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랑나눔캠페인 '천사운동'] 날개달기-급성 골수성 백혈병 앓는 이주노동자 이셀 칼립스씨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7-05-13 수정일 200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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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이유로 한국에서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어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미셀씨. 하지만 열심히 치료받고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코리안드림’은 병마에 깨지고 동료들 치료비 모금 나섰지만…

부담주기 싫어 다시 필리핀으로

인천국제공항. 고향으로 떠나는 미셀 칼립스(30.필리핀)씨의 얼굴이 밝다. 그런데 정작 마중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어둡다. 몇몇은 눈물을 흘린다. 마중을 위해 공항 나온 ‘눈물 가득한’사람들과 일일이 포옹하고, 악수를 하면서도 미셀씨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꿈을 안고 찾은 한국. 그러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다. 그래서 동료들은 운다. 미셀이 오히려 그런 동료들을 위로한다.

“또 만날 건데 왜 울어요.”

딸 다섯, 딸 부잣집의 장녀로 태어났다. 한때 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사업 실패 후 집은 기울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재봉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었지만, 엄청난 빚 때문에 하루 먹고 사는 것도 힘들었다. 동생들 학비도 문제였다.

미셀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은 2005년 1월. 안산 공단의 한 사출 공장에서 일했다. 먹는 것, 입는 것 아껴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월급 대부분을 필리핀의 가족에게 보냈다. 그 덕분에 집도 조금씩 펴 나가기 시작했다. 동생들은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아버지도 기력을 서서히 회복해 갔다. 빚도 어느 정도 청산했다. 미셀은 가족의 희망이었다.

“이제 조금 편해지나 싶었는데….”

사순시기였던 지난 3월 22일. 계속되는 구토와 두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고 했다.

“치료비가 가장 먼저 걱정이 되더라구요.”

하지만 모아 놓은 돈이 없었다. 이 사실이 주위에 알려졌고, 필리핀 동료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래서 간신히 1차 항암치료는 받을 수 있었다.

병원에선 “3차 항암 치료를 받고 조혈모세포 이식만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함께 한국에 와서 구미공단의 한 휴대폰 조립 생산일을 하는 여동생의 조혈모세포가 미셀씨의 것과 일치해, 이식도 가능하다.

문제는 3차에 이르는 항암치료비와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비. 1차 항암 치료비 500여 만원은 주위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비 1500여 만원은 제외하더라도, 남은 항암 치료비에만 1000여 만원이 더 필요했다. 동료들이 뛰어다니며 치료비를 모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미셀 씨가 “저 필리핀으로 돌아갈래요.”라고 했다. 주위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렸지만, 미셀씨가 막무가내였다.

“더 이상 주위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요. 돈이 없어서 더 이상 한국에서 치료를 받는 다는 것은 무리예요. 몸이 아프니까 빨리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보고 싶네요. 필리핀에서 치료 열심히 받을게요. 그래서 한국에 꼭 다시 올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동생이 필리핀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동생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들러 다시 한국에 올 수 있도록 재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했다. 하지만 미셀씨는 재입국 서류 작성을 하지 않았다.

동생 안나씨가 “2차 3차 항암 치료만 견디면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을 받아 살아날 수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공항에 함께 마중나온 필리핀 공동체 사목 노엘 신부(말씀의 선교 수도회, 필리핀)는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나 보내 마음이 아프다”며 “늘 밝게 웃고 활기차던 미셀의 모습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셀씨는 5월 4일 오후 8시, 필리핀 항공편으로 한국을 떠났다.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