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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이 문화] 71.보여주고 픈 교회박물관으로

입력일 2006-11-05 수정일 200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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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과거-현재 잇는 영성의 장

박물관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곳이다.

따라서 박물관에서는 그 나라와 민족이 역사 안에서 이루어 낸 예술, 학술, 기술의 총체를 한 번에 접할 수 있으며, 정신적, 문화적 수준과 품격을 일시에 파악할 수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만약 어느 낯선 나라, 모르는 도시에서 한 곳 만 선택하여 볼 기회밖에 없다면 그곳은 박물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가면

선교사의 전교 없이 한문서학서(漢文西學書)를 통해 자생적으로 설립된 우리의 천주교는 그 나이 220세이다. 그동안 수 없이 많고 큰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이제는 모범적 세계교회로 우뚝 선 우리교회는 우리 스스로도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더구나 그 존속조차 힘겨웠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교회는 한글의 보급과 발전,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인식 및 서양 사상과 문물의 수용에 주도적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우리나라 근·현대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따라서 천주교 관련 유물을 수장하는 교회박물관은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증언하는 장으로서, 중요성과 가치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교회의 역사를 강의하는 학기면 학생들과 함께 한 두 차례 종교박물관을 탐방한다. 그 때 의도적으로 기독교의 대표 박물관인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을 먼저, 그 후 우리교회의 절두산순교성지박물관을 찾는다.

두 박물관을 비교하며 생각할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기독교박물관의 방대한 규모와 수준 높은 소장유물, 전문박물관다운 전시에 놀라고, 감탄하고, 부러워하고, 비교되는 절두산박물관에 대해 상대적으로 실망하고, 화가 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 앞날의 우리교회를 맡을 젊은이들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깨닫고, 마음 속 깊이 다짐하도록 자극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가면 우리는 감동한다. 이승훈(李承薰)이 정약종(丁若鍾)에게 “텬주강생후 일천칠백구십년경술뉴월망일 됴선셩교됴셩셩배회 리백돌 증”이라며 수여한 ‘령셰명쟝(영세명장)’과, 순교화가 이희영(李喜英)이 직접 만나 그린 것으로 짐작되는 정약종의 초상 앞에서, 제목으로만 알던 ‘만천유고(蔓川遺稿)’와, 모방(Maubant), 앵베르(Imbert), 샤스탕(Chastan) 세 순교성인의 얼굴이 나란히 새겨진 19세기 로마 교황청 제작 순교기념메달을 대하면 그렇다.

또한 동양사람들의 세계인식을 바꾸었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와 페르비스트(Verbiest)의 세계지도와, 명(明)나라 만력제(萬曆帝)가 그리도 신기해했다던 선교사들의 소위 조공진상품(朝貢進上品) 자명종(自鳴鍾)에 이르면 그 위대하나 힘겨웠던 우리교회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양 감동으로 전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독교박물관의 설립자 김양선(金良善) 목사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동시에 우리에게는 이 같은 분이 없었음을 아쉬워한다.

우리교회 박물관은 주로 천주교 성지, 성당, 수도원, 교회계통 대학교 및 연구소 등에 설립되어 있다. 그러나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천주교 유물은 나라의 유관 기관은 물론, 우리교회에서도 이웃종교에 비해 관심을 상대적으로 적게 기울이는 듯하다. 그 위에 천주교 박물관 유물의 수집·보존·전시는 그 양과 질에서도 너무 낙후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우리교회의 역사를 관통하는 통합적, 총체적, 최고수준의 박물관이 없는 것이다.

선교도구로도 활용

박물관의 유물은 생명 없는 과거의 흔적만은 아니다. 지금도 살아 숨쉬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자신을 내보여주며 감동시켜 그로써 또한 무한한 영성적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시청각자료가 교육의 절대적 수단이 된 지금, 박물관을 배움과 연구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선교의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전환적 인식이 우리 교회 지도자들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그렇듯, 외국에서 온 친구에게 한 곳만을 보여주어야 한다면 역시 박물관일 것이다. 그가 도타운 신심으로 교회박물관을 찾으려 한다면 과연 어느 곳으로 자랑스럽게 안내할 수 있을까? 기독교박물관 말고, 우리교회 박물관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장정란(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