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쉽게 보는 교회 미술 산책] (25) 로렌초 로토의 ‘성 크리스토포로와 두 성인’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9-02-08 수정일 2009-02-08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아기 예수님을 어깨에 짊어진 거인”

탁월한 회화적 감각으로 인체와 자연을 묘사

성 크리스토포로는 여행·순례자의 수호성인

성 크리스토포로에 관한 전설

성화 중에 가끔 중년의 거인이 어깨에 아기를 메고 강을 건너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가 바로 뱃사공, 순례자, 여행자의 수호성인 성 크리스토포로(San Cristoforo)다. 성 크리스토포로는 순례 여행이 많았던 과거에도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많이 받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크리스토포로는 일반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키가 컸던 거인으로서 원래의 이름은 레프로보였지만 세례를 받은 후 크리스토포로로 불리었으며 이는 예수님의 운반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 크리스토포로는 갑작스런 죽음에서 보호해주는 성인으로도 여겨져서 누구든지 성인의 그림을 본 사람은 당일에는 사망하지 않는다는 설로 인해 서양에서는 교회나 건물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이 성인을 그려놓곤 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는 신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성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3세기에 중앙 아시아에서 활동했으며, 리치아(Lycia)에서 순교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성인에 대한 이야기의 출처는 13세기 제노바의 한 수도자에 의해 쓰여진 ‘황금전설’이다. 성 크리스토포로가 키가 열두 척이나 되는 거인이었고, 생김새 또한 무시무시했다는 전설은 모두 이 책에서 유래한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권세가 큰 통치자 밑에서 봉사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로 여겨진 왕에게 봉사하는 일을 시작했으나 왕보다 악마가 더 센 것으로 생각이 되자 이번에는 악마에게 봉사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주인을 바꾸었다. 마지막으로 악마가 십자가를 보자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예수 그리스도가 악마보다도 더 세다고 생각하여 오랫동안 그리스도를 찾아 헤매던 중 한 은수자를 만나 그리스도교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은수자는 “사람들이 강을 건너다가 자주 빠져죽는데 키가 큰 네가 사람들을 도와주면 그리스도가 대단히 좋아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존재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일러주었다. 크리스토포로는 강 근처에 오두막 하나를 지어놓고 나무의 몸통으로 지팡이를 만들고는 이때부터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강을 건너게 해달라는 소리가 들려 나와 보니 한 아기가 있었다. 크리스토포로는 그 아기를 어깨에 메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하더니 건널수록 물살이 세지고 위험해지는 것이 아닌가. 거인 크리스토포로는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네가 너무 무거워서 마치 온 세상을 짊어진 것 같구나.”

“두려워 말라. 너는 세상뿐만 아니라 세상의 창조자를 짊어지고 있느니라.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아이의 말이 이어졌다.

“강을 건너거든 네 지팡이를 땅에 심거라. 그리하면 내일 아침에 거기서 꽃이 피어난 것을 보게 될 것이며, 내가 그리스도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가 말한 대로 했더니 다음날 과연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이후 크리스토포로는 그리스도교 교인이 되어 리치아로 건너가 열심히 전교하며 지내다가 마침내 체포되어 우상숭배를 강요받았으나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이교도의 왕은 크리스토포로에게 화살을 쏘아 죽이라는 명을 내렸으나 그가 화살에 맞아도 죽지 않자 마침내 참수 당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로토의 성 크리스토포로

16세기 베네치아의 화가 로렌초 로토의 이 그림은 크리스토포로 성인의 특징을 참 잘 보여주고 있다.

높이가 3미터에 가까운 이 대작에 세 명의 성인이 그려졌다. 중앙에 아기를 어깨에 얹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강을 건너고 있는 사람이 성 크리스토포로이다. 아기는 운동장처럼 넓은 거인의 어깨에서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가 거인이라는 사실은 옆의 두 성인이 아이처럼 작게 그려진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세 성인은 각자 지팡이를 짚고 있거나 나무에 묶여 있는데, 지팡이의 크기만 비교해 보아도 성 크리스토포로가 얼마나 거인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로토는 16세기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베네치아 최고의 거장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작품에서도 인체에 대한 묘사, 색상의 표현, 하늘, 물과 같은 자연 묘사는 이 화가가 더 이상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성 크리스토포로를 두른 붉은 천은 화면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화가의 탁월한 회화적 감각은 감상자로 하여금 감탄사를 아낄 수 없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고종희(마리아·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Tip

로렌초 로토는 작품 ‘성모영보’를 통해 만나본 바 있다. 로토에 대해 조금 더 소개를 덧붙이자면 초상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회화 장르 중 초상화는 오래 전부터 권력자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거나 부자들이 재력을 뽐내기 좋은 수단이었다. 또 어떤 화가가 초상화를 그렸느냐는 권력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로토와 동시대를 살았던 티치아노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화가였다. 때문에 황제나 교황들도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티치아노 못지않게 당대의 인물들을 캔버스에 생생하게 남겨 둔 이가 바로 로토다. 고종희 교수는 이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아마 사진사라는 직업을 가장 많이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토는 이탈리아 최초의 사진사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당대의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티치아노의 그늘에 가려진 로토는 유명 인물보다 지역의 지주 등을 주로 그렸다.

빛의 효과를 한껏 활용해 일반 시민들의 내면의 심리와 욕망까지도 신비스럽게 재현한 로토는 영혼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인물의 모습을 사진처럼 정밀하게 포착했던 그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15세기 화가들이 시작한 자연주의를 완벽의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작품설명

‘성 크리스토포로와 두 성인’, 로렌초 로토, 1535년 경, 275 x 233 cm, 로레토, 교황 대리구 산타 카사.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