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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소공동체 1.소공동체의 빛과 그림자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7-04-08 수정일 2007-04-08 발행일 2007-04-08 제 254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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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서에 적합한 토착화된 소공동체 모델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사진은 2004년 제주교구 소공동체대회.
한국교회의 ‘블루 오션’…이상인가 현실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 최대의 사목적 화두는?”

이런 물음에 빠지지 않고 앞자리에 꼽히는 대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공동체다. 이렇듯 소공동체는 이미 한국 교회와 뗄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신자들의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제5차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가 ‘공동체들의 친교’를 ‘아시아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규정하면서 소공동체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대두됐다. 이후 소공동체는 1990년대 초반부터 서울대교구를 필두로 교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전 교구로 확산되면서 한국 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인식을 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운동의 형태로 도입돼 사목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기까지 한 소공동체가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애당초 목표로 했던 가치와 이상을 얼마나 구현해오고 있는가 하는 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교회 안팎에 적잖게 퍼져 있는 이러한 평가는 소공동체가 앞으로도 한국 교회의 ‘블루오션(Blue Ocean)’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전망에 맞닿아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핏빛으로 물든 ‘레드 오션(Red Ocean)’의 반대 개념인 블루 오션은 미개척지이기 때문에 광범위하고 깊은 잠재력으로 상징된다.

문화적·종교적 다원주의가 범람하는 한국 사회에서 소공동체는 세속화된 사회는 물론 종교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 교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원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소공동체를 실은 ‘한국 교회호’는 여전히 블루 오션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이는 달리 말해 한국 교회가 그만큼 우리 사회나 신자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 나아가 블루 오션을 창출해낼 수 있는 효과적인 틀과 도구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소공동체의 역사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한국적 적용을 위해 지난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사목회의 후 교회 안에서는 사목회의 의안의 정신을 살려나가려는 다양한 노력이 이뤄졌다. 그 가운데 “교회 활력의 표지이고 신자 양성과 복음화의 도구이며…복음화와 기초적 복음 선포의 도구”(교회의 선교사명 51항)로 표현되는 기초공동체(소공동체) 운동은 사목회의 의안이 천명한 사목 목표이자 방법을 수용한 흐름으로 주목받아 왔다.

1990년 초 한국 교회에 처음으로 소개된 소공동체는 92년 서울대교구가 최초로 소공동체 운동을 공식화하고 이어 93년에 대구대교구가 소공동체 운동에 나서면서 새로운 진로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후 전국 각 교구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서울대교구가 마련한 소공동체 연수에 참여하면서 소공동체 사목의 원리들이 여러 형태로 도입되고 시도됐다.

특히 2001년 6월 25일 충북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최초로 열린 ‘소공동체 전국 모임’은 소공동체 운동의 새로운 원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 참가자들은 소공동체가 복음화, 신앙쇄신 등 한국 교회의 당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데 공감대를 이뤄냈다.

제1차 소공동체 전국 모임 이후 각 교구 대표자들은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에 사목적 노력을 기울이며 전국 차원의 모임을 지속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위해 주교회의에 ‘소공동체 소위원회’ 설립을 요청한다. 이에 따라 그해 가을 주교회의 정기총회의 결정으로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안에 ‘소공동체 소위원회’가 설립됐다.

2002년에 열린 제2차 소공동체 전국 모임을 계기로 한국 교회 안에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이 확산되는 분위기가 한층 고양됐다. 나아가 각 교구 사목국장들이 중심이 돼 이뤄져온 교구 대표자 모임의 결실로 2003년 2월 15개 교구가 참여하는 ‘소공동체 사목 전국협의회’가 공식 출범하기에 이른다. 이후 소공동체 사목 전국협의회는 산하에 연구위원회를 구성해 소공동체 사목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연구를 심화시키는 한편 확산을 도모해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3년 9월 2~9일 의정부 한마음수련원에서 열린 제3차 아시파(AsIPA, 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아시아의 통합적 사목적 접근) 총회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 지역교회의 소공동체 활성화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가 주최하고 서울대교구가 주관한 이 총회에는 13개국에서 123명의 소공동체 관계자가 참석해 미래 사목의 대안으로서 소공동체의 현재를 돌아보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앞서 열린 1, 2차 총회 때에 비해 아시아 각국의 소공동체가 성장했음을 보여준 3차 총회는 아울러 아시아 지역에서의 소공동체가 이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단계라는 평가를 낳았다. 총회 최종 선언문도 아시아 교회의 소공동체 활성화에 있어서의 어려움과 장애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선언문은 “아시아의 소공동체 경험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과정에는 장애들이 있다”며 교회 지도층의 무관심, 성경에 대한 몰이해, 잘못된 지도력 등 다양한 장애들을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선언문은 신앙이나 교회, 말씀, 문화 등 신앙생활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더불어 이를 위한 적절한 양성과 교육 프로그램의 강화를 제안하고 있다.

이후 그간의 평가를 바탕으로 2004년 2월 13일 교구 대표자 회의를 통해 사무국을 실무 위원회로 명칭을 바꾸고 임시 사무국을 새로 구성하는 한편 양성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소공동체 빛과 그림자

하지만 소공동체는 여전히 많은 신자들에게 안개 속에 쌓인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는 아시아 지역 다른 교회 지도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다.

제3차 아시파 총회에 참가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소공동체 교육 담당인 탄 킴 혹씨는 “말레이시아 역시 오랫동안 소공동체를 추진해왔지만 뚜렷한 전망을 갖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싱가포르대교구 사목센터 사무차장인 웬디 M. 루이스씨도 “아직은 소공동체에 대해 듣고 수용하는 수동적인 단계”라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한편에서는 소공동체가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의 밑바닥에 깔린 가정 문제를 비롯해 교회는 물론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실제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 역사만을 돌아보더라도 구역 반장들을 대상으로 복음 나누기 7단계와 복음 나누기의 다양한 방법을 교육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한 결과 ‘말씀’이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는 경향이 점차 확고해지고 있다. 또한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 과정에서 평신도사도직이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는 등 적잖은 결실을 낳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소공동체가 여전히 단순한 ‘구역 반모임 프로그램’으로 이해되거나 일부 매니아들만이 찾는 것으로 인식되는, 불확실한 이해를 낳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새로운 교회상을 지향하는 총체적인 사목 원리와 체계’로서 소공동체 개념을 신자들의 삶에 뿌리내리기는 쉽지만은 않은 일로 보인다.

이러한 엇갈린 평가는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 노력이 10년 넘게 진행돼 왔지만 소공동체에 관한 연구 논문이 극히 미미한 현실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달리 말해 한국 교회가 선진 신학이라는 ‘그릇’을 수입하고도 거기에 맞는 내용을 채우지 못함으로써 신자들이 이미 힘을 얻고 살고 있는 신앙과 삶의 풍요로움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소공동체 사목이 표방하는 대로 교회가 끊임없는 친교와 쇄신의 공동체로서 참 모습을 찾기 위한 모색이며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이라면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적인 소공동체 모델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소공동체 앞에 가로놓인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소공동체 사목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인의 정서와 의식구조, 문화와 실정에 적합한 토착화된 소공동체 모델과 방법 및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