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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로드를 가다] 18.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다, ‘테살로니카’

입력일 2008-11-02 수정일 200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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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로니카 주보 성인 성 디미트리오스 기념 정교회 대성당 내부.
‘부활로의 여행’ 죽음을 살아가다

그리스 유명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테살로니카로 향하고 있다. 버스 밖 에게해의 절경에 여가수의 목소리가 더해져 한층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버스에서 내리며 나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다시 ‘칼리메라(안녕하세요)’를 외쳤다.

사도 바오로가 2차 전도여행 중 세웠다는 유럽의 두 번째 교회 테살로니카. 사도께서는 테살로니카 공동체에게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란다고 전한다.(1테살 4, 13)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1테살 5, 1~3)

그리고는 덧붙이신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 16~18)

문득 성 바오로수도회 첫 사제이셨던 고 유광수 야고보 신부님의 선종이야기가 떠오른다. 돌아가시기 전날 새벽이었던 것 같다. 간암으로 혼수상태를 반복하시다 의식이 돌아온 그 때, 신부님은 눈을 크게 뜨시며 환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내가 부활한 것 맞지?”

그렇다.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닌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기에 희망이다.

특히 나와 같은 수도자들에게 매일은 ‘죽음’이자 ‘부활’이다. 우리는 죽지 않으면 결코 부활할 수 없기에 늘 죽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세상에는 내가 낮아지고 죽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일상생활 안에서 다가오는 도전들은 매일 우리에게 ‘죽음’의 연습을 하도록 한다. 교회 내 많은 남녀 수도자들은 삶에서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고 포기해야 하는 사명을 스스로 택했다. 일상에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의 연습’일지도 모르겠다.

나 김동주 도마 수사도 수도생활 18여 년 동안 몇 번씩이나 수도생활을 포기하려고 짐을 쌌던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너무나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내하고 인내하면 좋은 일이 더 많다.

“끝까지 인내하고 참으십시오! 그러면 희망이 보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활이든,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생활이든 우리에게 ‘위기’는 언제나 온다. 하지만 이 어둡고 힘든 ‘죽음의 위기’를 이겨내면 우리는 비로소 희망, 바로 부활을 볼 수 있다.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죽음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다. 부활을 하려면 고통, 죽음을 극복하고 승리해야만 한다. 어두운 밤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결코 마지막 말이 될 수 없다.

지금 이곳, 테살로니카 하늘은 어둡고 을씨년스럽게 가는 비가 흩뿌리고 있다. 저 하늘이 개이고 나면 곧 아름다운 무지개가 뜰 것이다.

매일의 ‘죽음’과 ‘부활’을 살아가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유럽의 두 번째 교회 ‘테살로니카’

사도 바오로는 제2차 전도여행 때(50~52년경) 실라와 티모테오를 데리고 필리피에서 전도한 다음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로 갔다.(사도 17, 1)

암피폴리스는 폐허가 됐으나 헬레니즘 시대에 세운 큰 사자상이 아직 남아 있다. 바오로는 테살로니카에 3주간 머물며 그리스에 두 번째 교회를 세운다.

바오로 일행은 그곳에서 테살로니카 유다인들에게 쫓겨 서남쪽으로 75km 떨어진 베로이아로 피신, 그리스에서 세 번째 교회를 세우게 된다.

현재 테살로니카의 바오로 관련 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성 디미트리오스 정교회 대성당과 게오르기오스 성당 등을 찾아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