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회와 커뮤니케이션-가톨릭 미디어 교육] (5)커뮤니케이션 윤리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8-06-08 수정일 200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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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활동 통해 사회 기여 모색

급속한 매체변화 안에서 그리스도교 윤리 규범 실천을

홍보수단의 정당한 위치 인지하고 전인적 지식 갖춰야

교회와 커뮤니케이션의 관계에 있어서 교회의 관심사는 우선적으로 첨단 커뮤니케이션의 활용 방안의 모색이 우선적인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적 커뮤니케이션이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광범위한 영역을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윤리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교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원칙들을 제시하고 그것이 교회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다양한 사회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영향을 미치도록 함으로써 교회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특별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사실상 커뮤니케이션의 윤리에 대한 연구의 역사는 그리 오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윤리의 영역들은 오늘날 매우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윤리의 주제들을 언론윤리의 측면에서 보면, 취재원 보호, 사생활 침해, 국가 안보와 전쟁 보도, 자유 언론, 소수민 문제 등이 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윤리에 있어서, 윤리적인 성찰과 연구보다도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환경의 변화가 급속하게 이뤄짐으로써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은 오히려 현상을 뒤쫓아가며 분석하는데 있어서 더 많은 복잡성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가 하나의 학문적 연구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여기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교회가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윤리 분야에서 교회의 기여는 그리스도교적 윤리 원칙들을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사용과 소비에 적용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그리스도교적 윤리 원칙들을 바탕으로 이러한 원칙들이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원칙들로 적용되고 그 기초로 삼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관련 문헌들 속에는 예외 없이 커뮤니케이션 윤리를 위한 다양한 지침들이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회커뮤니케이션 교령’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 매체들을 올바로 사용하려면 반드시 이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도덕 규범을 알아야 하고 이 분야에서 그 규범을 충실히 실천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4항) 문헌은 나아가 “무엇보다도 모든 관계자가 이 매체의 사용에 관하여, 특히 우리 시대에 더욱 날카롭게 제기되는 몇몇 문제들과 관련하여 반드시 올바른 양심을 형성하여야 한다”(5항)고 말한다.

사목훈령 ‘일치와 발전’(Communio et Progressio)은 무엇보다도 커뮤니케이터 자신들이 “자기 양심껏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의무가 있다”(15항)고 강조한다. 이 문헌은 또한 “현대 생활 각 분야에서 윤리적 퇴폐풍조가 발견되며,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이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퇴폐의 증거는 홍보 수단에서 쉽게 발견된다.

이 점에 대한 탓을 얼마나 홍보 수단 자체에 돌릴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사회 안에 이미 현존하는 풍조를 홍보 수단이 그런 그릇된 경향을 강조하고 널리 전파하며 일반화시킴으로써 차츰 이런 풍조를 형성해 간다고 주장한다.”(22항)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일치와 발전’이 강조하는 기본적인 윤리적, 도덕적 원칙으로서, 이는 곧 이 분야에서 교회의 특별한 기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보 수단의 사용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므로 여기에 관한 윤리 원칙들은 인간 품위에 대한 올바른 개념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들로 구성된 가정의 일원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또 한편 이런 원칙들은 홍보의 깊은 본질과 각 홍보 수단의 고유성에도 바탕을 두고 있다....그러므로 창조와 강생 구속의 역사 안에서 홍보 수단의 정당한 위치를 깨닫고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려 한다면, 전인적인 인간과 홍보와 홍보 수단의 깊고 건전한 지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14, 15항)

교황청의 사회홍보평의회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윤리와 관련해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는 4가지 문서를 발표했는데, 이는 커뮤니케이션 윤리(2000년 6월), 광고 윤리(1997년 2월), 인터넷 윤리(2002년 2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서의 음란물과 폭력; 사목적 응답(1989년 5월) 등이다.

‘커뮤니케이션 윤리’는 일종의 지침서로서 증권시장부터 사람들의 일상 생활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 홍보 매체들의 기반을 이루는 윤리적인 원칙들을 담고 있다. 인간의 선익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공공선과 분리해서 실현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이 때문에 매체 내용과 정책에 관한 결정은 단지 시장 논리나 경제적인 요인이나 이익의 동기만으로 결정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윤리 문제를 다룬 이 문헌은 특히 ‘몇 가지 중요한 윤리 원칙들’에서 ‘일치와 발전’에서 이미 강조하고 있는 윤리적 신념과 원칙을 되풀이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근본 윤리 원칙은 다음과 같다. 인간과 인간 공동체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 이용의 목적이며 척도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21항)

이 첫째 원칙을 보완하는 둘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선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공동선과 별개로 실현될 수 없다. 이 공동선은 포괄적인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곧 공동선이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공동체가 이바지하여야 하는 가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총체적으로 집약한 말이다.”

이는 한 집단을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식으로 대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과 커뮤니케이션 정책 입안자들은 모든 수준, 모든 종류의 개인과 집단의 실질적 요구와 이익에 이바지하여야 한다.”(22항) 이러한 모든 것 안에서 수용자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터의 윤리적 의무가 발견돼야 하며 (25항), 이는 모든 수준에서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규제해야 한다.(24항)

이 문헌은 결론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확인한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토론에서 교회가 하는 특별한 기여는, 인간과 인간의 비할 데 없는 존엄성과 침해할 수 없는 권리에 대한 인식, 그리고 모든 이의 공동선을 추구하고자 그 구성원들이 연대의 힘으로 모인 인간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다.”(30항)

한편 ‘광고 윤리’는 광고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올바르게 형성함으로써 광고라는 상업적 활동을 함에 있어서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인터넷 윤리’는 지금까지 언급된 똑같은 윤리적 원칙을 사이버 공간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와 인터넷’이라는 별도의 문헌과 함께 발표된 ‘인터넷 윤리’는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음란물과 폭력’의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다루는 ‘사목적 응답’에서는 음란물과 폭력물의 횡행이 가져올 수 있는 윤리적 폐해에 대해 다루면서, 그 올바른 사목적 대처 방안들을 촉구하고 있다.

이상의 논의들을 정리하면, 교회의 커뮤니케이션 윤리에 대한 특별한 기여는 커뮤니케이터와 수용자들의 올바른 양심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더욱 깊은 확신을 갖도록 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교회가 자신의 사목 활동을 통해서 인간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설명

▶2004년 12월 10일 서강대 가브리엘관에서 열린 「종교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영역과 과제 세미나에서는 현대사회 안에서 종교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의장 존 폴리 추기경(왼쪽)이 지난 2002년 2월 28일 교황청 공보실에서 ‘인터넷 윤리’와 ‘교회와 인터넷’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