것을 우려해 신청한 주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없이 불임 치료를 하고 체외수정과 입양까지 생각했고 씨받이까지 거론하는 상황에서 인간 복제를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간 복제의 법적 금지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복제를 금지하지 않는 나라에 가서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라엘리안 무브먼트 한국 지부측은 지난 1999년에 이들 신청자를 받아둔 상태이므로 복제 계획이 공공연하게 발표되기 전에 이미 사전 준비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초로 복제된 생명체가 탄생한 것은 지난 1996년. 영국 로슬린 연구소에서의 복제양 「돌리」 탄생 이후 소, 원숭이, 쥐 등 다양한 복제 생명체가 탄생하고 있다. 한국도 1999년 2월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복제 송아지 「영롱이」를 탄생시켜 영국(양), 일본(소), 뉴질랜드(소), 미국(쥐)에 이어 다섯 번째로 동물 복제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인간 복제가 시간 문제라고 한다.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 복제에는 엄청난 윤리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무려 277회의 실험 끝에 탄생한 돌리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복제 실험으로 파생되는 유산, 기형, 급사증후군, 거대체중증후군 등의 부작용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일 때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종교계는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생명의 신성함을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해 반대하고 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위험성이 과대평가됐다며 복제가 불임부부나 불치병 환자의 치유를 위한 첩경이라고 주장하면서 복제실험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인간 복제가 암암리에 시도되어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사실 인간복제 시도가 공공연하게 발표되고 있다면 이미 많은 실험들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간의 배아 복제를 허용하는 나라는 영국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련 법안이 미비해 많은 나라에서 복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발족한 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서 관련 법안 초안을 검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복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윤리적 문제와는 별도로 특별히 현 단계에서의 복제 실험이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나 영국 로슬린연구소는 현 단계에서의 인간복제가 엄청난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 복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확고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1997년 3월2일 생명체 복제는 인간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위험한 실험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2월26일자 「로세르바또레 로마노」지는 사설에서 이를 신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며 인위적인 종(種)의 변형은 창조질서에 대한 위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리적 논란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간 복제 실험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관련 법안의 입법과 엄격한 규제 조치가 취해진다고 할지라도 어쩌면 SF 영화들에서 보았던 인간 존엄성이 파괴된 암울한 미래가 인류에게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