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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로드를 가다] 20. 환락과 퇴폐, 그리고 사도의 눈물, ‘코린토’

입력일 2008-11-16 수정일 200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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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눈물은 희망의 강물 이루고…

코린토 유적들을 보며 나는 눈을 비볐다. 고대 박물관 안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즐비했고 심지어는 남녀 성기 모양으로 된 포도주 잔까지 있으니 그 당시 사회의 도덕적 타락 상태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코린토 서간에서 우리는 나의 사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우들에 대해 유난히 걱정하고 마음 아파했음을 여러 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폴로, 바오로, 케파, 그리스도파로 갈라진 그들의 분열된 교회와 불륜과 우상에게 바친 제물, 음행문제로 사도의 마음을 심각하게 어지럽힌 타락한 교회, 코린토.

이렇게 도덕적으로 문란했던 교회, 그래서 사도가 너무나 괴로워 울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곳 코린토에 나는 우두커니 기대어 앉았다.

“나는 매우 괴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보냅니다.”(2코린 2, 4)

사도 바오로의 눈물 때문일까. 나는 이내 눈이 흐릿해짐을 느끼며, 이제는 사라져버린 환락의 코린토 위에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겹쳐간다.

그리스 코린토 여러 신전 위로는 그 규모에 못지 않은 화려하고 웅장한 모텔이, 수많은 우상들 위로는 술에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린다. 서울 등 대도시는 물론 시골 동네까지 상업적으로 번창하는 모텔들. 어떤 도시의 거리에는 10층 건물 전체가 모텔 네온사인으로 번쩍거리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도시 재개발의 영향으로 요즘 우리 수도회 미아리 주변도 밤낮 들썩인다.

뉴타운 계획과 대형 쇼핑센터의 진출, 늘어가는 술집과 모텔, 불법 안마소 네온사인이 점점 요란해지더니 번쩍거리며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룬다.

주일 새벽까지 술에 취해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며 같은 시간, 나는 형제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주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봉고차에 책과 음반을 차곡차곡 싣고 새벽 공기를 가른다. 웃을 수만은 없는 이 시대의 슬픈 ‘아이러니’다.

한국 사회의 ‘슬픈 바오로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감동의 눈물로 바꾸어야 하는 임무가 성 바오로 수도회와 가톨릭신문, 우리와 같은 매스미디어 종사자의 몫이 아닐까. 코린토와 같은 환락의 시대를 걷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말씀’은 다분히 고리타분하고 지켜내기 어려운 먼 나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가 혼란하고 퇴폐적으로 흘러간다하더라도 바오로와 같은 단 한 사람의 의인이, 올바른 사람이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코린토 교우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오로와 화해하기를 바란 것처럼 오늘날 유흥가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언젠가는 주님을 찬양하는 회개의 소리로 바뀌게 될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 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명이자 몫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고통 뒤에 우리는 마침내 ‘부활’을 본다. 나의 고단한 하루의 수고가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길이라면 나는 오늘도 기꺼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련다.

환락의 시대에 회개를 바라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코린토’

바오로 ‘눈물편지’ 쓰다

코린토의 종교는 매우 다양해서 마치 종교 전시장 같았다. 수많은 그리스 신은 물론 이집트의 신 등 수많은 신을 섬겼다. 교통과 상업이 발달해 경제적으로 윤택했으나 항구도시의 특징상 윤리적으로는 퇴폐했다. 코린토 뒷산 꼭대기 아프로디테 여신전에는 신창(神娼) 천여명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다.

바오로는 제2차 전도여행 때(50~52년경) 지금의 그리스 지역에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로이아 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아테네에서 전도를 실패,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코린토에서 18개월간 머물며 큰 교회를 세웠다. 하지만 교회 설립 후 코린토 교우들은 바오로의 적수들에게 동조, 공개적으로 심한 모욕을 가하기 이른다. 바오로는 에페소로 되돌아와 눈물을 흘리며 비통한 편지를 써 보내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코린토 교회로 보낸 세 번째 편지로 추정되는 ‘눈물편지’(2코린 10~13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