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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로드를 가다] 23.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하라, 로마 입성이야기

입력일 2008-12-07 수정일 200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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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라쿠사역에서 로마 테르미니로 가는 야간행 열차를 기다리며
당신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나는 지금 바오로 순례 여행지 네 번째 나라, 이탈리아로 향하고 있다.

아직도 내 마음에서는 몰타 섬에서 만난 ‘사랑의 천사들’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향해 배를 타고 떠나는 지금, 나의 마음은 새로운 감정으로 복잡하다.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사실 순례 여행 내내 이탈리아의 강도, 절도 등 위험성을 경고해주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이탈리아의 야간기차를 타고 포추올리까지 가는 여정이었으므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사도 바오로만큼 자주 위험을 겪은 인물도 드물다. 코린토 후서 11장을 잘 살펴보면 그가 처한 위험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잦은 옥살이, 지독한 매질로 인한 죽음 체험, 채찍과 돌팔매질, 파선, 강도, 동족과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바다와 광야에서의 위험,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 등 헤아릴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브라질에서 해외 선교사 생활을 한 나에게도 이같은 ‘위험’은 있었다.

브라질에서만 강도를 세 번이나 만났다는 사실은 수도원 형제들조차도 잘 모른다.

첫 번째는 수도원을 코앞에 두고 운전을 하던 도중 벌어졌다. 사춘기 청소년들로 보이는, 그러나 마약에 취해 눈이 풀린 소년들이 나를 권총으로 위협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현금과 신분증이 담긴 지갑을 고스란히 내줘야만 했다.

두 번째, 수도원 일로 환전소에 들러 달러를 찾아 성 바오로 서원으로 돌아가는데 교환한 돈 전부를 날치기 당하고 그가 휘두른 주먹에 고꾸라진 일이다. 세 번째는 시내 한복판에서 칼을 가진 두 남자에게 강도를 당할 찰나, 수호천사가 도와줬는지 갑자기 뒷머리가 쭈뼛 서며 그들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들은 놀라 범죄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 못 이루던 나는 3시간 이상의 여행 끝에 이탈리아 카타니아 항구에 도착했다. 사도께서 거쳐 갔던 시라쿠사와 포추올리에서도 아무런 불상사는 없었다. 포추올리에서 나폴리까지 12시간이 넘는 야간열차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고단한 몸을 의지한 채 달렸다. 열차 안은 평온했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졌다. 사도 바오로의 보호하심을 느끼며 평화로이 잠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예상했던 건강과 치안의 위험도 순례 기간,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많은 이들 덕분에 물리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라쿠사, 포추올리 등 사도께서 거쳐 갔던 그곳에서 나는 사도의 보호로 큰 위험에 빠지지 않았다.

나는 믿는다. 내가 결코 이 바오로 로드를 혼자 순례한 것이 아님을. 브라질에서 세 번씩이나 강도를 만나며 철학과 신학 공부를 해낸 것도 나의 힘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보이는 가까운 이웃들의 기도의 힘으로 해낸 것이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당연히 위험도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해낼 수 있다. ‘내가 가야할 길’을 말이다. 나의 최종 목적지를 알아야만 한다.

아, 이제 나는 최종목적지인 로마로 향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사도의 보호를 받으며 로마로 향하는 길에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포추올리를 통해 로마로 입성하다

교우들의 환대를 받으며

로마로 압송되던 도중, 배가 파선돼 몰타에서 겨울철 석달을 보낸 사도 바오로는 61년 이른 봄, 다시 배를 타고 시실리섬의 사리쿠사에서 사흘을 보낸 뒤 나폴리 북쪽에 자리한 항구 보디올리(지금의 포추올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이레 동안 교우들의 환대를 받은 바오로는 로마까지 아피아 국도(via appia)를 따라갔는데 교우들이 바오로 압송 소식을 듣고 로마에서 남쪽으로 65km 떨어진 아피오 광장까지 또는 로마 남쪽으로 50km 떨어진 트레스 타베르네까지 마중 나왔다고 한다.(사도 28,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