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주기 추모 문화제

장병일 기자
입력일 2006-04-16 수정일 200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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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용서의 사도, 우리 곁에 영원히…”

[전문]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4년 한국 첫 방문 때, 비행기에서 내려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며 한 말이다. ‘무수한 순교자들의 피가 씨앗이 되어 자라난 교회’라고 평하며 한국교회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시했던 요한 바오로 2세. 4월 6일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주최한 1주기 추모문화제는 이러한 요한 바오로 2세를 회상하고 가르침을 되새겨보는 자리가 됐다.

평화의 순례자

⊙…‘이제 당신의 길고 오랜 침묵은 더 넓고 깊게 사랑하라는 커다란 외침으로 들립니다. 이제 당신의 부재는 평화의 일꾼이 될 책임과 의무를 지상에 남아있는 우리에게 숙제로 남기는 사랑입니다….’ 이해인 수녀의 1주기 추모시 중 일부. 이수녀는 시에서 “선한 목자, 거룩한 사제, 진리의 전달자, 정의로운 예언자, 초록빛 시인,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가신 평화의 순례자, 화해와 용서의 사도, 움직이는 사랑과 지혜의 스승, 자애로운 아버지”라는 말로 요한바오로 2세를 칭한 후 “당신을 통하여 우리는 모든 이가 하나 되는 하늘나라를 이미 앞당겨서 바라보는 행복을 누린다”고 표현했다.

동유럽 냉전 종식

⊙…안제이 델라트카 주한 폴란드 대사는 ‘교황과 조국 폴란드’라는 제하의 회고를 통해 “교황님은 1979년 모국인 폴란드 방문을 통해, 동유럽의 냉전을 종식시키는데, 또한 폴란드의 정치체제를 변화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며 “‘두려워 하지말고, 성령에 따라 이 땅을 변화시켜라’는 당시 교황님 말씀을 아직도 냉전상태인 한반도의 한국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프란체스코 라우시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요한바오로 2세는 27년간 교황직을 수행하시며, 마지막엔 병환으로 무척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1978년 10월 성베드로 광장에서 외치신 ‘두려워 마십시오’라는 권고의 말씀을 지치지 않고 전파하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

⊙…이번 행사에선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났던 여러 사람들의 증언도 있었다. 수도자로는 이해인 수녀가, 포콜라레 운동 참여자 박현일씨와 이마리아씨가 젊은이를 대표해, 84년 광주공설운동장에서 교황 주례로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은 심영식씨가 평신도를 대표해, 성직자로는 대구종합운동장에서 교황 주례로 사제품을 받은 박동균 신부(서울대교구)가 각각 증언했다. 이에앞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백도웅 목사와 (사)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요한바오로 2세는 진정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종이셨다”고 말했다.

■‘…교황과 한국교회’주제발표(요지)/한국평협 한홍순 회장

“아시아 선교에 주도적 역할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자신을 한국민의 벗이라고 하신 것은 결코 한국민에게 듣기 좋으라고만 하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교황님은 자신을 진정으로 한국민의 벗으로 여기고 한국과 한국민을 위해 기도와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교황님은 한국 국민들이 반세기가 넘게 비극적 분단의 고통에 시달려 왔음을 잘 알고 계셨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과 행동으로 한국 국민들과의 연대감을 표시하곤 하셨습니다. 교황님은 한국 교회가 기울여 온 민족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격려하고 지지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북한의 교회와 백성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기회 있을 때마다 교황청 대표를 파견하여 이들과 대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하셨습니다.

현대 세계가 ‘죄의 구조’를 극복하고 정의와 평화를 이룩하도록 하기 위해 교황님은 끊임 없는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교황님은 특히 사회 교리에 입각하여 인권을 존중하고 신장할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권고하기도 하고 이를 위해 특히 신자들과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연대성의 용기’를 갖고 함께 투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기도 하셨습니다. 인권을 존중하고 신장하기 위해 보이티와 교황님이 기울여 온 불굴의 노력은 세계사의 흐름을 밑바닥부터 바꿔 놓아 새로운 천년대에 접어드는 인류에게 ‘희망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게 하였습니다.

즉, 교황님은 1980년대 말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붕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셨던 것입니다.

아시아 제2의 가톨릭 국가로 발돋움한 한국의 교회는 요한바오로 2세의 간곡한 권고대로 ‘그리스도에게서 다시 시작하여’ ‘겁내지 말고’ 아시아의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는 일’(루카 5, 4), 곧 아시아 선교의 주도적 역할을 하여 아시아의 모든 백성들이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히브 7, 19) 나아가도록 이끌어 갈 사명을 수행 하는 일에 진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시던 해에 교황님은 과분하게도 필자를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 위원으로 임명해 주셨고 그 후 선종하시기 전까지 해마다 한 두 차례 뵐 때마다 한국어로 인사 드리면, 한국어를 잊지 않으시고 늘 한국어로 화답하곤 하셨습니다.

선종하시기 넉 달 전 아내와 함께 뵈었을 때 자상하게 대해 주시던 모습을 이제는 다시 대할수 없게 된 것은 커다란 슬픔이지만, 하느님의 사람이신 교황님은 이제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는 기쁨을 맛보시며 행복하시리라는 생각은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보이티와 교황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그 분이 하루 빨리 성인의 반열에 오르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뜻을 모아 그 분이 곧 성인이 되도록(Santo subito!) 함께 기도 운동을 펼쳐 나가자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진설명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 주한 이탈리아·폴란드 대사 등 내빈들이 추모 문화제에 참석했다.

▶평화의 순례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정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 회원들이 연도를 바치고 있다.

▶개회식에서 뜨리니따스 합창단이 추모곡을 합창하고 있다.

장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