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바오로 로드를 가다] 16. 내 마음의 감옥에 대하여, 필리피(상)

입력일 2008-10-19 수정일 200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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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의 비잔틴시대 대성당터를 바라보며.
자유롭기 위해선 나를 벗어나야 한다

까발라 항구의 깊어가는 밤을 뒤로 하고, 그리스에서 눈을 뜨는 첫 번째 아침.

구수했던 터키 말과 이슬람 사원의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던 아잔(이슬람의 예배시간을 알림) 소리가 아직 가슴 속에 남아있지만, 이제 이곳은 유럽 땅, 그리스다.

“칼리메라(안녕하세요)!”

짧은 기간이라도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그리스 말을 머릿속에 넣다보니 버스는 어느새 필리피에 도착했다. 필리피, 사도 바오로가 가장 아꼈던 교우들이 살던 곳.

필리피에 남겨진 유적, 에냐시오 국도(BC 2세기 후반 발칸반도에 건설된 고대 로마의 군사도로)를 걸으며 나는 ‘사도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음을 옮기셨을까’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뗐다.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전도여행 중 에페소 로마군 감옥에 갇히셨을 때도 필리피 교우들을 떠올리며 서간을 보내곤 했다. 바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다. 필리피 교우들이 소중해서였을까? 편지들은 모두 기쁨에 넘쳐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필리 4, 4),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필리 2, 18)

감옥살이를 여러 번 했던 나의 사부. 필리피 유적 모퉁이에 기대어 나는 사도 바오로의 감옥살이에 대해 묵상해본다. 그는 감옥에 갇혔지만 기쁨에 차 있어 주님 안에서 자유로웠다.

“사실 어떤 이들은 시기심과 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지만, 어떤 이들은 선의로 그 일을 합니다. 선의로 하는 이들은 내가 복음을 수호하도록 정해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사랑으로 그 일을 합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필리 1, 15~18)

사도의 시대에 살지 않아 나는 감옥을 갈 일은 없었다지만 내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살았던 적은 많았던 것 같다. 브라질 초기 선교사 시절, 언어도 통하지 않고 소심했던 내가 그냥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장시간 밖에 나가지 않던 버릇 또한 내가 만든 감옥이다. 선교사에게 있어서는 안 될, 우울증과 비슷한 심각한 증세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브라질 동료 수사님들은 내게 다가오고 싶어 하는데도, 나 스스로 밀어내고 있던 것 같다. 두려움이라는 높은 울타리를 만들고 차디찬 감옥을 만들었다. 감옥 안에서도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즐거움에 찼던 사부와는 달리, 나는 자유스런 몸을 뒤로하고 스스로 감옥을 쌓았다.

사부는 진정 자유로운 감옥살이를 하지 않았던가. 성경을 보면, 사부는 지병을 가지고 있어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으로 괴로워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러한 몸으로, 감옥에 갇혀서도 마음만은 자유로웠고 간수가족까지 입교시키는 선교를 한다.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이들은 때때로 ‘마음의 감옥살이’를 한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원하시지 않는 길이다. 나 또한 감옥살이를 벗어나 진정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필리 2, 12)

사도 바오로가 유럽 땅에서 첫 번째로 입교시킨 교우 리디아가 살던 곳으로도 유명한 필리피. 그녀가 세례를 받았다는 지각티스 강변에 앉아 물끄러미 주변을 둘러본다. 강은 여전히 무심히 흘러가고, 바람은 분다.

-마음의 자유를 희망하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유럽의 첫 교회, 필리피

리디아, 마음을 열고 세례를 받다

사도 바오로는 제2차 전도여행 때(50~52년경), 터키 서해안에 자리한 트로아스에 이르러 교회를 세운 다음, 환시를 보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북부 네아폴리스(지금의 까발라) 항구에 입항했다. 이후 사도 바오로는 에냐시아 국도를 따라 15km 지점에 자리한 필리피에 이르러 유럽땅에서는 처음으로 전도했다.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티아티라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했다.”(사도 16,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