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군사목 지원단체 탐방] 연무대본당서 선교활동 펼치는 이애자씨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8-02-03 수정일 200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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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문가는 엄마의 마음으로 말씀 전해

2년간 연무대본당서 병사들 교리 담당

편지지·핸드크림·묵주·이콘 등도 선물

“우리 아들들….”

밤이 이슥해질수록 빛을 더해가는 별조차 깜빡깜빡 졸음이 올만한 새벽 3시. 책상 앞에 앉은 이애자(소화 데레사.56.대전 관평동본당)씨는 연신 ‘우리 아들들’이란 말을 되뇌며 뭔가에 열심이다.

“오늘도 애들이 기다릴 텐데….”그렇게 1시간을 더 책상 앞에서 씨름하고서야 하던 일을 멈춘다. 자는 둥 마는 둥 2시간가량 누워있다 일어난 이씨의 손길이 또 다시 분주해진다.

“오늘 가르칠 준비는 잘 됐어?”남편 박태순(미카엘.56)씨도 덩달아 일어나 바빠진다. 시계는 어느 새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다.

“다녀올게요.”남편에게 인사를 남긴 이씨가 손수 차를 몰아 향한 곳은 육군 논산훈련소 연무대성당. 1시간 남짓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훈련소 정문에서는 경비를 서던 위병이 이씨의 얼굴을 확인하고 이내 경례까지 붙인다.

‘오늘도 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번엔 눈이 많이 내린데다 꽁꽁 얼어붙은 도로 때문에 큰일을 치를 뻔했기 때문이다.

오전 9시. 이씨가 기다려온 아들들을 만나는 시간. 교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200명이 훨씬 넘을 듯한 ‘아들들’의 눈길이 이씨에게로 쏠린다. 이번 주 새로 만난 훈련병들에게 이씨는 선교사라기보다 엄마로 생각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스스로도 훈련병들의 ‘영적 엄마’란 생각으로 이들과의 만남을 앞에 두고는 늘 설렘으로 밤을 새기 일쑤다.

이씨가 선교사로 병사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2월. 연무대성당의 열악한 사정 때문에 처음 교리를 가르치던 통일관은 난방을 기대도 할 수 없어 마이크를 잡으면 손이 쩍쩍 달라붙기도 했다. 그런 자신의 상황보다는 추운 겨울에 마음마저 추울 훈련병들이 더 안타까워 가슴을 태워야 했다.

매 주일 오전에 있는 교리시간을 위해 이러저런 고민과 생각으로 보내다보면 한 주가 금새 지나가고 만다. 처음 종교를 접하는 훈련병들에게 효과적으로 교리를 전하기 위해 병사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게, 특히나 여성의 처지에서는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택한 길이 그들의‘엄마’가 되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지니게 되자 눈이 새롭게 열리기 시작했어요.”

날을 거듭할수록 병사들에게 해주고픈 게 늘어갔다. 처음엔 초코파이를 한아름씩 싸가다 병사들이 필요로 하는 반창고에 편지지, 핸드크림, 묵주, 이콘 등 지금껏 바꿔본 품목만 손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평생 남의 차만 타오다 오로지 연무대본당에서의 봉사를 위해 쉰을 넘긴 나이에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성경 공부에 매달려온 그다.

“교리 지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주님의 사랑을 맛보게 하고 싶어요.”

그렇게 교리를 받은 훈련병들이 다른 동료들을 이끌고 오거나 상으로 받은 간식거리를 선교를 위해 써달라며 손에 쥐어줄 때는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오른다. 늘 자신을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는 이씨, 그는 오늘도 위문가는 엄마의 마음으로 한아름 사랑의 보따리를 싸고 있을 지 모른다.

[인터뷰] 육군 군종실장에 임명된 유병조 신부

“타종교와의 균형·화합 위해 노력”

“모든 종교가 사랑을 얘기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조화시켜 종파간의 균형을 이뤄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근 육군 군종병과의 최고 책임자인 군종실장으로 임명된 유병조 신부(대령, 군종 제39기)는 몇 차례나 ‘조화’를 강조했다. 유신부의 임명 소식이 전해진 후 다양한 종교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군에서 누구보다 적임자라는 주위의 평가가 적지 않았던 것도 그의 인품의 단면을 보게 한다.

천주교에서는 1985년 5월 7일 최초로 19대 육군 군종감에 임명됐던 서정덕 주교와 21대 조용걸 신부, 28대 최봉원 신부에 이어 네 번째로 군종병과 최고 책임자로 임명된 유신부는 자신의 임명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주님의 땅을 개척해가고 있는 군종사제들을 향한 많은 후원자와 은인들의 사랑의 결과라고 말했다.

소신학교를 거쳐 광주 대건신학대학 1학년 때 일찌감치 군종사관후보생으로 군사목의 길을 택한 유신부는 1980년 1월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군종장교로 임관한 후 오롯이 군종신부로 살아온 ‘반(半) 군인’이나 다름없지만 누구 못지않게 자상하고 푸근한 사제로 평이 나있다.

“사제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필요한 이가 되어주는 존재입니다.”

유신부는 사제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손을 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좌우명처럼 지니고 살아온 이다. 이런 까닭에 군종신부로 살아오는 동안 늘 주위에 ‘욕심 없는’ 사제로 통했다. 그런 그가 이제 한 가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다른 병과에 비해 뒤쳐진 군종장교들의 복지를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유신부는 자신의 뒤를 이어 계속 군사목을 개척해나갈 후배 군종신부들에 대한 당부도 있지 않았다.

“군종신부의 비전은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니라 영원한 하느님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에 회의가 들 때 영원한 생명이나 행복이 아닌 현세적인 것에 마음이 가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길 바랍니다.”

늘 주님께서 이끌어주셨기에 주님의 손에 맡길 뿐이라는 유신부의 길이 기대되는 건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아온 꾸밈없는 모습 때문이다.

사진설명

▶이기헌 주교가 이애자씨와 지난해 군인주일 때 연무대성당에서 병사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애자씨가 연무대성당 앞에서 군종 사제, 선교사와 기념촬영을 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