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2009년 1월 일일 노숙인 체험

임양미 기자,이우현 기자
입력일 2009-01-01 수정일 2009-01-01 발행일 2009-01-01 제 2629호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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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간절한 희망"
노숙인도 오감을 느낀다. 주위 시선이 따갑고, 맨 바닥이 차갑고, 악취를 분간할 수 있다. 사람들의 멸시가 들리고 짠맛과 신맛을 구분한다. 일 하고 싶고, 집을 갖고 싶고, 함께 대화할 벗을 갖고 싶은 욕구가 있다. 오늘 하루 노숙인의 눈, 코, 입, 귀와 살갗이 돼 그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시각

노숙인이 돼 걷는 명동 거리는 낯설다. 곧 다가올 성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화려한 명동. 나무에 걸린 색색 전등이 눈부시다. 상점이 내건 성탄 장식이 현란하다. 명동성당 앞에는 전경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다. 집회가 있을 모양이다. 이 모든 것은 노숙인과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진다. 한참을 걸어봐도 갈 곳이 없다. 현란한 간판도, 눈부신 조명도 모두 잿빛이다. 거리를 헤맨 지 3시간 째, 혼자는 외롭다. 노숙인 친구를 사귀고픈 마음에 을지로 입구역 지하도로 향한다.

#촉각

을지로입구 역 만남의 광장에는 이미 노숙인 3,40명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 옆에 슬며시 다가간다. 낯선 이를 경계하는 주위 노숙인의 시선이 따갑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초리도 따갑다. 노숙인끼리 모여 있어도 외롭긴 매한가지. 바닥에 몸을 누이니 뼈 속까지 스미는 한기가 차갑다. 발끝 손끝 감각이 희미해진다. 허기진 몸으로 맨바닥을 이부자리 삼아 이대로 누워 잠을 잘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주위가 웅성거린다. 몸을 일으켜보니,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이들이 차와 떡을 나눠준다. 누구냐 물으니 매주 금요일 순찰을 도는 서울카리타스봉사단이란다. 언 손을 차의 따뜻한 온기로 녹인다. 살 것 같다. 말랑말랑 갓 쪄낸 듯한 떡이 손에 쥐어진다.

따뜻하다. 배가 고팠지만 막상 떡을 먹으려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아직 맨바닥 추위 맛을 덜 봐서일까. 옆에 앉은 한 노숙인은 허겁지겁 떡을 삼키더니 얼른 다시 줄을 선다. 결국 떡 하나를 더 받아들고 좋아한다. 봉사자 한 명이 이따 밤엔 서울역 광장에서 라면 배식을 한단다. ‘라면’ 소리에 배가 요동을 친다. 주머니 속에 떡을 구겨 넣고 서울역을 향해 걷는다.

노숙인에게 손을 내밀어 온기를 전하는 카리타스 자원봉사단원들.

#후각

메주 냄새가 진동을 한다. 서울역 지하도 7, 8번 출구 쪽 통로를 지나는데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악취의 근원지는 이 통로에 상주하고 있는 40명 남짓의 노숙인들. 신문지 몇 장을 깔아 놓는다거나 얇은 침낭을 둘둘 말고 있는 신참은 발을 붙일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집들이 즐비하다. 규격이 일정한 두꺼운 종이박스로 벽을 쌓고 천장도 덮었다.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 높이 1미터의 직사각형 관 모양. 이 정도면 최상급이다. 이때 진동하는 악취를 가르고 을지로 입구에서 봤던 봉사자 한 명이 다가온다. 종이박스 관 속에 누운 노숙인의 기침소리에 “편찮으신가봐요”하며 차를 건낸다. 구수한 옥수수차 향기가 퍼진다. 악취가 풍기는 통로 안도 잠시 옥수수차의 행복한 내음으로 물드는 것 같다. 지하도를 빠져나와 서울역 광장으로 올라간다. 라면 배식 한다던 밥차는 온데간데 없고, 촛불시위대와 전경들이 대치중이다. 수백명의 전경을 등지고 시위대는 하늘로 폭죽을 쏘아댄다. 수백개의 폭죽 행렬이 5분간 이어진다. 화약냄새가 고약하다. 대합실로 몸을 피한다.

#청각

“휘리리릭~!” 라면 배식을 기다리며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노숙인을 내쫓는 경찰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만취한 듯한 그는 괴성을 지르며 밖으로 나간다. “내가 죽으려고 작정하고 술 마시는거야. 내가 여기서 죽어나간 사람 한두 명 본 게 아니야. 어차피 나도 간다 이거야. 흐흐흐” 비릿한 웃음을 흘린다. 노숙인이 아닌 척 앉아있는데 나를 두고 뒷사람이 수군거린다. “노숙자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맞아. 아우 냄새. 아우 더러워. 우리 저리로 가자.” 쭈그려 앉은 내 머리 위로 역을 오가는 행인들의 멸시가 들린다. 모두 들린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빵빵. 밥차 왔습니다. 나오세요.” 대합실 반장으로 보이는 듯한 이가 새마을운동 모자를 쓰고서는 노숙인들을 인솔한다. 나도 그 틈에 끼여 밖으로 나간다. 이제 내 동지는 노숙인들이다.

