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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베네딕토 16세의 초대: ‘평화 생태학’을 향하여

입력일 2007-03-18 수정일 200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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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간-사회’의 관계

지금까지 본 것처럼 교회와 민족의 생명을 풍요롭게 할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비움과 바닥 되기를 외면할 때, 개인이든 공동체든 그리스도의 제자 직분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인식 위에서 이번에는 오늘의 삶의 자리로 넘어와서 지구 공동체를 하느님의 창조와 통합시킨 생태 영성의 지평 위에서 그리스도 신앙을 어떻게 육화시킬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앞에서 온 창조물 사이의 상호 미션을 검토하면서 “이웃의 지평 확장”에 관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2006년 2월 19일자)

이때 인간 서로는 물론 하느님의 온창조계가 하느님께 창조된 “만물 가족”을 구성하면서, 하느님의 생명의 다스림을 일깨우고 풍요롭게 하는 이웃이자 동반자가 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를테면 오늘 21세기 인류 사회는 과거 인간중심적인 단계를 넘어서서 하느님의 창조를 중심으로 전창조계, 온생명계, 온우주계로 확장된 생태적 관계의 새로운 시대(a new era of ecological relationships)를 맞이하고 있다.

이 새로운 지평에서 신학과 영성을 토착화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주제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중한 기회에 교회의 교도권이 이 영역에서 보여주는 세계적 영성과 사목 비전을 먼저 살펴보고 싶다.

그런 가운데 하느님께 창조된 “만물 공동체”의 생명의 관계를 중심으로 우리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간략히 성찰하고자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7년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을 맞이하여 “평화의 중심인 인간 존재”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교황은 여기서 인간의 존엄 없이 평화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4와 7, 12항 등) 하느님이 인간의 양심에 새겨준 생명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에 종속시키지 말 것을 역설한다.(3항) 그리고는 다시 인간의 질서를 인간의 기술과 탐욕과 권력에 종속시키지 않도록 요청한다(4항).

또한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신 “평화의 나무”는 자연과 인간과 사회의 “3중의 생태학” 차원과 정의를 통합함으로써 비로소 건강하게 자랄 것으로 보았다.(8~10항)

베네딕토 교황은 여기서 ‘평화 생태학(ecology of peace)’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는데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3중의 생태학’, 곧 ‘자연 생태학’, ‘인간 생태학’, ‘사회 생태학’을 기본 구조로 삼고 있다.

교황은 자연, 인간, 사회의 생태적 통합을 ‘평화’로 인식하면서, ‘생태학’과 ‘평화’를 교환 가능한 말로 사용한다.

그런 가운데 자연과 인간 개인과 인간 사회가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이룰 진정한 ‘평화’와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설파한다. 자연의 평화 없이 인간의 평화 없고, 인간의 평화 없이 자연의 평화 없다는 것이다(8항).

베네딕토 16세의 이 메시지는 ‘평화 생태학’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정의와 창조를 통합해 들인 한 시도이다.

이것은 현대 세계가 특히 1990년을 전후하여 형성하기 시작한 평화, 생태, 정의(Peace, Ecology and Justice: PEJ) 비전을 포용하면서, 이 시대의 평화 담론을 인간-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에 통합시킨 한 중요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고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를 통하여 창조계의 신음에 귀 기울이며 이 문제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하도록 촉구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생태적 자각을 선도한 적이 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이 메시지는 한국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서, 1990년대 초에 우리밀 운동과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 등을 뒷받침한 한 영성적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베네딕토 현 교황은 이번 메시지로 생태 위기에 관한 전임 교황의 예언자적 호소와 짝을 이루면서 자연과 인간과 사회를 통합한 ‘평화 생태학’을 제시함으로써 생태적 실천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 주었다.

실로, 이 메시지는 우리 교회가 현대 세계와 함께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바로 인식하고 그 질서를 구현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지도자들이 이렇게 하느님께 창조된 ‘만물 가족’ 공동체의 생태 차원을 통하여 사목적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상황에서, 오늘의 한국 교회는 생태 영성에 대한 담론과 실천 비전을 어떻게 형성해 가고 있는가?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