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40】Ⅲ 검색과 잠복시대/3. 기리시탄 잠복신앙/1) 조직

박양자 수녀
입력일 2005-11-13 수정일 200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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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레 기리시탄이 감춰둔 신으로 모시고 있는 성모자상.
250여년 잠복신앙

민속신앙으로 변질

잠복과 가쿠레

1643년 일본 내에 한 사람의 신부도 없게 되자 잠복 기리시탄들은 자체 내에서 신앙을 유지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외교인들과 관청의 눈길을 따돌리기 위해 위장, 습합(여러 종교를 혼합 절충하는)하여 비밀 교계 신앙조직체와 전례를 만들었다. 기도의 전승은 비밀리에 입에서 입으로 전하였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렇게 250여년을 지나는 동안 기리시탄 본연의 신앙은 어쩔 수 없이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잠복 기리시탄 신앙 조직이 존속하고 있었던 것은 거의 규슈지방이었고 집약적으로 모여 살고 있었다. 그 신앙 형태가 순수한 것만큼, 1865년 신자발견 이후에 재빨리 가톨릭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고(잠복 기리시탄), 습합의 정도가 심하여 독창적인 민속신앙으로 돼버린 곳은 가톨릭으로 돌아오기 힘들어져 버렸다. 이들은 지금도 잠복을 계속하고 있는 가쿠레 기리시탄이 되어 교회에서는 잠복과 가쿠레를 구별하고 있다.

1) 조직

‘나의 조상은 대대로 죠야쿠(帳役=최고지위)입니다. 나는 4대째로 12년 전에 죠야쿠가 되었습니다. 매 일요일 축일을 계산하여 그 주에 피해야 될 날을 뽑아내어 장내(잠복 기리시탄) 23호 모두에게 알립니다. 옛날에는 태어나서 3일 안에 반드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매일 자기 전에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구로사키의 죠가다(帳方=帳役) 무라우에 긴시치(村上近七.74세)의 말이다. 긴시치는 성상메달 몇개와 교회력 등을 소중히 전승하고 있었다.

‘슬픈 절(悲しみ節=수난절)이 끝나고 오르는 절(上り節=부활주일)부터 일년 축일을 세어서 정합니다. 8월 14일은 산타 마리아의 승천축일, 10월 31일은 모든 성인의 날, 11월 1일은 모든 영혼의 날, 12월 24일은 예수님의 탄생일이 됩니다. 매주 일요일에 피해야 될 날을 알립니다.’ 이 신앙생활은 나가사키 계통의 잠복기리시탄의 신앙조직체였다.

네시코의 조선인 낭자

히라도, 이키쯔키 계통의 신앙조직체는 더욱 은익성이 강하였다. 이들 조직의 최고 직위는 오야지 야쿠(爺役)이고, 그의 집은 쯔모토(교회당)라 하며 눈에 띄지 않게 난도카미(納戶神=감추어둔 신)를 모시고 있었다. 히라도(平戶)의 네시코(根獅子)와 시시(獅子)는 현재에도 가쿠레 기리시탄 마을이고, 이키쯔키(生月) 섬에는 대부분 가쿠레 기리시탄들이 살고 있다.

가쿠레 기리시탄 마을 히라도의 네시코에 조선인 낭자를 제사지내는 고무기 관음이 있다. 임진왜란 때 히라도의 영주 마쯔라 시게노부(松浦鎭信)가 전라성을 공격했을 때 성안의 밀밭에 숨어있던 궁녀를 데리고 왔다. 속칭 고무기 기미라 하였고 용모가 수려하였다. 영주는 그녀를 위하여 네시코에 별장을 지었다. 그녀의 묘도 가까운 조관사(照觀寺)에 있는데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고무기 사마’라 부르며 존경하고 있다. 옛날부터 네시코의 가쿠레 기리시탄들은 명절, 기일, 장례식 등은 이 고무기 관음에서 행해왔다. 조선낭자가 기리시탄이 되었던가?

박양자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박양자 수녀