#미각

짜다. 짭조름한 조미료 맛 라면 국물에 온 혀가 반응을 한다. 뇌혈관을 타고 퍼지는 짠 맛, 이제야 몸에 피가 도는 것 같다.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역 광장을 찾아오는 밥차 라면.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이 기다리는 단 하나의 약속이란다. 봉사단은 따듯한 옷가지도 챙겨와 풀어놓는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몸에 맞는 옷을 차지하려 광장 앞은 금새 아수라장이 됐다. 그 틈에 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멀뚱히 서 있다가 “물 다 끓었다!” 소리에 재바르게 줄을 선다. 라면 한 사발을 받아들고 노숙인 무리에 앉아 먹는다. 쫄깃쫄깃하다. 고소하면서도 달짝지근하다. 살 맛이 난다. 길거리에 앉아 노숙인 틈에 끼어 후루룩 후루룩 라면을 삼킨다. 지금 이 순간 지나가는 행인의 눈초리도 중요치 않다. 체면도 자존심도 필요 없다.

하루종일 갈 곳 없이 헤맸고, 멸시를 받았고, 굶주렸다. 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라면 면발이 고마울 뿐이다. 옆에 함께 앉아 국물을 들이켜는 노숙인들이 가슴에 사무쳐온다. 라면 국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런데 노숙인들은 “야~맛이 좋다!” “야~한 그릇 더 먹어야겠는데?” 껄껄 웃는다. 배고픔, 추위, 멸시, 불안으로 허기진 그들이 사는 세상에도 웃음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웃음이다. 이 웃음 속에 희망이 있는 것일까. 밥차 배식을 끝으로 나의 일일 노숙인 체험도 끝이 났다.

밥차를 타고 다시 명동으로 돌아가는 길. 바오로 사도의 말이 떠올랐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 24~25). 노숙인들이 사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희망이 숨어 인내하고 있기를 기도했다. 그 희망으로 그들이 다시 일어서는 새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서울카리타스봉사단

노숙인들에게 ‘밥차봉사단’으로 통하는 서울카리타스봉사단(단장 조창규)은 비상시 홍수, 태풍, 눈사태 등 재해재난 대비와 피해 복구, 이재민 구호 활동을 하고 평시에는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단체다.

2004년 9월 창단한 서울카리타스봉사단은 2005년 12월 전주 신태인 지역 폭설, 2006년 7~8월 강원도 대화, 진부 지역 집중 호우, 2007년 태안 원유 유출 재난 현장에 서울카리타스봉사단의 상징인 ‘밥차’와 함께 출동해 피해 복구를 위해 힘썼다. ‘밥차’는 차 안에서 취사가 가능한 배식전용 차량으로 한 번에 150인분의 식사 제공이 가능하다.

특히 태안 봉사활동에서 카리타스봉사단의 역할이 컸다. 태안 기름유출 사건 발생 이틀 후 선발대 2명으로 시작한 카리타스봉사단은 1차 140명, 2차 502명, 3차 1375명 등 카리타스봉사단과 30여개의 성당 및 개인참석자를 종합해 총 2019명의 봉사자를 동원했다.

재해재난이 없는 평시에도 카리타스 봉사단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은 계속된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노숙인 동사방지를 위한 야간 순찰에 나선다.

이번 동절기에는 총 19회의 순찰을 계획해 떡과 차, 컵라면과 겨울 옷가지 등을 구비해 거리의 노숙인에게 제공한다. 사랑의 집 고쳐주기 운동도 펼쳤다. 어려운 일을 겪은 지역에 직접 찾아가 김장 김치를 담가 쌀 20kg과 함께 나눠주는 일도 해왔다. 올 해는 전주 신태인 본당이 김치 수혜자였다.

카리타스 봉사단은 보물창고를 갖고 있다. 명동 나눔주차장 한쪽 귀퉁이 10평 남짓한 공간에 숨어있는 허름한 창고 안에는 전국의 소외된 이웃에게 나눠줄 각종 물품이 가득하다. 신발, 옷가지, 라면 등 기초 생활 물품들이 대부분이지만 빨리 소모되기 때문에 후원이 절실하다.

“세상의 보이지 않는 곳에 누군가가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계속 이 일을 할 겁니다.”

※자원봉사 및 후원 문의 02-2263-0853 서울카리타스봉사단
카리타스 자원봉사단이 노숙인 순찰에 앞서 가톨릭회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임양미 기자,이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